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을 향해 빛나는 별

프롤로그 : 탑

by 이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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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만남]

Prologue : 탑

Chapter 1 : 어딘가 조금 다른 사람들

Chapter 2 : 멀고도 가까운 죽음

Chapter 3 : 삶에 관한 인터뷰

제2부 [변화]

Chapter 4 : 거미에게 거는 말

Chapter 5 : 만년성과 이 시대의 마지막 공주

Chapter 6 : 비밀의 정원

Chapter 7 : 나뉜 삶과 죽음의 이유

제3부 [선택]

Chapter 8 : 가을별의 아이

Chapter 9 : 우리가 함께 있으려면

제4부 [지옥에서 천상까지]

Chatper 10 : 지옥

Chatper 11 : 연옥

Chatper 12 : 천상

Epilogue : 별






Prologue: 탑



그녀는 눈물처럼 높다란 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90세가 넘었건만 허리는 여전히 꼿꼿하고 두 눈에는 생기가 넘치는 채였다. 세월은 그녀를 부드러이 비켜가다가 그 두 눈에만 지혜로 머문 것 같았다. 유난히 길었던 그 해의 여름이 끝나던 그날 밤, 그녀는 어슴푸레한 발걸음으로 탑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수천 번도 넘게 들어섰던 탑이지만 그녀에게는 매번 새로운 의미였다. 그날도 그랬다. 늘 엄숙하고 무거웠던 분위기는 들떠있었고, 무겁게 짓누르던 대기는 어느새 살짝 웃음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잘 기억하지 않고 되돌아보지 않는 그녀건만, 그때 그 아이의 곁에서도 이런 느낌이 났던 것이 기억났다. 이미 수십 년도 넘게 지난 시간이지만, 그 순간이 어느새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녀는 머뭇거리지 않고 연회장으로 향하는 자단목 문을 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이렇게 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연회장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진홍빛 카펫 위로 그녀는 눈사슴처럼 사뿐사뿐 걸었다. 그녀의 발자취 사이에는 박수갈채와, 동경의 눈빛이 녹아들고 있었다. 눈인사와 부드러운 화답의 손짓은 남았지만 발걸음은 단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연단까지 향하는 그 붉은 길은 그녀만의 순례자의 길이었다. 박수소리는 어깨를 짓눌렀고, 죄책감은 미소 밑에 감춰진 아픔을 찔러댔다. 하지만 그녀는 꿋꿋한 미소로 세상을 넘어서는 그 길을 올랐다. 이것은 그녀가 짊어져야 할 짐이었다. 그녀에게 남겨진 세상의 무게고 삶의 웃음소리였다. 무거움을 잊고 나이를 내려놓고 세월을 놓고 지혜에 닿으며 마침내 그녀는 모든 사람들을 다 굽어보는 연단 위에 섰다. 멀리서 사회자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 귀한 발걸음을 옮겨주신 명 여사님의 개회 연설을 듣겠습니다. 명 여사님은 ‘감정탑 참사’의 생존자이시며 회고록 ‘가을밤을 향해 빛나는 별’을 통해 전 세계에 빛을 가져오는 것에 크게 기여하신 분이십니다. 모두 열렬한 박수로 환영 부탁드립니다.”

좌중을 바라보고 있는 명 여사의 어깨 위로 다시금 화포처럼 거대한 박수소리가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평온했다. 수천만의 책장을 넘겼던 그 부드러운 손짓으로 그녀는 거미줄처럼 짙고 아름다운 회백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이제는 그때 그 순간의 이야기들을 해야 할 것을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가까웠고 너무나도 좋은 친구였던 그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어느새 70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그 순간들은 눈물처럼 차올라 눈앞에서 번진다. 그때 그녀의 이름은 외자가 아닌 두 글자였다. 그 친구와 함께 있었던 순간들에는 말이다.






1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