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by 김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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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다가 엄마에게 언성을 높였다. 친구들의 결혼 이야기가 나온 도중이었다. 내게 결혼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 엄마에게 생각이 있으나 지금은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내 입에서 결혼을 안 한다는 말이 아니라 못 한다는 말이 나오자 엄마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단지 30대가 되고 나서야 어떤 무게를 실감하게 됐음을, 내가 겪고 있는 삶이 생각만큼 가볍지 않음을 말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상처를 받았다. 탓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떤 말이라도 뱉고 싶었는데 나오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삶이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길이다, 라고 항상 생각해왔는데 왜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마음이 우울해져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엄마의 환갑이 2주도 남지 않았는데 나는 또 너무 쉽게 소중한 것을 놓아버리는구나.


해가 갈수록 실천이라는 말의 의미가 멀어진다. 갖고 있는 것들을 갖고 있으려는 노력만으로도 버겁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우울을 즐기던 20대의 노래들을 다시 들었다. 같은 감정, 같은 기분이 몰려와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는 기분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는 이게 좋았고 완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무서웠다. 지금 다시 갇혔다가 깨어나면 나는 40대가 되어 있을 테니까.


이소라의 음악을 담은 유튜브 채널의 베스트 댓글 중 하나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누나, 슬플 때만 찾아와서 미안해요. 힘들 때 찾는 것에 미안함을 느껴본 적은 없었는데 미안할 것들이 많았다. 달리기. 힘들 때만 달리는 것 같고 달릴 때만 글을 쓴다.


달리기는 내가 결국 아무 것도 되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고 느꼈을 때 시작했다. 이건 할 수 있구나. 완수하고 실력을 늘릴 뭔가가 아직 남아있구나. 그래서 달리기가 좋았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도 위안을 준다.


이별은 항상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배에 큰 구멍이 난 느낌이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다. 항상 이별 뒤엔 더 깊은 우울로 우울을 극복해왔는데, 우울에 빠지는 것도 두려운 나이가 되니 할 수 있는 게 없다. 충분히 어른이 됐다고 자만하며 모든 게 다 괜찮은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그게 다 상처였다. 아무는 게 더디다. 치유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 여행도 어렵고 달리기만으로 극복할 자신은 없는데 아무튼 그러던 와중에 '초행'이라는 영화를 봤다.


'초행'은 두 사람이 만나 꾸리는 인생을 소형 자동차에 비유한다.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 길을 잃을 뻔한 수현에게 지영은 말한다. "멈추면 죽어"


멈추면 죽는다. 그러니 파고 가고 파고 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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