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 #2
큰 이슈가 없는 한 매주 월요일마다 다른 분들의 아티클을 '타인의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남세동 님의 '쉽고, 편하고, 예쁘게'입니다.
(남세동 님의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dgtgrade)
쉽고, 편하고, 예쁘게.
소프트웨어 디자인 아니 어쩌면 모든 제품의 디자인은 이렇게 세 가지의 축에서 만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쉽다는 것과 편하다는 것은 다르다.
쉽다는 것은 배우기 쉽다라는 것으로 처음 쓰는 사용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개의 수도꼭지가 있는데 한쪽에는 빨간색, 다른 한쪽에는 파란색이 칠해져 있는 것은 쉬운 것이다.
편하다는 것은 자꾸 쓰다 보면 점점 더 힘을 덜 들이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콘을 오래 누르거나 세게 누르면 뭔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여러 번 탭을 하는 것에 비해) 편한 것이다.
복사하기 버튼은 쉬운 것이고, Ctrl-C는 편한 것이다. 몰라도 좋은 건 쉬운 것이고, 알면 좋은 것은 편한 것이다. 그 단어들이 원래 그렇게 구분된다는 것은 아니고 내가 평소에 그리고 이 글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그렇게 구분된다는 것이다.
예쁘다는 것은 보기 좋다는 것이다. 눈이 즐거운 것이다. 취향을 타는 부분도 물론 크지만 취향을 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아마도 인류 공통의 미적 감각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직선이냐 곡선이냐는 취향이지만 마구마구 엉킨선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쉽고, 편하고, 예쁘게.
이 세 가지가 서로 충돌하지 않으면 문제는 없겠지만 때때로 아니 사실은 매우 자주 이 세 가지는 충돌한다.
예를 들어 많은 경우 아이콘 등의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대신 그냥 텍스트를 쓰면 쉬워진다. 하지만 아이콘 + 텍스트는 아이콘만 보다 깔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 스와이프나 스크롤로 할 수 있는 액션을 그냥 버튼으로 만들어서 노출해 버리면 쉬워진다. 하지만 버튼이 공간을 차지하게 되어 그만큼 화면이 좁아지고 결국 불편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은 이 세 가지 사이에서 어느 것을 더 우선시, 중요시할 것인지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좋은 제품들은 그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다. 즉, 사용자가 원하는 적당한 밸런스에 맞춰져 있다. 내 생각에는 이 세 가지의 밸런스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그리고 구글 등의 디자인 스타일도 나눠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주로 쉽고 편한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들의 밸런스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시작 버튼을 넣었고, 휠 마우스를 만들었다. 엑셀은 윈도우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프트웨어다. 엑셀에는 수많은 버튼과 수많은 단축키가 있다.
구글은 편한 것을 조금 더 신경 쓰는 것 같다. 구글의 제품들은 다른 경쟁 제품들에 비해 쉽거나 예쁘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편하다. 그래서 구글의 제품들은 알면 알수록 쓰면 쓸수록 편해진다. 쉽지는 않지만 편하다.
애플은 주로 쉬운 것과 예쁜 것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섯 살짜리 아이도 아이패드는 사용할 수 있다. 그만큼 쉽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그냥 어쩌다 된 것이 아니다. 또한 안테나 게이트를 생각해 보면 애플은 예쁘게 하는 것에 목숨을 건 것이 틀림없다.
이 제품을 쓰게 될 사용자는 누구인가?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것에 더 중점을 두고 디자인하고 싶은가? 이에 따라 밸런스가 바뀐다. 아니, 바뀌어야 한다.
혼자 제품을 만들 때는 그 밸런스에 대해 명확히 정리해 둘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여럿이서 제품을 만들어 나갈 때는 명확히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회의가 효율적이 되고 좋은 결론이 나온다. 나는 A 안이 좋아요. 아니요. 나는 B 안이 좋아요. 이 얘기를 무한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A 안은 쉽지만 불편하네요. 우리는 편한 것을 추구하기로 했으니 B안으로 갑시다. 이렇게 결론을 낼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이 예쁜 것인가, 빨간색인가 파란색인가. 이렇게 취향을 타는 부분에 대해서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우리는 이러이러한 기준으로 하기로 했으니 이건 직선으로 갑니다라고 하면 된다. 또한 그냥 누군가 그러니까 디자인 책임자의 의견 아니 정확히는 취향을 무조건 따르기로 한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쉽고, 편하고, 예쁘게.
좋은 디자인은 이 세 가지의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다. 그런데 훌륭한 디자인은 이 세 가지가 따로 놀지 않고 하나가 되어 있다. 삼위일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을 하는데 쉽고, 편하고, 예쁜 디자인, 그러니까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떡을 만드는 법이 떠올랐다면 그것은 분명 신내림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나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B612가 그랬다. B612 첫 버전의 UI가 머릿속에서 떠올랐을 때 아 이건 신내림인가? 하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래서,
앱을 켜자마자 일단 전면 카메라 촬영 화면이 나오고,
촬영 화면에는 촬영 버튼조차 없지만 아무 곳이나 탭을 하면 촬영이 되고,
촬영 탭을 하면 마치 프리뷰가 정지한 것처럼 화면이 정지되면서 촬영이 되고,
아래쪽 메뉴만 필터 메뉴에서 공유 및 저장 메뉴로 부드럽게 바뀌고,
촬영한 사진은 바로 저장이 안 되고 마음에 들 때만 저장 버튼을 눌러 저장하고,
마음에 안 들면 더블 탭이나 백스와이프를 통해 다시 촬영 화면으로 돌아가는,
그런 미쳤나? 싶은 UI를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내 의지가 아니라 하늘의 의지 같아서.
이렇게 시작부터 미치고 나니 계속 미친 듯한 방향으로 추진할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전후면 전환을 버튼으로 하지 않고 아래로 스와이프 해서 하게 하였었다 이렇게 하면 화면이 깔끔해져서 예뻐지고 또 화면이 넓어져서 편해진다. 하지만 어려워진다. 그런데 셀카라는 특성상 후면이 우선순위가 낮기에 괜찮다. 게다가 B612는 적당한(정확히는 적당하다 싶은 ^^) 시점에 툴팁을 표시해주는 스마트 툴팁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것을 통해서 어려움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도 있었다. 아마 B612가 처음 만든 UI였을텐데 요즘에는 여러 카메라가 따라 하고 있다. 갤럭시의 기본 카메라도 이렇게 되더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쉽고, 편하고, 예쁘게. 이 세 가지를 모두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부단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