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어딘가 조금 다른 사람들
1화 : 어딘가 조금 다른 사람들
명아는 벌써 일곱 번째로 들고 있던 펜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펜을 돌리는 것이 영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지루함은 그 모든 것이 상관없어지게 만든 것 같았다. 입술을 오리처럼 비죽 내밀고 그 위에 펜을 올려놓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서 선배인 김기자가 한 마디 쏘아붙였다.
“멍아 넌 밥값 안 할래? 그렇게 빙구처럼 있을 거야?”
명아는 눈을 새초롬하게 뜨고 대답했다. 따분함이 콕콕 박혀있는 표정이었다.
“선배님도 참. 제 이름은 멍이 아니라 명아라니까요! 그리고 수습기자가 혼자서 뭘 해요. 선배님 따라다녀야죠. 그래서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거고요.”
“근데 너 그러고 있으면 나까지 정신 사나워서 더 아무것도 안되거든? 밖에라도 나가서 뭐라도 해줄래? 가서 제발 커피숍에서 기사 초안이라도 써와.”
“베에. 제가 선배님 두고 어딜 가요. 말썽 부리면서 여기 있을게요.”
혓바닥을 날름 내민 명아의 모습은 15살 소녀마냥 깜찍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마감에 쫓겨 극도로 예민해진 김기자에게는 이마에 힘줄이 돋게 만드는 일이었다. 둘의 실랑이를 보다 못한 동료인 박기자가 개입한 것은 명아가 펜을 여덟 번째로 떨어트려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을 때였다.
“명아 너 소개팅 하나 안 할래?”
“소개팅이요? 갑자기 왜요? 어떤 사람인데요? 저 소개팅 같은 거 안 해요.”
“그냥 내 지인인데 꽤 특이한 애거든. 걔도 소개팅 안 한다던데 너랑 잘 맞을 것 같아서. 근데 넌 왜 소개팅 안 해?”
“요새 좀 바빠서 소개팅이고 연애고 할 시간이 없어요.”
박 기자는 옆에서 ‘하지만 펜 돌릴 시간은 있나 보지? 쌈 싸 먹을 년 같으니..’하고 중얼거리는 김기자를 애써 무시하고 재차 물었다.
“한 번 만나봐. 특이한 사람끼리 어울리는 거잖아 원래.”
“제가 뭐가 특이하길래 저랑 잘 맞을 것 같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대체.”
“넌 비글 같고 그 친구는 골든 레트리버 같으니 같이 놀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거지.”
“그게 뭔 소리래요.”
“암튼, 한 번 만나볼 생각 있으면 자리 주선해줄게. 그 친구도 좋은 사람인데 외로워 보이고, 너도 좋은 사람인데 요새 심심해, 아니 좀 외로워 보이니 만나볼 만한 것 같아서 그래.”
명아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의외로 똑 부러지게 거절했다.
“거절! 마음만 받을게요. 남자 귀찮아요. 쓰레기 같은 전 남자 친구한테 제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또 남자를 엮어주시려고 해요. 남자들은 다 똑같아.”
“음.. 그럼 인터뷰를 한다고 생각하고 만나보면 어때? 사실 인터뷰할만한 거리가 있기는 하거든 그 친구.”
“오 그래요? 인터뷰는 좀 끌리는데요! 어떤 점이 특이해요?”
“명아 너도 감정 에너지에 대해서 알고 있지? 감정에너지가 굉장히 높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음, 보통 사람들의 감정에너지는 잠깐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흘러나와서 그 사람 쪽에 고이더라고! 그래서 잠시만 대화해도 마음속 깊은 곳 이야기가 흘러나온대.”
“재미있네요! 그건 한 번 찾아가 볼 만한 것 같은데!”
“오 그래 잘 생각했다. 내가 조금 있다가 어디로 가면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는지 알려줄게. 가서 말도 트고 인터뷰 시간도 잡고 해 봐.”
“네!!”
그 뒤로 명아는 인터뷰 준비를 한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가 결국 성난 김기자에 의해 사무실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찰리는 24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버스를 탔다.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그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큰 모험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종교인들을 구경했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커다란 글씨로 <자살하는 이들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세상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너무나도 변했었지만, 한 가지 부분에서만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삶의 예찬론자들은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며, 그것은 별로 보기 좋은 일은 아니었다.
생명유지장치들은 인간의 수명을 한계 이상으로 극복시켰고 평균수명은 이제 거의 150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고, 그 밑바탕에는 살아있는 것만이 최고의 행복인 마냥 포장시키는 사회적 분위기가 큰 역할을 했다. 사회는 아이를 낳는 것보다도, 가정을 갖는 것보다도, 그저 살아남는 것을 최선의 가치로 선포하는 것 같았다. 찰리는 세상 어딘가에 굵은 문자로 생명은 어떤 경우에도 소중한 것’이라고 쓰여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이었다.
찰리는 ‘삶을 포기하면 지옥에 갑니다!! 영원토록 불구덩이에서 고통받습니다!!’라고 소리치는 삶의 예찬론자를 보며 깊은 상념에 빠졌다. 사는 것을 괴로워하는 것이 죄악이라면 모든 사람은 죄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찰리의 머릿속에는 들어차고 있었다. 어쩌면 인간은 떠나야 할 때를 몰라서 이처럼 수많은 문제들을 직면하게 된 걸지도 모르는 일이다.
감정에너지가 발굴된 지 70년째, 살아남기 위한 모든 행동이 투쟁이 되는 순간이 도래하고 있었다. 가진 자는 지키기 위해, 없는 자는 가지기 위해, 배부른 자는 비우고 빈 자는 채우기 위해 매 순간 생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출산율은 바닥을 쳤고, ‘새로운 세대’는 태어나지 않았다. 노동 가능 인구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으며 기득권은 절대로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 들었다. 찰리는 이런 세상이라면 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는 곧 부릉부릉 하며 이동했다. 악을 쓰는 예찬론자는 곧 시간에 밀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찰리는 죽은 듯 잠든 앞자리 아저씨를 보며 죽음에 대해서 생각에 빠졌다. 그의 주변에는 남달리 죽음을 꿈꾸는 이들이 많았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도 두 손으로는 다 셀 수 없을 정도였고, 사는 것에 지쳐서 무덤덤해진 사람들도 많았다. 찰리는 그런 내면의 비명과 생과 사의 선택들을 지켜보며 살아왔었다. 어쩌면 찰리 역시 사라지는 순간을 꿈꾸게 된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예찬론자들과는 대칭점에 서있었던 셈이다. 그것은 찰리의 감정이 남달리 예민했기 때문에 생긴 일일 수도 있었다. 찰리는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받아주는 재능이 있었다. 사람들은 손쉽게 찰리에게 비밀스럽고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하곤 했고, 찰리는 찰리로선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던 어린 나날들부터 그 사실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찰리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곤 했었다. 샛노랗게 어린 그 아이가 무슨 의지할 사람이라도 된다는 마냥 삶의 모든 고민과 고뇌와 망설임을 다 건네 오는 그들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받아내야만 했던 찰리도 정상일 수는 없었다. 어린 찰리는 당연하게도 그 고민들을 받아들이거나 흘려보내는 방법을 몰랐기에 온갖 괴로움을 내면에 쌓아갈 수밖에 없었다.
고통은 쌓이고 우울은 더께처럼 덮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삶이라고 부른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람과 삶의 무게는 무거워져만 갔다. 사람이 무너지고 바스러지는 것을 무한히 담담한 채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찰리 역시 조금씩 아스라져가는 삶을 살았다. 그것은 감정이 남달리 크고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생으로 박동해야 하는 치기어린 젊음의 나날들을 타인의 죽음과 고통으로 채웠으니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던 것이다. 그렇게 자라왔는데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겨우 8살의 나이가 되었을 때 찰리는 가까운 이들이 생을 마감하는 것을 두 번이나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일들은 찰리가 18살이 되기 전 20번도 넘게 반복되었다. 세상 무엇보다도 아꼈던 가까운 친구가 자살을 택했을 때 찰리는 결국 무너져 내렸다. 찰리는 생각했다.‘내가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기대 오지도 않았을 텐데. 기댈 사람이 없었다면 무너지지도 않았을 텐데. 그랬다면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 제대로 기대게 해 주지도 지켜주지도 못하는 주제에 희망만 품게 만드니 주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고 여긴 것이다. 그때부터 찰리는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사라지게 만들고 싶다고 확정 지었다.
사람들의 꿈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200세까지 살고 싶어 하고, 어떤 이는 불로불생을 꿈꾸며 수은을 마신다.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명예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찰리처럼 모든 고통을 끝내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찰리는 삶을 사는 것과 목숨을 연명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삶을 산다는 것은 고통마저도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포용하는 것이다. 연명하는 것은 괴로움에 어쩔 줄 몰라하며 죽지 못해 매일을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혹은 견뎌서는 안 되는 종류의 고통도 있었다. 그 고통을 무작정 참고 사는 것은 찰리에겐 그저 목숨을 연명하는 일이었다. 찰리는 그것이 삶이 아니며, 죽음보다 그리 나을 일도 아니라고 보았다.
찰리는 멀리서 반짝이는 거대한 탑을 바라보았다. 온갖 미지와 전설의 장소인 감정탑은 석양 속의 거인처럼 온 도시를 굽어보고 있었다. 찰리는 그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감정을 거의 맛볼 수 있었지만, 애써 감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찰리는 다시 한번 그 탑의 꼭대기를 상상했다. 그곳은 참 멋진 곳일 것 같았다.
사람들은 감정탑 꼭대기에는 천국의 문이 있다고 그랬다. 죄지은 모든 이들은 그 문을 통과하면 끔찍한 고통을 겪지만, 순수하고 착한 모든 이들은 그곳에서 영원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행복이라면 죽음과 다를 바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찰리에겐 왠지 그곳이 닿을 수 없는 이상향처럼 느껴졌다. 감정탑이 지어진지 어언 25년이 되어가건만, 그 탑의 꼭대기에 올랐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그리고 찰리는 꼭대기에 올랐던 최초의 등반자들이 대부분 실종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찰리는 왠지 모르게 그곳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면 행복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라질 수 있었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마침내 훨훨 날 수 있을 것 같은 이상한 예감이 찾아들었던 것이다.
찰리는 밤마다 탑 꼭대기에 관한 꿈을 꾸었다. 그곳에서 찰리는 잃어버린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고, 더 이상 죄책감과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 꼭대기에선 삶의 모든 부분들이 하찮아 보였다. 찰리는 곧 그 탑에 오르는 것을 유일한 삶의 목표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탑에 오를 수 없었다. 정부는 탑에 오르는 사람들을 엄격하게 통제했고, 그 누구에게도 허락해주지 않았다. 도시의 핵심 시설인만큼 탑은 수많은 보안요원들과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최첨단의 경비장치들로 보호되고 있었다. 찰리는 탑에 올라가지 못해서 좌절했고, 매일 탑의 꼭대기를 꿈꾸었다. 그 꼭대기에 서서 사라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마음을 옥죄는 이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은 대체 어떤 기분일까. 타인의 감정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상태가 되면 행복하지 않을까? 나조차도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사라지는 것에 대한 황홀한 동경은 찰리의 목에 올가미를 걸었다. 그 황홀함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짓눌러오는 모든 기대와 중압감, 관계와 노력과 고통을 내려놓고 사라져도 좋은 것이다. 그 무엇도 될 필요가 없다. 그 무엇도 가질 필요가 없다. 그 무엇도 아프게 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자리가 마침표이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도 성공하는 것도 걱정거리로 남지 않는 것이다. 현재 과거 미래가 한 점으로 모여드는, ‘별 것 아니어도 괜찮은 나’가 완성되는 순간, 찰리는 목에 매듭을 묶었다. 이제 괜찮으니까, 정말 할 만큼 했으니까 떠나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꽉 묶였던 밧줄은 끊어졌고 찰리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방바닥을 나뒹굴었다. 아직은 떠날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찰리의 눈에는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것들은 찰리의 눈에만 보였으며 천사라고 부르기엔 사악하고, 악마라고 부르기에는 관대했다. 인간이라고 부르기엔 지혜롭고 악령이라기엔 무관심하며 외계인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인간과 맞닿아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찰리의 삶과 죽음이 맞닿던 그 기묘한 순간에, 그림자빛 존재들은 선명한 형태를 지닌 채로 찰리의 삶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들도 말을 걸지 않았다. 특별히 쳐다보지도 않았고 중요하게 의식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서로에게 무관심할 때면 그들은 찰리와 어렴풋한 태도로 공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들은 찰리에게, 찰리는 그들에게 뚜렷해져 갔다. 그러지 않을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의 존재감은 옅으면서도 이질적인 것이라 포착된 이상 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보이는 것을 잊는 것은 쉽다. 맛이나 향기를 잊어버리는 것은 시간에 맡기기만 해도 이루어지는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감에 포착되지는 않으면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존재감을 잊거나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처럼 그것들의 존재는 감정의 귀퉁이를 무겁게, 그리고 저릿하게 눌러와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찰리와 그들의 공존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그림자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사람들 틈새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고, 사람들에게 기묘하게 기생해서 붙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저들끼리 의사소통을 하거나 장난을 치는 모습도 때때로 확인할 수 있었다. 웅얼거리는 듯한 그들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행동은 사람들과 유사했다.
더 무서운 점은 그들을 들여다보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운명이 들여다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들이 화를 내고 있을 때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반드시 화를 당했다. 싸우거나, 실수를 하거나 상처를 받는 사람들을 보며 찰리는 그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키웠다.
반대로 그것들이 기뻐할 때에는 좋은 일들이 미래에 일어나곤 했다. 로또에 당첨되거나 승진,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 따위를 보며 찰리는 참 허무한 감정을 느꼈다. 화와 복은 같은 문으로 들어오는 것처럼만 보였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순간들은 그들이 축 처진 채 비탄으로 가득한 형상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그럴 때의 그들은 무슨 주술이라도 하듯 느리고 끔찍한 춤을 둥글게 췄다. 그 사이에선 흉흉한 에너지가 느껴졌고, 날카로운 사물들이 투영되곤 했다. 그런 자리를 지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끔찍한 죽음이 찾아왔다. 찰리는 같은 동네에 살았던 여자아이가 성폭행을 당한 뒤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가해자들을 찾아가 그들을 살해했다는 이야기 역시 들었다. 찰리는 그 부녀를 본 적이 있었다. 여자아이가 자살하기 전,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두 사람을 마주친 적이 있는 탓이었다. 그들 앞에서는 그림자가 섬뜩한 춤을 빙글빙글 추고 있었다.
찰리는 타인의 미래를 들여다보게 된 것을 신기해하지도 억울해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도 극단적으로 예민했고, 주변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부모님이 화를 내기 전에, 친구가 엉엉 울기 전에, 하늘이 슬퍼하거나 땅이 분노하기 전에 찰리는 그 감정을 미리 느낄 수 있었다. 찰리의 세상은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그는 운명에 억울해하지는 않았다. 하늘에 슬픔이 가득하면 비가 왔고, 부모님의 감정이 심란함으로 요동칠 때면 사고가 터졌다. 사람들의 감정은 점차 만져질 듯 선명해져 갔고, 그들의 고통과 고뇌는 자기 자신의 것 마냥 입안에 맛이 되어 맴돌았다. 마치 책을 읽듯 사람들의 감정을 읽어내면,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그리고 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전에 그들의 결과를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찰리가 괴로워하며 생을 마감하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너무 많은 것이 보이고, 그래서 너무 많이 괴로웠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찰리는 미래를 느끼는 것이 자신만의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찰리는 사람들은 누구나 운명을 들여다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백열(白熱)하는 쇳덩이를 보았을 때 꼭 손을 대보지 않아도 ‘손을 대면 데이고 말 거야’라고 예측하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겪는 사건들을 다 차곡차곡 머릿속에 저장하여 데이터베이스(database)로 활용했고, 그건 일종의 예지일 수밖에 없었다. 벼락이 떨어진 뒤에는 천둥소리가 들려올 것을 알듯이, 그리고 강아지가 짖으면 아버지가 시끄럽다고 짜증 내실 것을 알듯이 우리는 일어난 사건을 통해 다음에 일어날 사건을 유추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찰리의 능력은 그런 일반적인 수준의 추론 능력이 기형적으로 발달하여 주어진 특별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보통 새로운 이들을 만날 때 ‘첫인상’ 정도를 만들어 가진다면, 찰리는 직감적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물론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여태까지 살며 쌓아온 정보를 은연중에 사용하여 추론하는 것이었지만, 찰리는 잠깐 본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삶, 성격, 가족관계, 감추고 싶은 비밀들을 '알아차릴 수수' 있었으며 그를 통해 그 사람의 미래를 읽듯이 파악할 수 있었다. 고유한 예민함을 통해서 파악되는 것은 고정된 운명이 아닌, 일종의 확률 예측이었던 셈이다.
찰리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라도 가진 바 정보를 다 인지하거나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직관적으로 정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예민하면 예민할수록,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이 보이면 보일수록 이 직관적인 예언은 더 정확해져 갔다. 미래의 사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들여다보였던 것이다.
찰리의 예민함은 그림자 인간들을 만난 그 운명적인 밤 이후로 더 정밀해져 갔다. 환영은 더 끔찍한 형태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제공했고, 보여선 안 되는 광경들이 세상보다도 선명한 색채로 뇌리를 파고들었다. 사람을 만나면 그들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찰리에게로 흘러들어왔는데, 이런 타인의 감정들은 기억을 한 움큼 뜯어내어 그 자리에 마른풀로 만들어놓은 것 같은 허상을 새겼다. 이미 떠나간 사람들과 떠나간 이들의 비명이 긴긴밤 찰리의 꿈을 수놓았고, 형체 없는 비명이 과거와 현재를 비틀어 놓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과거의 꿈이고 미래의 투영인지, 무엇이 현재의 망상이거나 타인의 괴로움인지 어느 순간부터 분간할 수 없었다. 찰리는 이미 천 번 죽고 다시 고쳐 죽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모든 죽음마저도 환영이라 제대로 죽을 수조차 없었다. 찰리의 삶은 멎어있었지만 세상은 돌고 있었다. 그것은 참 불합리한 일 같았다.
그 쳇바퀴 사이에서 그림자 인간들은 더 거센 춤을 추었다. 찰리는 그들이 두려웠다. 처음부터 있지도 없지도 않았던 존재들. 인간의 영혼을 먹어치우고 진실의 굴레를 굴리는 그림자. 그들은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였지만 찰리에게는 태초부터 당연히 그랬던 것 같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 모든 것은 불합리한 일 같았다. 하지만 이미 자기 자신의 운명의 굴레에 갇힌 찰리는 그로부터 벗어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예언으로 가득한, 그래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던 찰리가 몰랐던 사실도 있었다. 세상에는 그렇게 예민한 예언자(prophet)가 있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종류의 사람도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예언자가 들여다보는 미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는 이 독특한 존재는, 모든 예감과 느낌을 어긋나게 만들어버린다. 간단하게 말하면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초인지(超認知)의 범주를 넘어서는 예측 불가능성은 단순히 천방지축인 것을 넘어서 예언과 예지의 능력만큼이나 특별한 것이었다. 한쪽이 운명을 읽는다면, 다른 쪽은 운명을 비트는 것이다. 그리고 찰리에게 그런 엉망진창인 사람은 화려한 죽음의 밤에 갑작스레 삶 속으로 등장했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