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들레 Sep 05. 2022

나의 실수史-어쩌다 실수가 두려워 아무것도 못하는...

2015.9 계간 <니> 40호, '실수하며 자라다'

-어쩌다 실수가 두려워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되었을까 

  

어린 시절 실수 때문에 혼난 기억은 없다. 동생 봐주라는 심부름을 하지 않아 두고두고 그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가 지금 아이에게 자주 혼내고 짜증 내는, 물을 따르다 엎지르거나 오줌 실수 등으로 혼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때 학원에서 오줌 실수를 했었다. 주산학원에서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수업 중이라 말을 못 했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여자 선생님이 내 속옷을 빨고 나를 닦아주셨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크게 혼난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엄청 부끄럽고 창피했다는 것만 기억난다. 8살이고 언니이고 여자아이였으니 말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실수란 말을 엄마에게 많이 들었다. 특히 산수 시험에서 앞부분은 다 잘하다가 마지막 계산에서 실수했을 때, 엄마는 아는 건데 실수해서 틀렸다고 무척 안타까워하셨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셈이라고, 다 잘해도 마지막에 그러면 말짱 꽝이라고. 그 이후는 계산 과정 끝까지 긴장하며 확인하곤 했다. 그때 알았던 걸까? 알아도 틀릴 수 있고 몰라도 맞을 수 있고 시험점수란 게 내가 뭘 제대로 배웠나, 알고 있나를 제대로 봐주는 틀이 못 된다는 것을. 시험에 다 맞으면 엄마에게는 칭찬을 들었지만, 초조해하며 틀리지 않을까 조바심 났던 것에서 안도감이 들지만,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했구나 하는 뿌듯함보다는 운이 좋아 실수하지 않은 것뿐이고 헷갈리던 것이 맞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중학교 때는 실수가 좋았다. 친구들이 나를 상당히 차갑고 도도한 아이로 생각했는데 막상 친해지면 어수룩한 부분도 있고 깜빡깜빡 잘 잊고 덤벙덤벙 실수도 잘한다는 걸 알고는 인간미 있게 봐줬다. 학교에서 긴장하고 살던 내가 풀어지는 때 실수가 하나둘 나왔고 그러면 선생님이나 어떤 친구들은 안 그렇게 생긴 애가 그런다고 이상하다고 했었다. 그럴 때마다 실수하는 내가 진짜 나고 안 그렇게 보이는 건 당신들의 착각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중학교 때까지는 내가 실수투성이고 못났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듯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내 본래 모습을 모르고 있고, 만약 알게 된다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나를 야무지고 똑똑하고 뭐든 잘할 것같이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의 오해이고 그걸 내가 굳이 해명할 필요까진 없지만 그런 평가와 달리 내가 모자라고 부족하다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학교에 가서는 내가 남들보다 느리고 해보지 않은 것도 많다며 움츠러들 때였다. 딱히 기억나는 실수 에피소드가 있는 것은 아닌데(있긴 하다. 술기운에 내가 아닌 내가 되는 것이 신기해 술을 마시다 저지른 실수들….) 내가 이렇게 뭐든 시도해보지 않고, 문제의식도 없이 치열함도 없이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어쩔 수 없는 실수인가 잘못인가 싶은 답답한 시기였다.     


그렇게 자신감이 바닥이어서 취직자리를 찾는 데 적극으로 나서지 못하고 취직시험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도서관도 다니고 가끔 영화제도 다니며 지내던 백수시절은 어찌어찌 취직을 하고 보니 몰라서 저지른 실수 같기도 했다. 




취직을 해 처음으로 직장에 나가게 됐을 때 내가 그동안 살아온 것이 다 실수 같고 어디서부턴가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 같다는 생각은 접어두고 어떻게든 빨리 익숙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응대부터, 읽어는 봤지만 직접 쓰기엔 익숙하지 않은 기사 작성에서 실수들이 터져 나왔다. 실수하며 배운다는 생각으로 다음에 같은 실수 안 하면 된다고 다짐하면서 때로는 웃음으로 민망함을 눙쳐 보기도 했었다. 한두 달 시간이 지나 실수 건수는 줄었지만 실수가 계속되자 내 실수는 무능이자 민폐로 여겨졌고 혼나는데 웃음으로 넘기려다가 웃는다고 더 혼나기도 했다. 


신입을 제대로 가르칠 여력이 없던 조그만 신문사에서는 한 달 정도만 유예기간을 두고 자습을 한 다음부터는 맡은 지면을 채워야 했다. 내가 펑크를 내면 그걸 대신 메워야 하는 선배들은 점점 더 나를 벌레 보듯 했고 작은 실수라도 할라 치면 “저게 언제 인간이 될지 모르겠다”는 투의 말을 했다. 내가 맡은 면을 잘 해낼 거라는 기대가 사라지자 훈련이란 이름하에 수많은 가혹한 언어로 밟혔다. 그렇게 해야 오기로라도 빨리 능력을 갖추게 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처럼 오기가 생겨 독해지는 게 아니라 주눅이 들어 목소리는 더 작아졌고 취재를 나가기는 더 힘들어졌다. 그렇게 4개월 가까이 버티다 더는 못하겠다 싶어 가출을 했었다. 회사에서 자존감이 뭉개지면서 일상생활에서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잃었었다.  

   

어쨌든 그 회사에서 3년 넘게, 큰아이 낳기 전까지 일을 했다. 다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다행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외신번역 일이어서 실수로 욕먹지는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중요한 건 팩트와 소스! 그 기사에 문의가 오든 항의가 오든 그 두 가지만 확실하면 겁나지 않게 되었다. 내 컴퓨터에는 언제라도 찾을 수 있게 수없이 많은 폴더에 영어기사와 자료들만 가득했다. 그리고 예전에 했던 것들, 다른 데서 했던 것들을 매뉴얼 삼아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해 별문제 없이, 불안 없이 면을 채워갔다.     




아이를 낳으니 이건 더 익숙하지 않은 일 투성이었고 그래서 더 실수투성이로 느껴졌다. 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도 있지만 항상 불안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혹여 뭔가를 실수해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가져오면 어쩌나, 아이를 실수로 잃어버리면 어쩌나 신경이 곤두셨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나의 직업이라 생각하고 예전 직장에서처럼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이 몸무게가 빨리 늘지 않는 것, 잘 자지 않는 것, 예민한 것 같은 것 등등 주위에서 한 마디씩 듣는 부정적 지적사항들을 고치고 싶었다. 그리고 혹여 내가 몰라서 한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계속 되짚어봤다. 내 머릿속은 과부하가 걸렸다가 꺼져버리고 그러다 힘들게 예전 상태로 돌아왔다. 내 몸도 비슷한 흐름으로 의욕적이었다가 지쳐서 허우적거리고 잠에 빠지다가 돌아오고를 반복했다.     


지금은 예전만큼 실수가 두렵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실수를 한다고 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아니고 내 실수로 아이가 돌이킬 수 없이 잘못될 수 있다는 건 과한 걱정이란 걸 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내가 실수를 겁내지 않고 무언가를 하며 만족할 수 있으려면 내 역사 속에 맺혀있는 응어리들을 풀어야 하리라. 그러면 내 몸속의 피들도 막힘없이 흐르고 살아있는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정은선 _알트루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만 보다가 주변 사람, 이웃,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얼마 전 둘째가 태어나 이제 세훈, 세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잔소리 나의 잔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