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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Mar 03. 2024

<독서노트>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현대 경제사상의 이해를 위한 입문서를 읽다

읽기 어려운 책을 읽었다. 그것도 714쪽이나 되는 벽돌책이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라는 이 책에는 애덤 스미스로부터 카너먼까지 지난 300년 동안 활약했던 경제학 대가들의 경제사상사가 담겨있다.


책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책의 표지에 '현대 경제사상의 이해를 위한 입문서'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스미스로부터 시작하여 시대별 인물별로 그들이 주장한 경제 이론들이 총망라되어 있어 입문서로는 전혀 손색이 없다. 경제학에 대한 안목을 넓히는 좋은 기회는 분명하다.

독후감을 세 가지 관점에서 정리해 보았다.


첫째로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들이 자라온 가정환경과 배경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자본론을 쓴 칼 마르크스다. 그는 부르주아로 태어났지만 부르주아 타파를 외쳤고 주벽과 낭비벽으로 평생 빚에 쪼들리고 살았다. 그는 유대인이면서 유대인들에게 가장 악의적인 비판자였다. 아울러 동료인 사회주의자들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평생 상대를 가리지 않고 비판과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짓궂고 냉소적이었다. 또한 씻지 않기로도 유명했다. 살아생전에는 추종자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살아온 편력이 그가 쓴 책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다.


미시경제학을 지배하는 한계 전통을 수립한 앨프리드 마셜은 기독교적 덕목을 몸소 실천했고 20세기의 저명한 학자들을 길러냈다. 그는 업적이나 명예를 탐하기보다 소명의식을 갖고 인간의 조건을 향상하는 데 전념했다.


경제학과 자본주의 윤리에 껄끄러운 문제를 제기한 존 스튜어트 밀은 조기교육의 희생자였고 사랑 없는 모친 슬하에서 자랐다. 머릿속에 방대한 지식을 채웠지만 마음속은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유부녀와 사랑에 빠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와의 사랑이 그의 역작 <정치경제원리>를 탄생시켰다.


일반적인 경제적인 범주보다 법, 윤리, 제도 등에 관심을 둔 구제도학파의 대표인 베블런은 짓궂은 성격으로 악마 같은 느낌이 묻어났다. 그는 괴짜에 말썽꾸러기였고  전교생을 알코올 중독자나 식인종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우등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기보다 기존의 이론을 비판하는 데 더 소질이 있었다. 이런 비판적인 태도는 이민자의 아들로 가난하게 살았던 성장환경과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을 가르친 적도 배운 적도 없었는데도 그는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자유무역의 화신인 데이비드 리카도는 대학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경제이론에 파고들었고 금융시장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지만 주식투자를 통해 수백만 파운드를 벌었다.


각자 걸어온 삶의 기반이 본인이 세운 이론과 학풍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과 이웃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본다.


두 번째로는 경제학자들의 관점과 소명에 관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인과관계를 중시했지만 자연과학자들과 달리 관심의 초점을 행성이 아닌 사람에 두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경제 행위자이고 주인공 없는 연극을 생각할 수 없듯이 사람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누락된 경제학은 있을 수 없다고 여겼다.


맬서스는 암울한 미래 전망을 내놓았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충격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이런 비관적인 결론을 내린 것은 그의 진리에 대한 사랑과 인류애 때문이었다. 이 이론의 맹점은 정확하지 않고 신뢰도 가지 않는 과거 자료를 논거로 인구변화를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의 저술은 다윈의 진화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생존 경쟁이 새로운 종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단초를 제공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오늘을 위해 싸우면 언젠가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알프레드 마셜은 경제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구축하기 위해 싸웠다. 그는 평온한 삶을 살았고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졌다. 그는 이상적이었지만 이상에 빠져 현실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그는 경제 현실 분석에 있어서 누구보다 엄격하고 신중하고 사려 깊었다. 경제학의 주요 관점을 변화하고 발전하려는 인간 그 자체에 두었다. 경제학자들은 이론의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를 주시해야 한다고 경고했고 탄력성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가다듬어 이론과 현실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직접 보여주었다. 아울러 경제학은 인간의 삶의 조건을 향상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갈고 연마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답을 찾아다녔고 언제나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한계주의는 경제학에 접목된 진화이론이다. 기업에도 적자생존의 원리가 적용된다. 마셜은 기업들이 영원히 생존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의 경제 생물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리카르도는 자유무역은 교역 상대국이 경제적으로 앞서 있든 그렇지 않든 두 나라 모두에 이롭다고 했다. 왜냐하면 두 나라의 국민이 더 많은 제품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유한 국가들이 채택하는 보호무역주의가 저개발 국가들에게는 경기침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잡한 진행과정을 단계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철저하게 분석했다.


케인즈는 정신의 힘을 굳게 믿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경제학의 광신도에게 맞섰던 그는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고 굳게 믿었다. '장기적으로'라는 어구를 자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래에 대해 매우 불확실하게 생각했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아마추어 예술 애호가였던 케인즈는 목표 달성보다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행동 경제 학자들은 사람들이 뭔가를 잃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고 때로는 사소한 데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혀냈다. 또한 미래의 만족보다 지금 당장의 만족을 선호하며 그 결과 노후 대비 같은 자신들의 소비 성향에 대해 무감각한 경향을 띤다.


경제학자들이 학문적인 이론이나 성취에만 관심이 머무르지 않았고 사람들을 중시했으며 인류와 사회에 대한 대의를 가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점도 새로웠다.


세 번째로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


경제학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고 무엇을 선택할지 가르쳐 주지 않고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설명해 줄 뿐이다. 경제학은 정확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과학이 아니다. 경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자들이 여러 가지 이론을 제시하고 있지만 어느 것도 완벽한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심리가 아니라 겸손함이다. 훌륭한 경제학자란 오랫동안 효력을 입증할 수 있는 모델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상황이 달라지면 처방도 달라져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치과의사처럼 실용적이어야 한다. 이론적 모델은 항상 현실과 결부된 경험적 검증을 통해 증명이 되어야 한다. 위대한 경제학자는 예술가처럼 초연하면서도 청렴해야 하지만, 때로는 정치가처럼 세속적이어야 한다.


경제 정책을 시행할 때,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사항은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을 사전에 예측하는 일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요소 부존 이론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신 태도다. 한 나라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위대한 경제학자들을 찾아 길을 묻는 지혜일 수 있다. 정부와 경제는 상호 작용하는 관계에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들의 작용과 반작용을 무시하지 않았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정부는 필요악이나 선이 아니다.


자유시장은 고통이 없는 시장이 아니다. 한 국가가 시장을 개방하면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생긴다.  자유시장이라고 해서 고통이 뒤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듯이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보호무역 정책은 항상 경제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며 특정 계급이나 집단에게만 이익이 될 뿐이다.


법은 정의에 주안점을 두지만 경제학은 효율성을 중시한다. 경제학은 무엇보다 실질적이고 실용적이어야 한다. 경제학은 인간의 삶을 향상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갈고 연마해야 한다. 경제학이 다루는 분야는 가격, 이윤, 지대, 비용 등에 한정되지 않는다. 법, 도덕, 유행, 철학 등도 경제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학은 그것이 대상이 되는 사회 자체만큼이나 깊고 넓다.


미래에 대해 너무 절망적일 필요는 없다. 미래가 반드시 희망적일 것이라는 어떤 보장도 없지만 희망을 가질만한 이유는 있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하더라도 항상 난관과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최대 위험은 경제적 요소가 아니라 정치적 요소에 있다. 불평등과 빈곤은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병폐로 이를 불식시킬 방안은 투자와 기업가 정신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의 조세 및 재분배 정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는 기존의 소득세 대신 소비세를 전면적으로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확실성을 보장하는 방법이 아닌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경제학의 한계와 효용성에 대해 안목을 넓히는 기회였다.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우리가 사유하는 어떤 이론이나 학문도 100% 정확할 수 없고 맞을 수도 없다. 변증법처럼 경제학도 새로운 이론이 제시되었다 부인이 되고 다시 새로운 이론이 정립되면서 대립되고 또 합쳐지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간다.


가장 울림이 있는 문장은 이것이다. '미래를 낙관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경제학자들은 모든 가능성을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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