아들 둘을 작은 학교로 보내게 된 이유는
나는 초등학교 교사다. 나뿐만 아니라 내 남편도, 그러니까 우리는 부부교사다.
부부교사라고 하면 모두가 입을 모아 "자식 교육은 잘 시키겠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부교사의 자식교육에는 엄청난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당신이 상상하는 잘 시킨 자식교육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는 나름대로 '잘 자란 자식이란 어떤 자식인가?'에 대해 기대하는 결이 비슷했다. 일단 스스로가 잘 자란 자식인가에 대한 인식부터 시작하는 것이 메타인지의 기본이겠지.
우리는 각자가 잘 자란 자식이라 불리기에 조금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우리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학창 시절 공부를 그럭저럭 잘했다는 것인데, 소위 말해 밥 먹듯이 전교 1등은 못했어도 반 1등은 놓친 적이 없는, 뭐 그런 캐릭터들이다. 라테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리 학창 시절에는 종종-시험을 망치거나, 심기를 잘 못 건드렸거나 하면 선생님께 빠따를 맞기도 했다. 틀린 개수대로 맞기도 하고, 숙제를 안 해온 놈으로 불려 나가기도 하고, 야자를 튀다 걸리면 그날은 학주선생님 칼춤 추시는 거고. 그러한 학교생활에서 반 1등이라는 타이틀은 굉장한 면죄부가 되었는데, 나의 행실이 결코 모범적이지 않을지라도 성적이 내가 모범생임을 증명해 버리는 모순에 빠진 청소년기를 보냈던 것이다. 나의 예의 없음은 시험을 앞둔 고등학생의 예민함으로 치부되어 회개를 하기도 전에 사하여졌고, 수업 중에 잠을 자도 페이스 조절 혹은 독학이 체질이라는 말도 안 되는 방어막들이 나를 감싸주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딘가가 뒤틀린 채 성인이 되었다. 분명히 빠진 나사가 하나 있는데 아무도 지적하지 않아서 그대로 자라나 버린,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애초에 그것이 어떤 도형인지도 분간이 불가능한 뾰족함을 지닌 어른이. 공부를 잘 시켜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 까지가 목표였던 수많은 어른들의 응원과 칭찬 속에 우리는 이 능력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시키고, 모든 자들의 신뢰를 얻게 하며, 모든 행복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던가. 우리는 그냥, 나는 그냥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기계에 가까웠고, 내 남편은 역사적 사실을 잘 기억하는 문서라 불러도 무방했다. 결핍. 한 인간이 사회에서 1인분의 몫을 하며, 내가 속한 공동체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내기 위해 인간이 꼭 가지고 있어야 할 어떤 것들이 결핍된 채, 눈앞의 숫자들을 올리는 데 급급하며 살았던 우리는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심각한 결핍을 가진, 하지만 비대한 자아를 지닌 두 인간이 모여 하나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얼마나 피 튀기는 투쟁을 해야 하는지 당신은 아는가? 우리는 서로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상대방의 부족함을 탓하며 지루한 후회가 가득한 속 시끄러운 시간들을 지나야 만 했다. 그 터널을 통과한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바로 '우리처럼' 자라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처럼은 무엇이냐?
우리는 운이 좋게도 수많은 능력 중에 공부를 잘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남편은 기억력이 비상하고, 나는 거의 모든 시험을 실력보다 훨씬 잘 본다. 19세기에만 태어났어도 앞마당을 잘 쓸고, 모를 잘 심는 능력보다 별 쓸데가 없었을 이 능력 덕분에 우리는 공부만 잘하면 나머지 것들은 알아서 해결이 되리라는 행복회로를 돌리며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돼 가는 와중에 누군가는 우리의 잘못을 혼냈어야 했고, 부족한 점을 지적해줬어야 했고, 공부가 이후의 삶을 온전히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줬어야 했지만, '일단 좋은 대학에 간 뒤에 생각하기 위해' 우리는 그저 공부에 매몰된 채 살았고, 험난한 결혼생활을 통해 그 값을 톡톡히 치렀다. 그래서 우리는 결심했다. 우리 아이들은 절대로 공부에 매몰시키지 말자고. 공부가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른 것들도 중요하다. 친구를 사귀는 능력, 자기 주변을 정리 정돈할 줄 아는 능력, 오래 뛰고 달리며 다양한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돈을 규모 있게 쓸 줄 아는 능력, 자신의 모습을 멋지게 가꾸는 능력, 상황에 맞게 말하고 예의를 지키는 능력 등등. 공부라는 한 가지 척도에만 초점을 맞춘 채, 이 모든 것들을 등한시하지 않기로 다짐했고, 그러려면 그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우리는 서울을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지방 소도시에서도 가장 외곽에 있는 6학급, 전교생 70명의 작은 학교로 아이들을 입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