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을 향해 빛나는 별 2화

2화 : 멀고도 가까운 죽음

by 이원호

2화 : 멀고도 가까운 죽음



명아는 주황색 호박과 하얀색 유령이 새겨진 초대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할로윈 파티라니. 우습지도 않은 일이었다.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하루를 살아가느라 뼈빠지게 고생을 하는데 돈이 있는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초대장을 열자 홀로그램 박쥐들과 보자기 귀신들이 허공을 둥둥 떠다녔다. 화려해도 지나치게 화려한 초대장이었기에 명아는 과연 이런 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의미가 있기는 할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었는지라 명아는 초대장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일어섰다. 감정이 예민하고도 또 예민하여 다른 사람의 감정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니, 어쩌면 할로윈 파티에서 만나기 적격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심령술사 같은 느낌도 나니까 말이다.

점차 쌀쌀해지는 가을 공기에 명아는 투명하게 빛나는 유령 치마의 앞깃을 여몄다. 할로윈 파티라고 해서 분장을 하기는 했건만, 투명한 귀신 모양의 복장은 거울에 비춰볼수록 우스꽝스러웠다. '누가 물어보면 비닐하우스로 변장하고 온 거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명아는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심령술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귀신 차림이라니! 명아는 자기 자신이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고도 중심가에는 오래된 고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명아가 초대받은 파티는 그 고택 중 하나에서 열리는 것이었고, 그 장소에는 왠지 서구식 귀신보단 꼬리 여럿 달린 여우 귀신이나 달걀 모양이 어울릴 것 같아서 명아는 약간 기가 죽었다. 하지만 기가 죽건 말건 명아의 발걸음이 멎지는 않았다.

휘황찬란한 고층 빌딩들로 가득한 번화가를 지나면 단 몇 분 차이로 비밀스럽고 거대한 고택들이 나타났다. 세월을 견딘 기와와 대들보는 현대식 닭장 같은 거주지들이 담아내지 못하는 고풍스러운 세월을 멋들어지게 뽐내고 있었고, 명아는 가까운 곳에서 굽어보는 무시무시한 높이의 감정탑과 납작하고 품위 있는 고택들이 참 묘한 대비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미래와 과거의 묘한 공존이었다.

파티장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조용한 동네에서 초저녁부터 난리가 나있는 집은 오직 한 군데뿐이었다. 박기자가 어떻게 이 파티에 초대되었는지는 명아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입구에 설치된 괴물 모양의 티켓팅 기계 입에 초대장을 쑤셔 넣자 나무로 된 육중한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명아는 죽음이 춤추는 파티장으로 사뿐한 발걸음을 들여놓았다.









찰리는 은하 누나가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할로윈 파티를 하겠다고 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은하 누나는 분명 자신이 사람들 많은 자리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배려해줄 줄 알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은하 누나는 1달 전부터 꿋꿋하게 초대장을 내밀었고, 찰리로서는 어떻게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찰리! 꼭 와야 해! 널 위해서 여는 거라고!”

“뻥치지 마 누나. 그냥 누나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

“아니야! 정말로 널 위한 선물도 준비했어.”

“나 사람들 많은 자리 싫어하는 거 알면서 왜 그랬을까?”

“오잉. 그럼 지금이라도 캔슬하고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낼까나?”

“시끄러워.”

“네가 친구가 하도 없어 보이니까 그러는 거지! 좋은 사람들 많이 소개해 줄 테니까 꼭 와. 너 나 말고 친구 없잖아 그치?”

“날 이런 장소에 억지로 초대한 걸 보면 누나도 딱히 내 친구는 아니야.”

“도도하긴. 어쨌든 꼭 와. 만약 너 안 오면 저번에 그 공 씨 가문 셋째 여자애한테 욕해서 울린 거 너희 조부모님한테 다 말할 거야.”

은하 누나의 말은 틀린 부분이 없었고 찰리는 한숨을 내쉬며 초대장을 받아 들었다. 이젠 그나마 친구 가까운 사람이라곤 6살 때부터 옆집에 살았던 은하 누나뿐이었고, 그런 은하 누나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공가네의 그 이기적이고 못돼먹은 막내딸을 울려놓은 얘기가 조부모님 귀에 들어가는 것도 그리 탐탁스럽지는 않았고 말이다.

그래서 찰리는 결국 10월의 마지막 날에 시끄러운 파티에 와있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은하 누나네 집은 고택가 꼭대기에 위치한 대저택이었고 삼사십 명은 될 법한 사람들이 마당과 별채 안팎을 잔뜩 메우고 있었다. 마당 끝자락에서는 모닥불이 활활 타고 있었고, 그 너머로는 보랏빛으로 빛나는 감정탑이 도시의 야경과 어우러져 묘한 빛을 냈다. 고택의 높다란 처마 끝에 도시의 빛이 걸려있는 것은 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파티장 안은 열기와 음악으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고 찰리는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의 감정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감정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목적이 생기는 것도, 갈망이 생기는 것도 다 감정 때문이다. 감정이 특정 방식으로 흐를 때 특정 결과가 생기는 법칙을 찰리는 이제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덕분에 찰리는 감정의 결을 느끼며 사람들 사이에서 그림자가 되어 움직일 수 있었다. 감정의 결을 읽으면 다음 행동이 예측되었으며, 그 사이를 피해 다니면 그 누구에게도 포착되지 않았다. 찰리에게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이 듣기 전에 미리 들렸고, 사람들이 감추고 싶은 감정이 실제로는 어디로 향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찰리는 파티가 감정적인 불꽃놀이 장소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남녀가 서로 호감을 비밀스레 주고받는 장소이고,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 장소이다. 사람들의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면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루 지나면 사라져 버릴 거짓된 감정들. 다 허무한 것이다. 마당의 모닥불 사이에선 그림자인간들이 격정적인 춤을 추고 있었다. 그곳에는 열정과 광기가 섞여서 숨을 쉬었고, 그래서 눈에 보이는 그 모든 모습이 다 싫었던 찰리는 홀로 발코니 툇마루에 앉아 술을 홀짝일 수밖에 없었다.

은하 누나는 현란하게 춤을 추다 말고 찰리에게 다가왔다. 손에는 칵테일을 두 잔 든 채였다. 도무지 무슨 술이 섞였는지 알 수 없는 칵테일이었지만 그 푸른빛은 무슨 맹독마냥 강렬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은하 누나의 얼굴도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감정을 읽지 않아도 이미 취하기 직전까지 마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 찰리 나랑 한 잔 짠해.”

“이미 많이 취한 것 같은데 누나. 얼굴이 마그마빛이야.”

“에이, 춤춰서 그래.”

“그래. 시끄럽게 잘 놀더라.”

“왜 그렇게 왕따 같이 혼자 있어 자꾸. 사람들하고 어울리라고 부른 거랬지!”

찰리는 사람들이 싫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건 더 싫다고 대답하지는 못했다. 초대해준 은하 누나의 성의 때문에라도 그렇게 대답하지는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속으로 다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그렇게 닿으면 뭘 할까. 감정은 변하고 사람들은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가장 무거운 감정들인 원망과 슬픔뿐일 테고 말이다. 찰리는 그 사실을 알아서 누구와도 함께이고 싶지 않았다.

찰리는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감정을 읽으며 그들의 미래를 점쳐보았다. 이 사람은 바람을 펴서 나와 헤어지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 꼭 그 사람은 바람을 폈고 또 이 사람은 취업준비를 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겠지- 싶으면 꼭 그대로 이루어지곤 했다. 자주 들어맞는 만큼 자주 하지는 않는 일이었지만, 파티의 견딜 수 없는 가벼움은 그만큼 찰리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읽는 것 역시 영 편안한 일은 아니라 찰리는 곧 사람들이 미래에 느낄 감정들까지 통째로 공감하며 가쁜 숨을 허덕여야만 했다. 때로는 마치 몽상처럼 떠올렸던 일이 그대로 이뤄지기도 했고 때로는 꿈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실제로 닥쳐오기도 했다. 운명 속에 못 박힌 것만 같은 그 느낌은 자주 즐길만한 일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감정과 미래는 어느덧 찰리의 눈 속에서 저절로 읽히고 있었다. 저 커플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래도 결혼할 수 있을 텐데. 대신 남자의 바람기를 여자가 잘 간수해야 할 테지. 저 남자는 저 여자랑 잘해보고 싶은 모양이네. 여자는 전 남자 친구를 아직 잊지 못한 상태인데 남자가 자상한 면모를 보인다면 좋겠다. 저 여자 둘은 서로 약간의 경쟁심을 느끼고 있네. 그러면서 남들 앞에서는 가장 좋은 친구인 것처럼 행동하니 정말 슬픈 일이다.

사람들을 뚫어져라 관찰하는 찰리의 모습을 쳐다보던 은하 누나는 무작정 그의 손을 잡고 끌고 온 뒤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테이블에 앉혀놓았다.

“자 여러분. 찰리예요.”

“안녕하세요 찰리 씨.”

“찰리는 제가 아끼는 동생인데 잘 돌봐주세요. 애가 낮을 가려서요. 아 찰리 넌 유나는 모르려나? 너랑 같은 학교 다니는데.”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찰리! 잘 놀고 있어! 어디 도망가기만 해 봐 곧 올 테니까 각오해.”

은하 누나는 경쾌한 발걸음 걸이로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갔다. 찰리는 재미있는 사람이라도 본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두 커플 사이에서 으쓱 어깨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아야 했다. 먼저 말을 건 것은 단발머리 여성이었다.

“아까부터 발코니에 혼자 서있는 거 봤어요. 왜 그렇게 혼자 있어요?”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걸 어려워해요.”

“왜요? 대인기피증?”

“아뇨.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요.”

“의미가 없다뇨.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들인데.”

“같이 있어보니 누구나 떠나더라고요. 그것도 아주 뻔한 방식으로. 상처 받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구도 가까이 두지 않는 거예요.”

“굉장히 비관적인 생각이네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일어날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요. 헤어져야 할 사람들은 언제나 헤어지죠. 굳이 그 인과의 사슬에 끼어들어서 고생할 이유는 없어요.”

“그래도 그렇게 부딪혀야 좋은 사람도 만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유나라고 해요. 영문학과죠. 같은 학교에 다니신다고요?”

“네. 그렇죠. 영문학과이신 건 알고 있었어요.”

“알고 계셨다고요?”

“네. 그리고 옆에 계신 남자분과 1년 조금 넘게 사귀신 것도 알고 있고 남자 친구분 생일선물을 고민하고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죠. 그리고 방금 저에게 남자 친구 분 이름을 소개해주려고 하셨는데 제가 말을 잘랐다는 것도요.”

테이블에는 적막이 흘렀고 찰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라 해야 할지 말을 잃은 유나라는 사람은 조금 창백해진 채 물어보았다.

“스토커예요?”

“아뇨. 은하 누나가 말해줬어요. 놀라셨죠?”

“무진장 놀랐네요! 이 쪽은 제 남자 친구예요. 말씀하신 것처럼 1년 정도 되었고, 곧 생일이랍니다.”

은하 누나가 말한 것과는 별개로 읽어낸 것도 많았지만 찰리는 그 사실에 대해서 알려주지는 않았다. 남자 친구가 그 선물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그러면서도 내색은 안 하여 후에 크게 싸우게 될 것이라는 것도 미리 알려주지는 않았다. 다 보이는 일이지만 그게 사실일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이 날 이후로 유나라는 사람과 그 사이에 어떤 접점도 생기지 않을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살면서 스쳐 지나가는 몇 번이 끝, 그것이 전부였기에 굳이 더 다가서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읽어내는 것은 쉬운 일, 일어날 일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보다도 쉬운 일이다.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은 말하기 이전에 들려왔고, 찰리는 이미 들은 대화에 맥을 맞추어나갔다. 시간은 덧없이 흘렀고 맥주잔은 하나씩 비워져 나갔다.









파티장 내부로 들어온 명아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을 찾지? 완전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네!’

박기자의 말은 귓등으로 듣고 흘렸기 때문에 찾아야 하는 사람의 인상착의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는 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이름마저도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찰스였던가? 첼로? 출루? 찰리? 무엇이었지 대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명아는 낙천적인 성격이었고, 운도 좋았다는 것이다. ‘뭐, 정 못 찾겠으면 그냥 파티 분위기나 좀 즐기지 뭐. 신기하고 예쁜 곳이네.’하고 파티장을 신나게 들어선 명아는 왠지 모르게 구석 테이블에 앉아있는 한 남자가 신경 쓰인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주변에서 춤추는 귀신과 악령과 괴물들에 비하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남성이었다. 옷차림은 심플했고, 머리는 적당히 덥수룩했다. 아주 댄디하지도 않고 전혀 특색 있지도 않은 이 남자가 이상하게 눈에 밟히는 이유를 명아는 설명할 수 없었다. 심지어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그 남자를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마치 명아에게만 보이듯, 그 남자는 그곳에 그림처럼 앉아있었다. 무언가 비현실적인 채로, 무언가 맞닿아버린 것처럼 말이다.

명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낙천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반했나? 벌써? 내가 반하는 건 드문일인데.’ 상황이 역전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무언가 바뀌는 걸지도 모른다. 미세한 희망이 마음속에서 짓쳐들었고, 명아는 애써 무거운 추를 그 위에다가 올려놓았다. 아닐 거야. 좀 더 지켜봐야지. 그 남성은 나름 늑대인간으로 분장한 것인지 늑대 꼬리를 달고 있었고 명아는 그 뒤부터 늑대 꼬리만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명아가 몰랐던 것은 그녀가 이미 직감적으로 파티에서 만나려고 했던 사람을 발견했다는 사실이었다.






찰리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손끝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 피가 평소보다 두 배는 빨리 흐르는 것 같은 느낌. 시간이 잠시 멎는 것만 같은 느낌, 무언가 상상도 못 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명한 예감이 찾아들고 있었다. 사람들에 매달려있던 그림자 인간들이 아지랑이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이 감정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찰리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대화의 흐름을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무언가 중대한 사건일까? 아주 설레는 기적일까? 아니면 감당하지 못할 비극의 시작일까. 생각이 혈관 속의 피만큼 빠르게 쿵쾅거리며 흘렀다.

이건 예정에 없는 일이었다. 이 파티가 어떻게 끝나는지 찰리는 오기 한 참 전부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새벽까지 술을 마실 것이고, 은하 누나는 취해서 그를 찾다가 포기할 것이다. 그가 조금 쓸쓸히 밤거리를 헤매다가 집에 들어가는 걸로 파티는 끝날 예정이었다. 얽혀 든 대화와 만난 사람들은 다 이 시간 속에 남겨놓고 그렇게 끝날 예정이었던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들여다봐온 일, 예견되어 있는 일이었다. 이 파티의 그 어느 부분에도 지금처럼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날 전조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손끝이 아려왔다. 마치 어렸을 적 수학여행을 출발하기 전 밤처럼 심장이 이상하게 뛰고 있었고 오래 기다려온 영화가 시작되기 전처럼 초조해지고 있었다. 눈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조차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찰리의 마음에는 약간의 공포와 불길함 마저도 깃들어서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15년 전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의 예지몽을 꾸었을 때마저도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찰리는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주변을 면밀히 살펴보았지만 이상한 기분을 느낄만한 특별한 이유는 보이지 않았다. 행여나 파티장이 무너지는 건 아닐까 기둥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지만 그럴만한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고, 불이 날까 걱정했지만 근처에 조리도구나 난방도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어느덧 그 순간의 특이함은 어느새 지나쳐 있었다. 그래서 찰리는 옷깃을 여미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여전히,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다른 사람들의 운명은 조금도 바뀌질 않아서 유나 씨는 여전히 집에 가는 길에 남자 친구와 조금 다툴 예정이었고, 반대편의 커플은 집에 가지 않고 오붓한 장소로 조금 뒤에 향할 예정이었다. 찰리가 그 사실에 대해 관여할 부분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아찔한 느낌이 다시 찾아들었다. 마치 거대한 운명이 다가올 것이니 조심하라고 예고를 하는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도수 50도가 넘는 술을 한 번에 들이켰을 때처럼 머리가 한순간 핑 돌았고 손발은 힘이 풀려서 들고 있던 잔을 가볍게 떨어트렸다. 그 잔이 떨어지면서 낸 맑은 소리는 공포탄 소리보다도 더 큰 파문을 남겼다. 찰리는 넘어지기 직전에 책상을 짚었고, 아찔한 감정을 차단했다. 파티장에 있는 사람들은 잠시 이상함을 느꼈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만이 웃으며 걱정을 했다.

“찰리 씨는 많이 취하셨나 보네요. 많이 드시는 것 같지도 않더니.”

찰리는 가볍게 웃으며 그런가 보다, 바람을 쐬러 나갔다 와야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마셔서 어지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이미 핑핑 돌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을 지루한 파티 치고는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으니 굉장히 오랜만에 불안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골목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파티장 문을 닫고 나오기만 했을 뿐인데도 세상은 덜 혼란스럽고 적막한 곳으로 변화했다. 달은 눈이 부시도록 밝아서 온 세상의 파티가 이 거리에서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만월과 유령의 밤이라니, 어쩌면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은하 누나는 이 파티에 ‘가깝고도 먼 죽음의 밤’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였었다. 찰리는 정말로 죽음이 가깝고도 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찰리는 한숨을 푹 쉬고 거리에 주저앉았다. 왜 외로울까. 외롭기를 선택한 주제에 왜 힘겨울까.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던 걸까? 어쩌면 조금 지쳐있는 기분도 든다. 세상에 더 이상 의미 있는 일은 없는 것은 아니었을까. 한숨을 다시 느리게 내쉬었다. 마음 줄 일 따위 없는 세상, 더 머물러서 무얼 할까. 이제 할 만큼 했고 볼만큼 보았는데, 길었던 삶 이제 끝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순간 불길 같은 예감이 다시 마음속에서 타올랐다. 무언가, 이 밤,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명아는 꼬리 달린 남자를 따라서 파티장 밖으로 나왔다. 어딘가 아픈 사람인 것 같았다.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더니 잔을 떨어뜨리고 잔뜩 창백해진 채로 거리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한숨이라니, 어딘가 아파도 단단히 아픈 것이 분명한 사람 같았다.

'아픈 남자는 질색인데.' 하고 명아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그래 봐야 이상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명아는 그 감정에 집중했다. 무언가 흘러나와서 그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저곳에 이상하게 세상이 집중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중력이 이상 현상을 보이는 장소에 마침 그 남자가 딱 서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제야 명아는 선배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감정을 빨아들인다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의 감정이 흘러가서 고여.'

명아는 자신의 감정이 저 남자에게 자연스럽게 끌려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비단 호감이나 성적 매력뿐만이 아닌 감정 그 자체였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어두운 나날들의 상처도, 불신과 의심과 희망과 환희가 뒤섞인 채로, 그 모든 감정이 그 남자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명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오래 잊고 있었던 자신의 과거마저도 이 남자의 혼란스러운 끌어당김 속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기나긴 정적 소리가 골목길에서 울렸다. 눈앞에선 눈부신 헤드라이트가 빛나고 있었다. 하이빔이라도 켰는지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는 광선이었다. 고양이라도 차도로 뛰어들었는지 운전자는 난폭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찰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고, 비싸 보이는 자동차는 골목길 자갈을 아스라트리며 지나갔다. 고양이는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찰리는 잠시 실눈을 뜨고서도 잠시 동안 사물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흐릿한 세상에 갇혔다. 눈을 깜빡이며 초점을 되찾자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성은 새초롬한 웃음을 머금고 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을 가득 머금은 연못 같은 모습이었다. 빛과 함께 선명해지는 그녀의 모습은 찰리의 기억 속에도 없고 예상과 예지와 예언 속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찰리는 불안을 넘어 경악을 느껴야만 했다.

쨍한 아픔과 함께 미래가 먼저 읽혔다. 같이 있으면 아플 사람이었다. 이유는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함께 있으면 결국엔 위험한 일이 생길 사람이었다. 찰리는 그림자인간들을 보게 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여자에게서 매력을 느껴서 그런가?’ 하는 억측부터 들었다. 아니면 이 사람 주변에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읽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범위에서 이미 운명은 예고되고 있었다. 위험과 매혹이 얽혀 들고 있었다. 찰리는 아찔한 감각과 어지러운 시야를 다잡고 그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여성과 여자아이의 중간쯤에 머물러있는 듯한 그 사람은 여전히 별빛 같은 웃음을 머금고 있는 채였다. 찰리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이상하게 시리도록 아팠다. 마치 이미 사랑해본 적이 있었던 것 마냥, 이미 이별해본 것 마냥 이 사람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가을빛 같은 소녀, 아가씨, 여성은 찰리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세상이 어지러운 표정이네.”

“뭐라고요?”

“어지러우신 표정이시라고요. 많이 데었나 봐 세상에?”

명아는 찰리를 바라보았다. 적당히 큰 키, 적당히 검은 머리카락, 적당히 단정한 용모. 눈에 띄지도 않지만 미워하기도 어려운 외모였다. 찰리 역시 명아를 시선에 담았다. 긴 밤색 머리가 작달막한 키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짙은 눈썹 아래엔 달빛을 담아내는 큰 눈이 부드럽게 웃고 있었고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표정 속에서 예술적인 성향이 뚜렷했다. 찰리는 힘든 상황을 견뎌내 온 인고의 감정선을 읽어냈다. 그리곤 무엇도 읽어낼 수 없었다.

찰리는 무의식적으로 느꼈다. 이 사람은 은하 누나 주변의 온실 속 화초 같은 사람들과는 무언가 달라도 많이 달랐다. 최근 이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마주칠 리 없는 이상한 만남이라고 생각하면서야 찰리는 명아에게 대답할 수 있었다.

“절 아는 것처럼 말하시네요. 파티에선 못 뵌 분인데?”

“고양이 같네요. 당신이 그 사람이죠? 안 그래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뭐라고요?”

“아, 귀가 혹시 안 좋은가요? 그렇다면 미안. 고양이 같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할퀴려고 들 필요 없어. 나는 상처 주지 않아요.”

그 순간 찰리의 머릿속에는 일곱 가지쯤 되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아니,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준다. 더군다나 너 같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왜 다가온 걸까? 고양이 같다니, 이건 무슨 상황인 거지. 나는 다가오는 사람들을 할퀴려고 든 걸까. 다시, 아까부터 반복했던 얘기를 다시 해야만 하나.

“할퀴지는 않아요. 그런데 누구시죠?”

“이상한 사람을 만나러 파티에 왔다가 이상한 사람을 만난 사람이요.”

“그쪽이 더 이상한 것 같은데요...”

“전 그렇게까지 세상을 불신하는 표정을 짓지는 않아요. 그렇게까지 아찔해하지도 않고 강아지 꼬리 역시 달려있지 않고요. 왜 그랬는지 물어봐도 돼?”

“뭘 그래요? 그리고 저 알아요? 왜 반말이에요.”

“찰리.”

“에?”

“너도 반말해요. 찰리라는 이름 맞지? 왜 그렇게 아찔한 표정을 지었어?”

“자동차 불빛이 눈부셔서요.”

“아니, 그거랑은 다른 표정이었어. 무언가 마주쳐선 안 되는 걸 마주친 것 같은 사람의 표정이었는걸.”

“그게 읽혀요? 나 같은 사람인가 봐요?”

“계속 존댓말 할 거야? 너 같은 사람은 뭘까.”

명아는 성큼 다가와 찰리를 똑바로 들여다보았고 찰리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명아는 찰리의 꼬리를 꼬리를 조금 움직여보기로 결정했다.

“나는 명아야. 신명아. 찰리라는 이름은 본명이야? 특이한데.”

“찰리는 별명이에요. 열 번쯤 물어본 것 같은데 저를 아세요?”

“그럼 본명은 천천히 알아갈게. 안녕 찰리. 응. 너를 알아.”

“어떻게요?”

“나는 이 파티에 너를 만나려고 왔거든.”

찰리는 아찔함을 느꼈다. 아까부터 느껴온 그 희한한 아찔함이었다. 세상이 변해가는 그 느낌 속에서 명아와 찰리의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