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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진 Nov 20. 2024

누이들과 미국 여행기 32-예바 부에나 가든

샌프란시스코 도심 속 오아시스 Yerba Buena Gardens

누이들과 함께 한 미국여행의 막바지다. 누이들은 그간 미루어둔 쇼핑을 하기로 했고 나는 홀가분하게 샌프란시스코도심을 돌아보기로 했다. 미국에 와서 대중교통을 처음으로 이용하게 되었다. Hayward 전철역까지 누나가 차로 데려다주었고 이후는 알아서 가야 했다. 전철역은 한가했고 건너편에 멋진 조형물이 있었다. 입구에 꽃이 피어 반가웠다.

전철을 이용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다 젊은 미국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Anthony라는 젊은이는 친절하게 티켓을 사주었고 함께 전철을 탔다. 가는 동안 서투른 영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식료품점에서 일하며 출근하는 길이라고 했다. 내려야 할 전철역도 꼼꼼히 챙겨주었다. 아들뻘이지만 인스타그램을 서로 나누고 한국에 놀러 오라고 했다.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 마음이 많았는데 뜻하지 않게 미국인을 아는 기회가 생겼다.

부겐빌레아
병솔나무

전철에서 내려 주택가를 걸었다. 예쁜 주택들이 즐비했고 부겐빌레아가 붉은 꽃이 만발하여 보기가 좋았다. 누이네 마을에 있던 병솔나무도 보인다. 원래 다운타운을 가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이왕 내린 것이라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그러다 용무가 급해졌다. 미국에서는 화장실 찾기가 가장 어렵다. 큰 가게가 보이면 바로 들어가 화장실을 찾았지만 없다고 했다. 길러리에서 노상방뇨할 상황에 이르렀는데 겨우 스타벅스를 찾아 급한 불을 껐다.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이 Yerba Buena Gardens이다. 큰 고려를 하고 오지 않았는데, 우연치고는 횡재에 가까운 행운을 만났다. 무엇보다 Garden이라는 단어에 이끌림이 컸다. 근처에 100년 된 가톨릭 성당인 Saint Patrick Church도 있었다.

이곳은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공원이다. 푸른 녹지가 눈을 시원하게 한다. 잔디광장에서 행사가 있었는지 의자가 많이 놓였다. 많이 돌아다녀서 쉬고 싶었다. 광장 옆에 큰 건물로 들어갔다. 넓은 카페가 있었고 누구나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미국에 체류하는 20여 일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았다. 한국에 가면 깔끔하게 정리를 해야 해서 기념 삼아 사진을 하나 남겼다. 나름 분위기 있게 찍고 싶어 상념에 잠긴 모습을 연출했다.

20 여일 면도하지 않은 내 모습

샌프란시스코의 옛 이름이기도 한 Yerba Buena는 좋은 풀이라는 의미를 가진 스페인어다. 단순한 공원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예술 관련 복합 광장이었다. 특히 이곳은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많은 기념관 중 3번째로 큰 곳으로 알려진 마틴루터킹 폭포가 있었다.


폭포 안쪽에는 그의 유명한 연설문이 각국 언어로 새겨져 있다. 한국어도 물론 있다.


"우리는 빨리 물질 중심주의 사회로부터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로 변화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기계와 컴퓨터, 이윤추구 및 재산권 등을 인간보다 더 중요시할 때, 인종차별주의, 물질주의, 및 군국주의의 세 개의 기둥을 허물수는 없는 것입니다."  


금박으로 새겨진 다음 문장도 가슴을 울린다.


"No, No, We are not satisfied, and will not be satisfied until 'Justice rolls down like water and righteousness like a mighty stream'"


성경을 인용하여 정의와 공의가 물처럼 거대한 강물처럼 흐르기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다.

그의 예리한 지적과 간절한 외침은 지금 이 시점에도 동일하게 울림이 크다. 미 전역에 그의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짧은 생애를 살았음에도 지금도 그의 영향력은 지대한 것 같다.

마틴루터킹폭포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폭포 위쪽으로 가면 선인장과 다육이로만 이루어진 진짜 정원이 있다. 다리 위에 조성한 작은 정원이다. 첫눈에 놀라움이 일었다. 선인장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그전에는 몰랐다. 각기 다른 선인장과 다육이를 적절히 배치하여 꽃이 없어도 충분히 화려한 정원을 연출했다. 정원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한참을 머물렀다.

광장 이면에는 유명한 조각작품이 있다. Chico MacMurtrie의 운동 청동 조각품인 "Urge to Stand'다. 그는 로봇 조각, 설치, 퍼포먼스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조각은 체중이 100파운드 이상인 사람이 지구를 바라보는 벤치에 앉아 있으면 조각품이 움직인다. 움직이는 대화형 조각인 셈이다.

Chico MacMurtrie의 Urge to Stand

다리 위에서 바라보이는 샌프란시스코 도심이다. 퇴근 시간이 가까운 탓인지 차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다. 미국 도심에서는 운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신호등은 많지 않은데 교차로마다 Stop 표지판이 서 있고 반드시 3초 정차룰이 있다. 들어온 순서대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 점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공원을 돌아 나오는 길에 목련꽃을 만났다. 11월인데도 목련이 활짝 피었다. 자목련이라서 우아하기까지 하다. 꽃다발을 한 아름 선물로 받은 기분이다. 꽃을 보고 있으니 지나가는 미국인이 아름답지 않냐고 말을 건넨다. 보는 눈은 저마다 비슷한 것 같다. 자목련 이외에도 미국 목련인 태산목도 꽃송이를 달고 있다.

태산목

길 건너에 있는 Saint Patrick Church도 들렀다. 고풍스러운 외관을 지녔고 크지는 않지만 단아한 모습이다. 외관이 우리나라의 명동 성당을 닮았다. 미사 중이어서 잠깐 들어가 보았다.

실내는 유럽 성당처럼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다. 그래도 높은 층고와 이어지는 아치가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십자가를 지고 있는 예수님의 외투가 화려해서 눈길을 끈다.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고난 중이라도 그분의 위엄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 씀 같다.

전철역 입구

어느덧 해가 기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이번에는 미국인 여학생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가는 전철역을 찾아갈 수 있었다. 길치라서 뾰족한 수가 없다.


막바지에 뜻밖에 좋은 곳을 찾아 여행의 마무리를 잘했다. 미국에서 긴 여정이 끝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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