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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Oct 15. 2020

대단한 공간은 아니지만
뭉클한 공간(1)

인천 차이나타운&송월동 동화마을


EP.1 뭉클한 공간(1)

인천 차이나타운&송월동 동화마을


인간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또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다. 내게 고등학교를 다닌 그 3년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에 해당한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친구도, 공부도, 잡다한 것들도. 어긋난 톱니바퀴가 겨우 돌아가는 형세와 닮은 시절이었다.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무너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겨우 톱니바퀴를 돌리며 한 순간 무너져서 부러질까 전전긍긍했다. 나는 위태로웠다.


그렇게 지옥 같은 3년이 흘러 새로운 해, 새로운 계절 드디어 톱니바퀴를 맞출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100점’ 받는 시험지처럼 술술 풀리진 않았으나, 무너질 리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좋은 사람들, 적당히 풀리는 일. 그것만으로도 하루하루 행복하게 느껴졌다. 외줄 타기가 끝나고 마치 산책길을 걷는 듯했다. 혹시 다시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지만, 이 순간을 즐기고자 또 노력했다.


하지만 내 노력은 바로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편안한 산책길이 끝나면 언젠가 또 위험한 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과거와 비슷한 길이라면 면역이 생겨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방심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길이 발아래 펼쳐졌고,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나는 결국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인간관계에서는 어려움을 겪지 않았지만, 적당히 풀리는 일이 풀리지 않았다. 쌓여가는 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고, 무너지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자괴감이 들지만 스스로 무너지고 싶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아 일으켜줬다. 나와 비슷한 고생을 하고 있는 친구 E였다.


E는 나를 붙잡고 1시간을 달려 인천으로 갔다. 동인천역에서 내려 보이는 것은 한 없이 붉게 빛나는 차이나타운의 모습이었다. 다시 맞이한 험한 길은 어둡고 어두워 춥게만 느껴졌는데, 이곳의 태양같이 붉게 타오르는 온기가 나를 감쌌다. 반팔을 입기엔 아직은 추운 5월이었지만, 오히려 덥게도 느껴졌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차이나타운의 문을 지나는 순간 해방된 느낌이었다. 벗어났다는 기분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우리는 가벼워진 상태로 차이나타운을 한 바퀴 돌았다. 주말을 맞아 데이트 온 연인들, 가정의 달을 맞이한 가족들, 시험이 끝나고 뽀로로가 된 친구들이 북적거리는 이곳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놀이동산 같았다. 이곳에서 나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아이처럼 걸었다. 걷다 보니 배꼽시계가 울려 맛집으로 보이는 곳을 찾아 나섰다. 매스컴에 탄 유명한 맛집으로 보이는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시켰다. 음식들은 행복해지는 마법의 물약처럼 먹자마자 미간이 좁혀지며 행복감이 퍼졌다. 음식이 사라지는 동안 행복감은 머리 끝까지 차올랐고,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다.


2019년 5월_바쁜 시간을 뒤로 하고_인천 차이나타운


다시 나와 E와 나는 아름다운 차이나타운을 지나 환상의 세계 동화마을로 갔다. 아이처럼 귀엽게 그려진 벽화를 보고 까르르 웃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곳에 서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동화 속 세상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도라에몽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호두까기 인형과 같이 경례도 하고, 꽃밭 한가운데 서서 꽃이 되기도 했다. 어느 곳에 있어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을 보냈다. 행복과 다리의 고통은 비례하는 걸까? 마음껏 행복해하는 동안 다리는 아파왔고, 인스타그램에서 찾아본 카페에 갔다. 작은 주택을 개조한 작은 카페지만 많은 사람이 있었다. 겨우 우리는 자리를 잡고 음료를 시켰다. 카페 위로 보이는 맑은 하늘이 좋았다.


2019년 5월_동화 속 주인공처럼_송월동 동화마을
2019년 5월_송월동 동화마을 카페_아키라 커피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실 이곳에 온 이유는 위태로웠던 E가 잠시나마 숨구멍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르진 않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일이 풀리지 않는 상황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숨구멍까지 찾으려 노력한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래도 나 덕분에 E 자신이 이렇게 나와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었다며 내게 작게나마 고마움을 전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E에게 어찌 되었든 나는 넘어지지 않도록 손 내밀어 준 것을. 얼떨떨했다. 사실 무너지는 내 몸을 잡아준 것은 E인데 나 또한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는 서로에게 구원이었다. ‘구원’이라는 말은 굉장히 마음이 아리고 뭉클해진다. 구원을 받기 전 상황은 절망적이다. 그리고 구원을 받는다고 해서 상황이 완전히 반전을 이루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전보다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어딘가에는 존재한다. 아프지만 희망적인 '구원'이라는 단어는 눈 아래 작은 눈물방울을 만들며 가슴이 뭉클해지게 만든다.


그렇게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방문한 차이나타운과 동화 마을은 뭉클한 구원의 장소가 되었다. 무채색의 우리에게 붉은빛을 비춰주며 외롭지 않게 계속 온기를 전달했다. 힘들어 지칠 때면 맛있는 음식으로, 엄청난 장관으로, 달콤한 디저트로 구원에 구원을 거듭했다. 그래서 이곳을 생각할 때면 기분 좋아지게 뭉클하다. 뭉클한 공간에도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그중에서도 따뜻한 뭉클함이 가득 차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 그때의 장소를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 숨어 있던 그곳의 온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p.s. 힘들었던 과거의 내게도 이렇게 뭉클한 구원이 되어준 공간이 있었다면 조금은 덜 위태롭지 않았을까 하는 어렸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차이나타운과 동화 마을.

언젠가 또 구원받고 싶은 순간이 오면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바로 떠날 수 있는

대단한 공간은 아니지만 뭉클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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