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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Oct 31. 2022

따뜻한 말 한마디

2016.3. 계간<니>42호, '마음 알아, 배려'

엄마가 우리에게, 특히 아빠에게 원하던 건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아빠에게 서운한 일이 있으면 나와 동생들 듣는 데서 “니 아빠는 어쩜 고맙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소연하는 엄마를 보며 고맙다는 말이 뭐 대수라고 그것도 안 해주는 아빠가 안타까웠다. 지금은 ‘엄마가 고맙다는 말을 들었더라면 정말 만족했을까?’ 싶다.



얼마 전 두 아이와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는 깜빡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서 애들 손톱을 잘라주고 있는데 남편이 퇴근했다. 남편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보, 오늘 고생 많았지?” 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힘들었던 마음이 녹는 게 아니라 불끈 화가 솟았다. 이 사람이 내가 정말 힘들었다는 걸 아는가 싶기도 하고, 안다 하더라도 그냥 말로 때우고 넘어가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마음을 모르고 제대로 느끼질 못하니 따뜻한 말 한마디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큰아이를 임신했을 즈음 회사를 옮긴 남편은 점점 퇴근시간이 늦어졌다. 나 혼자 저녁을 먹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나도 늦게 들어올 거리를 찾기도 했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바깥일을 만들어 늦게 들어오기도 어렵고 꼬박 집에서 아이와 둘이 보냈다. 아이 돌보는 건 서툴기는 해도 아기가 예뻐서 좋았는데, 외로웠다. 좋은 느낌도, 힘들고 무서운 느낌도 남편과 공유하지 못했다. 자신은 회사일, 나는 집안일과 육아로 확실히 분야를 나누는 남편의 태도가 불만스러웠다. 남편과 함께하는 육아를 꿈꿨기에 아이 돌보기를 내 책임으로만 돌리는 남편에게 실망감도 컸다. 관여는 하지 않으면서 질책할 거리만 찾는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기 낳고 혼자 돌보며 사는 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기다리다 원망하고 화가 나서 아이가 잠든 밤 남편이 들어오면 아무 말도 못 붙이게 무섭게 했다. 늦게까지 일하느라 안됐다는 마음 혹은 오랜만에 봐서 좋은 애틋함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때는 나 혼자서 힘들다는, 내가 훨씬 더 힘들다는 생각에 빠져있어서 남편도 힘든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다. 힘들어하는 나를 배려해서, 남편이 자신도 힘들다고 내게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 못 했다. 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서, 내가 더 힘들고 내가 더 억울하다 생각하니 나를 힘들게 하는 남편에게 내가 먼저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아빠와 결혼해 속은 것, 손해 본 것이 많다고 여기고 살았었다. 회사원이라는 안정적 직업을 가진 아빠와 결혼했던 엄마는 엄마와 상의 없이 혹은 엄마의 만류에도 아빠가 회사를 그만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끝끝내 아빠의 잘못, 실책이 되어 엄마의 아빠 탓 레퍼토리 1번이 되었다. 엄마가 볼 때 자신은 좀 더 잘 살아보려고 가정을 위해 노력하는데 그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사람이 아빠였다. 나와 동생들이 자라니 우리는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엄마 마음은 몰라주고 제멋대로 하는 나쁜 딸들이 되었다. 엄마는 항상 옳은 사람이자 억울한 사람이자 외로운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사정이든 마음이든 엄마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은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지금 든다.


우리 집에는 따뜻한 말이 있을 자리가 없었다. 뾰족뾰족한 말로 서로 찌르거나 들어도 못 들은 척 무시하거나 했다. 엄마의 생각에 따르면 아빠가 공사현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건 좋은 밥그룻을 차버린 아빠의 자업자득이다. 엄마는 아빠를 아쉬워하기는 했지만 애틋해하지는 않았다. 물론 아빠도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두 분이 싸우기도 했지만 무슨 합의가 생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의 일방적 하소연으로 시작돼 결혼하기 전부터 모아놓은 아빠의 단점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시작은 다르지만 중간과 끝은 같은 싸움이었다. 자신의 좋은 감정, 안 좋은 감정을 그때그때 차분하게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쌓아뒀던 원망들을 봇물 터뜨리듯 쏟아붓는 것. 거기엔 다른 사람 마음을 알아주는 배려는 없어 보였다.




남편의 아이를 다시는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마음을 바꿔 둘째를 낳았다. 남편이 아이를 더 원했고 그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겠기에 선택했다. 거기엔 둘째까지 낳으면 남편이 당연히 아이 키우는데 더 기여하겠지, 나를 조금 더 도와주겠지 하는 기대도 깔려있었음을 고백한다. 그 기대가 깨졌을 때 배신감이 상당했지만 나 혼자 만든 기대였기에 씁쓸하게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남편이 집안일이나 육아를 하지 않는 것에, 많이 늦게 들어오는 것에 별 불만 없이 살고 있다. 첫아이 때보다야 훨씬 덜하지만 힘들고 도망가고 싶은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남편이 늦게 들어와도 자는 아이들 얼굴을 꼭 보고 자고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평소에 아이들을 대할 때를 보면, 또 세 식구일 때보다 네 식구인 게 좋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역시 둘째를 낳기 잘했구나 싶다.


그런데도 중간중간 내가 힘들어지는 때, 나만 혼자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육아로 힘들 때 남편에게 버려졌단 느낌이 되살아나며 지금의 남편이 아니라 예전의 남편이 했던 말, 태도로 그의 본질을 규정해버린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음을 내가 잊고 있었다고, 조금도 변한 게 없다고 말이다. 엄마처럼 아이들에게 말로 하진 않지만 내 속에서 고정된 레퍼토리다. 그 레퍼토리로 들어가게 되면 남편에게 작은 관심조차 갖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그는 6년 전과 여러모로 같을 리가 없는데, 작을지는 몰라도 존재하는 변화를 봐줄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나와의 관계가 좋아질 수 있는 지금의 남편을 무시하려고 한다.


그래도 전과 달라진 건 내가 힘들고 우울해진 상태임을 남편에게 알린다. 그 사람이 보고 그냥 알아주고 적절한 뭔가를 해주리라는 기대를 버리고 최소한이나마 표현을 한다. 사실 그동안도 내가 안 좋은 상태일 때 남편은 눈치 챘고 나름으로는 나에게 말 걸기도 시도했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었다. 내가 기대했던 때, 기대하는 바대로 마음 써주는 것이 아니었기에 무시했던 것 같다. 지금은 한창 힘든 게 지나고 나서 남편에게 힘들었던 점을 이야기하면 남편은 예전에 내가 충격받았던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들어준다.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니고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다. 이제야 “당신이 있어 든든하다, 좋다”는 남편의 말이 입에 발린 말로만 들리지 않는다. 나는 아직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따뜻한 한마디를 해주는 남편이 있어 좋다.          



♥정은선 _ 알트루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만 보다가 주변사람, 이웃,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남편과 8살 세훈이, 2살 세진이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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