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삶에 대한 인터뷰
3 화 : 삶에 대한 인터뷰
명아는 그날 밤 그 자리에서 대뜸 이틀 뒤인 토요일 오후 4시에 감정탑 앞에서 만나고 약속을 잡어 버렸다. 그때 즈음해서 그림자인간들이 불쑥불쑥 골목 위로 나타나는 상황에 불안해졌던 찰리는 대충 알겠다고 한 뒤 파티를 대충 마감하고 집으로 도망쳐올 수밖에 없었다. 은하 누나의 말대로 정말 멀고도 가까운 죽음의 밤이었고, 참 특이한 일이 생긴 셈이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유령 옷을 입고 있던 그 예쁘장한 여자아이는 찰리의 마음을 기묘한 방식으로 뒤흔들어 놓았었다. 찰리는 그 여자아이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그 자리에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토요일 당일 오후 4시까지는 시간이 꽤 있었는지라 찰리는 감정탑 앞으로 나온 김에 카페에서 은하 누나를 만났다. 결혼식에 다녀온 은하 누나는 예쁘장한 벨벳 드레스를 위에 우아한 한숨들을 수놓고 있었다.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누나. 결혼식이 별로였어?”
“아니이. 그냥. 피곤한가 봐. 그런 걸 거야.”
“결혼식이 아니라 무슨 중매라도 보고 온 것 같은걸. 대체 어떤 결혼식이었길래 그래.”
은하 누나의 한숨은 어느새 담배연기처럼 고독하게 주변에 쌓여가고 있었다.
“그으냥. 친한 동생 결혼식이었는데 나는 언제 결혼할까 싶기도 하고.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오오. 으아.”
“그건 결혼식에 다녀온 미혼 여성의 보편적 고민거리잖아. 시시하다. 좀 더 흥미진진한 고민거리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야. 내 딴에는 심각했다고. 이 어린애 찰리야. 이보다 중요한 고민거리가 어디 있니?”
“많지. 가령 결혼식에 나온 버터구이 랍스터 요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런 표정을 지었다면 나는 누나를 대견해했을 거야.”
은하 누나의 어이없어하는 표정 앞에서 찰리는 좀비 같은 억지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래도 은하 누나는 조금 더 홀가분해진 표정을 지었다. 찰리는 말없이 은하 누나의 감정에 동조해주었다. ‘그래 맞아. 별 일 아니야. 누구에게나 때가 있겠지. 없으면 없는 대로 그것도 좋아.’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황홀함 깃든 순간이 있다. 함께 수백 번도 넘게 걸은 길을 다시 한번 더 걸었을 때 찾아오는 놀라운 순간이 있는 것이다. 천 마디 말보다도 확실하게, 찰리는 그 기적의 순간이 올 거라는 은하 누나의 희망에 동조해주었다.
그 순간, 세상이 울컥하며 변했다. 이 카페는 그동안 자주 오던 곳이었고, 아주 익숙하고 오래된 감정들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 하지만 은하 누나의 감정에 동조한 순간, 갑자기 주변에서 그림자 인간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스쳐 지나가던 평소와는 달리 모두가 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곱씹어봐야 했다.
은하 누나는 찰리의 이상한 태도에 약간 겁을 먹었다. 흘끔흘끔 뒤를 돌아보면서 은하 누나는 물어보았다.
“왜 그래. 누가 있어?”
찰리는 대답하지 않고 그림자인간들을 바라보다가 눈을 돌렸다.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좋은 일일 리가 없었다. 한 그림자인간은 심지어 은하 누나의 어깨에서 돋아나와 둥그런 눈으로 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찰리는 조심스레 손을 뻗었지만 촉감인지 착각인지 알 수 없는 미세한 감촉만이 잠시 손끝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무언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신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손끝이 닿는 순간, 그림자인간은 마치 그것을 느끼기라도 했듯이 순식간에 뒤로 물러나 사라져 버렸다. 은하 누나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옷깃을 잡았다.
“왜 그래 아까부터! 뭐 있는 거야? 거미야? 안 보인단 말야!”
찰리는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다가 헛소리로 받아쳤다.
“아 미안 누나. 누나 어깨에 붙은 총각귀신이 너무 무섭게 생겨서. 잠깐 만져봤어. 누나 주변엔 귀신이 참 많아.”
그 말에 질겁한 은하 누나는 그 뒤로 1시간 내내 당장 다른 카페에 가자고 협박했다. 곁에서 1센티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은하 누나를 달래며 찰리는 섣부른 농담을 해버린 것을 조금 후회해야만 했을 뿐이다.
명아는 난리를 치면서 사무실을 뒤집어놓고 나갔다. 인터뷰를 해야 되는데 공책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느니, 녹음기가 어디 있냐느니 하는 식이었다. 김기자는 아예 대놓고 안 들리는 척하고 있었고, 박기자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이것저것 챙겨줬다. “다녀오겠습니다아!” 하는 한 마디를 남기고 명아가 폭풍처럼 나간 뒤에는 박기자의 한숨과 김기자의 지끈거리는 두통만이 사무실을 수놓았을 뿐이다.
박기자는 긴 한숨으로 명아가 나간 문을 쳐다보았다.
“저래서야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
드디어 사무실에 평온이 찾아왔다며 시원한 냉커피를 따르던 김기자는 의아해하며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뭘 잘 해내요?”
“인터뷰 말야. 저렇게 정신없어서야 뭔들 제대로 적기나 하겠어.”
“어? 진짜 인터뷰예요? 저는 그냥 명아가 시끄러워서 쫓아낼 핑계 댄 건 줄 알았는데.”
“에이. 아무리 명아가 천방지축이어도 그렇게 막 내돌리지는 않지.”
“정말 인터뷰할만한 사람이었어요?”
“응. 김기자 혹시 감정탑이 왜 세워졌는지 알아? 그것도 시내 한복판, 가장 핵심적인 부지에 말야.”
“그거야 뭐 70년 전에 발견된 최고급 대체에너지인 ‘감정에너지’를 활용하기 위한 정부 계획 중 일부 아니에요? 아직까진 무슨 실효성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문제야 김기자. 시내 한복판에 저렇게 수백 미터짜리 최첨단 건물이 들어왔는데 사람들은 그 건물 안에 뭐가 있는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조차 잘 몰라.”
“에이 설마요 선배. 저도 저번에 부모님이랑 들어가 봤는걸요. 200층까지 쇼핑몰이니 음식점이니 꽉 들어차 있어요. 최상층부에만 뭐 특이한 기계가 좀 있겠죠. 아무도 못 들어간다는 최상층부만 빼면 다른 유명한 빌딩이랑 차이도 없던데요.”
“자 봐봐 김기자, 감정탑의 높이는 1250미터야.”
“오 그 정도밖에 안되어요? 주변에 다른 높은 건물이 없어서 압도적으로 느껴지는구나.”
“그렇지. 남쪽 대륙에 지어지는 감정탑들은 심하게는 2km 높이까지도 올라가니까.”
“그런데 그 높이가 왜요?”
“보통 한층 높이가 3m 정도 되는데 감정탑에 출입할 수 있는 건 200층까지 밖에 없잖아. 산술적으로 계산해봐도 300층까지는 넉넉히 나올 높이인데 말야.”
“어라 그렇네요? 왜 그렇죠?”
“아예 상층부만 350미터를 남겨놓았다고 볼 수는 없으니 층과 층 사이에 숨겨진 지대들이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 같아. 그 안에서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일반적인 엘리베이터로는 도달할 수 없는 비밀층들말야.”
“그건 좀 흥미롭네요. 근데 그게 명아가 하러 간 인터뷰랑 관계가 있어요?”
“추측일 뿐이지만 내 생각에는 있을 것 같아.”
“관계자라도 되나 보네요.”
“그건 아니야. 감정탑과 관련된 사람들은 전부 다 ‘국가차세대 에너지대책 위원회’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조직에 속해있는데, 이 조직은 비밀스럽기가 국정원보다도 더해.”
“에이 선배, 국정원은 전혀 비밀스럽지 않잖아요. 하는 짓도 저능아 수준이라 일반인 미행하다가 잡히는데 뭘.”
“그렇긴 하지만 이 에너지 대책 위원회 애들은 뭔가 수상해. 거점도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누가 소속되어 있는지도 점조직이라 확실하게 알 수가 없어. 평소에도 신원보호용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것 같고.”
“오 무슨 첩보활동을 하는 건가? 아니면 무슨 신무기 개발이라도 감정에너지를 이용해서 하는 걸 지도 모르겠네요. 취재해볼 만한데!”
“그건 아직 알 수가 없지. 그런데 중요한 건, 이 비밀스러운 친구들이 일반인을 미행하는 게 포착되었다는 거야.”
“얘네도 무슨 국정원급 허당들이에요? 뭔 놈의 비밀조직이 엄청 쉽게 포착되네요.”
“그건 아니고, 내가 우연히 발견한 거야. 너 혹시 ‘레테의 소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
“어? 그거 알아요. 한 6~7년쯤 전에 엄청 이슈 되었던 애잖아요. 15살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 자살한다던.”
“내가 6~7년 전에 연예부 기자일 때 그 소년을 취재하고 있었거든. 그때 당시에 죽은 사람들 중에는 유명한 사람들도 많았어.”
“맞아요. 막 이슈 되었던 게 기억나네요. 선배 그때 연예부 기자셨구나.”
“근데 그 당시 그 레테 소년을 취재하다가 찍은 사진을 다시 훑어보니까 뒷배경에 몰래 숨어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더라고. 그것도 지속적으로 말야.”
“선배처럼 취재 나온 거 아니고요?”
“나도 그래서 한 번 확인해봤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여러 번 찍혔거든. 내 친구 중에 국가 데이터베이스 관리하는 프로그래머 있잖냐. 걔한테 이 사람 기자 맞냐고 한 번 넌지시 물어봤지.”
“그래서요?”
“근데 기자 아니래. 아까 말한 ‘국가 차세대 에너지 대책 위원회’ 소속으로 나오는 게 마지막이라는데 그 뒤로 신원이 조회가 되질 않는다고 하데. 그 기관에 등록된 이후론 세금 납부한 기록도 없고, 의료진료 기록도 없대.”
“와 무슨 첩보소설 같네요. 근데 그걸 조회해달라고 하면 일반인 신원도 조회해줘요? 되게 허술하네. 나도 해봐야겠어요 담번에. 그런데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선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전에 취재하던 그 소년 친구를 한 번 더 만났어. 물어볼 게 있다고 하면서 말야. 그리고 인터뷰를 하는 척하면서 주변을 유심히 살펴봤지.”
“잠깐, 그럼 그 레테 소년이 지금 명아가 인터뷰하러 간 그 사람인가 보네요. 아직도 그 소년 근처에 국가 첩보원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말씀이에요?”
“응. 그 소년을 감시하고 있는 그림자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있더라고. 7년 전 사진에 찍힌 것과 비슷한 사람들이 말야.”
“근데 왜 선배가 계속 인터뷰 안 하시고 아무것도 모르는 명아한테 맡기셨어요?”
“그 소년이 뭔가 눈치챘는지 자기는 다음부터 나하고는 독대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 그리곤 연락이 안 돼.”
“그럼 명아도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 소년 주변에 간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도 그렇고, 뭔가 수상한 사람들이 곁에서 빙빙 돌면 일단 별로 좋은 일은 아니잖아요.”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하긴. 선배도 생각이 있으니까 보냈겠죠.”
“뭐 일단 명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니까 더 안전하기도 하고, 7년 전에 조사했을 때의 공통점은 무언가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끌리듯 소년에게 다가선 뒤, 어느 날 자살사건에 휘말리거나 변사체로 발견되는 거였어. 명아는 세상에서 가장 밝은 아이잖아. 마음에 담아둔 상처가 적은 사람들은 쉽게 쓰러지지 않아.”
그 말에 김기자는 씁쓸하게 혀를 찼다.
“에이 선배가 뭘 잘 모르시네.”
“뭘?”
“원래 밝고 티 없어 보이는 사람일수록 마음 깊은 곳에 상처 하나쯤 감추고 있는 거라고요. 명아 별 일 없나 지속적으로 체크해야겠어요.”
박기자는 그 말에 잠시 침묵을 지켜야만 했다.
찰리는 ‘늦으셨네요’라고 뻔뻔한 표정으로 말하는 명아를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아야 했다. 그는 1분 전 이 당돌한 아가씨가 카페로 들어오는 걸 보고 따라 들어온 것이었다. 눈앞에 앉은 여성은 더 이상 귀신 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괴이 망측한 소리들을 해댔다. 기묘한 기분이 들었던 원인을 알기 위해서 나온 것이기는 했지만, 찰리는 시작부터 약간 머리가 아프다고 느꼈다.
“거두절미하고 여쭤볼게요. 절 왜 만나자고 한 거죠?”
“인터뷰! 인터뷰!”
“전 인터뷰 안 해요. 뭐에 대한 인터뷰예요. 제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건 차차 알아갑시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계속 존대할 거예요? 저는 신명아입니다. 파릇파릇한 스물네 살이지요.”
“어.. 그거 만으로 센 거예요? 저는 만으로는 스물세 살인데요.”
“괜찮아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우리 반말합시다!”
“저는 반말하는 데 시간 좀 걸리니 명아 씨 먼저 쓰세요.”
“우와 명아 씨라니. 대번에 열 살은 늙어버린 기분이 드네. 여튼 좋아. 다시 만나서 반가워. 오느라 더웠지?”
마치 몇 년은 된 친구마냥 서글서글하게 대하는 명아의 모습에 찰리는 위화감을 느꼈다. 보통 사람들이 이렇게 친근하게 대할 때는 이중적인 의도나 속마음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그 가식이 손에 만져질 듯 선명한 감정을 통해서 전해져 왔고 말이다. 하지만 명아가 얘기하는 모습에선 어떤 종류의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찰리는 눈앞의 여성이 분명 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이나 즐거움의 감정을 포착할 수 없었고, 제대로 안 듣고 있는 것을 눈치채면 짜증 내는 표정을 지었는데도 짜증이 읽어낼 수 없었다. 분명 감정을 드러내는 지표들이 그곳에 있는데도 이상하게 명아의 감정들을 ‘손으로 만질 수 있을듯’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찰리는 갑자기 마치 다른 언어로 쓰여 있는 책을 읽으려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언제나 사람들의 감정을 읽으며 관계에서의 우위에 서있던 찰리는 갑작스런 궁지에 몰렸던 셈이다.
“그래서 뭐라구요 질문이?”
“아 좀! 몇 번째에야요! 너 가는귀먹었지. 내 말 안 들리니? 여보세요 집중 좀 해주시죠.”
“이상하게 잘 안 들리네요. 발음이 부정확한가.”
발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찰리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저 평소의 습관, 감정을 통해 듣지 않아도 듣던 것 때문에 갑자기 청각에 집중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웠을 뿐이었다. 하지만 발음에 대해 지적받은 명아는 노발대발했다.
“끄래 내 발음 구리다 어쩔래! 그러는 넌 발음이 얼마나 좋다고 난리야!”
“아 미안해요. 그런 뜻 아니었으니까 진정 좀 해요. 무슨 사람이 아니라 비글 같잖아요. 그만 왕왕 물어뜯고! 좀!”
짜증스러워하는 찰리를 보며 명아는 씨익 웃었다.
“그래도 감정표현을 곧잘 하네. 처음엔 목각인형인 줄 알았는데 감정이 잘 안 읽혀서.”
“감정을 읽을 줄 알아요?”
“사람이면 다 읽을 줄 아는 거 아냐? 표정이나 말투 보면 딱 알지. 넌 안 그래?”
찰리는 상대방이 정말로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사실대로 대답했다.
“네 전 안 그래요. 전 좀 다르거든요.”
“그래? 뭐가 다른데?”
“사람의 감정을 면밀하게 느껴요. 표정이나 말투랑 상관없이. 어떻게?라고 물으면 저도 몰라요.”
“좋아 그럼 어떻게?라고 묻지 않고 ‘해봐 한 번!’이라고 할래. 내가 표정을 바꾸지 않아도 감정이 보인다는 거지? 그럼 지금 내가 떠올린 감정은 뭐야?”
명아는 잠시 1년 전의 열대우림으로의 휴가를 떠올렸다. 분명 출발할 때는 설렘과 행복으로 가득한 여행이었지만, 막상 가서는 괴물 같은 모기와 끔찍한 열기에 시달렸던 여행이었다. 그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끝이 쭈뼛 설 정도로 화가 났지만 명아는 애써 표정을 감췄다. 찰리는 명아를 면밀히 들여다보다가 대답했다.
“몰라요.”
“뭐? 모른다고? 그런 게 어딨어?”
“나도 몰라요. 명아 씨는 잘 안 읽히네요.”
“아 그래? 내가 왜인지 알 것 같아.”
찰리는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명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 찰리로서는 놀라서 순간적으로 해버린 행동이었다. 명아는 별로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
“네가 날 자꾸 ‘명아 씨’라는 거지 같은 호칭으로 불러서 거리감이 생겨서 그래. 명아야~라고 다정하게 부르고 다시 한번 읽어봐.”
찰리는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것을 오래간만에 느껴야만 했다. 그건 아마 사람들이 흔히 ‘짜증’이라고 부르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짧았던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에 돌아오던 명아는 자신이 느꼈던 기분에 대해서 면밀히 생각해보았다. 이제 두 번째 만나는 사람인데도 감정은 편안하게 흐르고 있었고 그것 자체로 특이한 일이었다. 보통 감정이 그렇게 안정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나거나 감정탑 안에 들어갔을 때만 그런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감정탑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는데 찰리라는 사람은 마치 감정탑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 같았다. 감정을 끌어당기지만, 격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만들어내는 것 말이다. 그러다 보면 마음 안에 있는 응어리가 흘러나오곤 했다.
명아는 찰리와 감정탑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찰리는 집에 돌아오며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감정이 읽히지 않는 사람이라니 이상한 일이다. 감정 결핍자에게서도 감정과 운명의 결은 읽힌다. 하지만 명아에게는 감정이 분명하게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물론 때때로 감정을 읽기 힘든 사람들을 마주친 것은 사실이었다. 표정 변화가 적거나, 미세표정의 빈도를 낮추는 포커 플레이어 같은 사람들, 무의식적인 몸짓이 거의 없는 단련된 운동선수의 경우에는 감정을 읽는 것이 보다 까다로웠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신체접촉이나 대화를 통해서 감정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 명아에게는 신체접촉을 통해서도 대화를 통해서도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찰리는 알 수 없다는 사실에 일순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게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너털웃음을 흘렸다. 얼마 만에 웃어보는 것인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 웃음이었다. 그림자인간들이 나타난 이후로 처음으로 찰리는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몇 번의 탐색전과 같은 인터뷰가 지나고 나니 명아와 찰리는 꽤 가까워졌다. 찰리는 읽을 수 없는 상대에 대해서 불안해하는 것을 포기했고, 명아는 감정이 흘러나오는 과정을 포착하려고 애쓰는 와중에 찰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에 28명이 자살을 했다는 말이지?”
“응. 그리고 대부분이 나를 알게 된 직후에 있었던 일이었어.”
“그리고 넌 그게 네 잘못이라고 여기고?”
“무언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잖아.”
“하지만 여기 이 인터뷰를 보면 ‘인기 여배우 김 모 씨’는 ‘그 아이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지친 삶에서 약간의 청량감을 느꼈다고 봐도 좋고,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을 느꼈다고 해도 좋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 모든 죽음이 그 아이로 인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되려 그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했다.’고 말했는걸?”
“그래. 그분은 심지어 유언에도 내 잘못이 아니라고, 자신은 이제 편안해진다고 써놓으셨지. 하지만 그렇게 언급된 것만으로도 쓰레기 같은 기자들은 더 큰 의혹을 양산해냈어.”
그 말에 명아는 약간 뜨끔했다. 기자인 자기 자신도 ‘왜 굳이 유언장에 언급을 하셨지?’라는 의문부터 들었던 것이다. 괜히 찔린 명아는 발끈한 반응을 보였다.
“누구라도 그런 의혹이 들지 않을까? 해명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해명하신 거니까 말야.”
“의혹이 드는 건 상관없는데 개인적인 의혹을 확대하고 사람들한테 퍼트리니 기자들이 욕을 먹는 거야.”
할 말이 없어진 명아는 머쓱함에 손을 비비다가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근데 너는 슬퍼 보이지는 않네.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나 봐.”
일순간 찰리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슬픔은 측정할 수 조차 없는 깊은 것이었지만, 같은 감정 공유자가 아닌 이상 그 순간의 미세표정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명아를 향해 찰리는 담담해 보이는 말투로 토로했다.
“슬퍼. 죄책감도 느끼지. 한두 명도 아니고 28명이야. 그 사람들이 살아온 삶을 다 합치면 1000년에 가까운 세월인걸. 나라는 개인이 감당하기는 어려울 만큼 길고 납득이 안 갈 만큼 아파.”
“그런데 어떻게 담담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대신 죽어줄 수도 없고 대신 살아줄 수도 없어. 아무리 고민해봐도 어떻게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지도 몰라. 내가 사라졌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 그리고 그런 질문에 답은 없어.”
“그럼 찰리 네가 바라는 건 뭐야?”
찰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나는 죽고 싶어.”
“뭐라고?”
“창밖만 봐도 삶의 예찬론자들이 많지. 노력하고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야 한다고, 살아있는 것은 최고의 가치라고 말하는 사람들 말야.”
“그렇지.”
“하지만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살아가는 게 왜 옳은 일이 아니야?”
“봐봐. 누군가 불치병에 걸렸어. 심지어 그 불치병은 매일 손톱을 생으로 뽑아내는 것처럼 고통스러워. 아니면 출산을 한다거나 요도결석에 걸린 것처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고 해보자. 치료를 받으면 살아갈 수는 있지만,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아. 그 사람에게 ‘살아있는 것’이 과연 그 자체로 축복일까 저주일까?”
“음...”
“아니면 아주 유명한 운동선수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서 팔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다고 해봐. 그는 삶의 의미였던 모든 것을, 평생을 바쳐서 금자탑을 이룬 자신의 발자취를 심지어 따라서 밟을 수 조차 없어. 물론 극복하고 또 새로운 길을 개척해서 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 승리’로 기록될 수도 있겠지만, 왜 그래야 하지? 모든 사람들이 다 인간 승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렇지. 살아있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라고 생각해.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않아도, 심지어 두 다리로 걸을 수조차 없어도 살아있다는 건 그저 그대로 의미가 아닐까.”
“나는 끝없이 고통스러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래서 이만 사라지고 싶어.”
명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람에겐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글쎄, 너 얘기를 듣다 보니 문득 의문이 들어서. 너도 죽고 싶어 하고, 네 주변에서 자의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도 다 죽고 싶었겠지. 사람들은 ‘보통’은 살고 싶어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거 아냐. 하지만 그럴 권리가 있을까?”
“그게 무슨 차이인데?”
“네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그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것도 ‘사람은 죽을 권리가 없다’는 전제 때문에 그런 거잖아. 마치 사람은 살아있는 채로만 의미가 있다는 것처럼 말야. 살고 싶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거나 의도치 않게 죽었으면 당연히 뭔가 잘못된 거지만, 죽고 싶은 사람이 죽었을 때는 받아들이진 못한다 해도 비난할 수는 없는 거 아냐? 그리고 그렇다면 단순히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아닌 것 같아.”
명아의 말은 무언가 이상했지만 찰리는 아직 반박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명아는 마치 스스로에게 말하는 마냥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 계속 말했다.
“너 말이 맞아. 사람에게 ‘정해진 만큼의 삶의 길이’라는 건 없겠지. 누구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어디까지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꼭 모든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여야지만 의미가 생기는 것은 아닐 거야. 그렇다면 삶의 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괜찮은 일 아닐까. 운명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잖아.”
사람의 운명을 읽는 찰리로서는 그 말에 선뜻 동의하기도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이러나저러나 눈앞에 있는 명아의 운명은 읽히지 않았고, 명아를 만난 뒤로 많은 사람들의 운명도 비고정된 채 흘러가는 상태로 바뀌는 것을 구경해야만 했으니까 말이다. 짙은 생각에 잠긴 찰리를 눈여겨보던 명아는 의문이 생겼다.
“너에게 감정이란 것은 뭐야?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낀다면서. 어떤 방식으로 느껴져?”
찰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말로 쉽게 설명되는 종류의 일은 아니었지만, 찰리는 자신만의 언어로 최선을 다했다.
“감정은 일종의 물결처럼 느껴져. 그리고 나는 수면 아래의 물고기야. 내가 담겨있는 거대한 수조 안에서 물결이 일어나면 감지하지.”
“그러면 슬픔이나 기쁨을 구분을 어떻게 해?”
“진원지가 다르고 파장이 달라. 이를테면 좀 더 빠른 물결과 느린 물결이 있는 것처럼, 또는 무거워서 휩쓸려갈 것 같은 물결이 있고 아주 빠르지만 가벼워서 거의 느껴지지 않는 물결도 있는 것처럼 말야. 감정들만의 고유의 파장이 있는 것 같아.”
“음.. 그러면 감정의 파장들이 서로 섞이지는 않아? 내가 낸 파장이랑 저기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파장이 섞여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잖아.”
“사람마다 느낌이 약간씩 달라. 그러니까 같은 우울이면 감정의 주파수 자체는 비슷한데, 아주 미세하게 느낌이 다르달까? 사람도 사실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구분하잖아. 감정도 그런 것 같아.”
명아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갑작스럽게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우리 놀이동산 가볼래?”
“으응? 뜬금없이 그런데는 왜? 나는 사람들 많은 곳 안 좋아하는데.”
“방금 얘기하는데 너 표정에 감정이 제대로 드러났거든. 항상 감정 없는 사람처럼 말하다가 말야.”
“그거랑 놀이공원이랑 무슨 상관이야.”
“변수를 줘보는 거지. 나는 과거를 마주하는 네가 슬픔의 감정을 표현해내는 것을 보았어. 그렇다면 광기에 가까운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너는 어떤 감정을 보일까?”
“하기 싫다는 걸 억지로 시키는 건 별로 좋은 행동은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봐 너 놀이공원 가본 적 없지.”
“응. 그런데를 뭐하러 가.”
“그러면 순수한 즐거움이 소용돌이치는 환경에서 너 자신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아직 잘 모르겠네.”
“그렇기는 하지.”
“그러면 한 번 가보자. 가서 정 불안하면 사람 없는 데로만 다닐게.”
영 어처구니없는 제안이기는 했지만 찰리는 수락해보기로 했다. 마음에 있었던 말들을 꺼내놓으니 마음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고, 그 좋은 느낌을 조금 더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좋아. 하지만 인터뷰라고 하기엔 좀 이상한걸.”
“무슨 소리야. 인터뷰 같은 형식적인 이름은 이제 집어치우자고. 널 좀 더 알고 싶어.”
그 말은 찰리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남겼지만 찰리 스스로도 명아도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다.
농담 삼아서 오후에는 놀이공원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던 명아는 선배들이 ‘잘 다녀와라’라고 말하자 되려 크게 당황해 버렸다.
“어.. 음.. 평일이고 일하는 시간에 뭐 하는 거냐고 핀잔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희한한 일도 다 있네.”
“너 그 남자애랑 가는 거 아니었어? 인터뷰하러?”
“그렇긴 하지만 더 이상 별로 인터뷰 같지는 않은걸요? 그냥 새 친구 만나서 노는 느낌인데. 흥미롭기는 하지만 기사로 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흥미롭지 않아? 감정탑과 닮은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니.”
확실히 최근 들어 그런 생각이 강해지고 있기는 했던 터라 명아는 귀를 쫑긋 세웠다.
“신기하긴 한데 그게 왜요? 사이보그 이기라도 할까 봐서요?”
박기자는 명아에게 검은 양복의 미행자들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명아야. 그 친구 주변에는 아무래도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그 사람들이 감정탑과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어.”
“으음? 감정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왜 찰리를 감시해요?”
“그건 잘 모르지. 아직 감정탑에 대해서는 알려진 부분보다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훨씬 많잖니. 그래서 우리는 명아 네가 어떤 단서라도 얻어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요? 전 그냥 제가 귀찮아서 쫓아내시는 줄 알았지 뭐예요.”
옆에서 김기자는 ‘그것도 사실 맞는 말이긴 하지’하고 중얼거렸고 명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좋아요! 그럼 놀이동산 다녀오는 대신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으면 정리해서 보여드릴게요. 감시하는 사람들이 보여도 알려드리고요. 괜찮은 조건인가요?”
“아니 취재하는 사람이랑 조건을 걸어야지 우리들한테 조건을 걸면 어떡하니 명아야.”
“그러게요. 근데 이미 너무 친구 같아서요.”
박기자는 짓궂게 웃으며 명아를 배웅해주었다.
“그렇다고 너무 찐하게 데이트하면 안 된다 명아야.”
“안 해요!”
외마디 반항과 함께 명아는 엘리베이터 문틈 사이로 미끄러지듯 사라져 갔다. 놀라울 정도로 화창한 초가을의 일이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놀이공원 단지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명아는 인파를 보고 놀랐고 찰리는 대기 중에 빽빽이 가득 차 있는 감정들을 느끼며 놀랐다. 온갖 종류의 희망, 선망, 두려움과 짜증, 설렘, 즐거움, 행복이 대기 중에서 소용돌이처럼 맴돌고 있었다. 그 아지랑이 같은 감정의 기류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을 정도였다. 과연 도시에서 가장 화려한 장소라고 불릴만한 곳이었다.
명아는 재빠르게 찰리의 옷깃을 잡고 매표소로 이동했다. 옷깃을 잡고 감정의 미로 사이로 끌려다니는 찰리는 잠시 얼굴을 붉혔지만 곧 휘몰아치는 감정에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어른 2 장이요!”
명아의 발랄한 외침이 있고서야 찰리는 제정신으로 조금씩 돌아왔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입장 게이트를 넘어서야 호흡과 판단력이 사물을 분간할 지경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정신을 완벽히 차렸을 때 둘은 이미 롤러코스터를 향해서 뛰어가고 있었다.
“무서운 거 잘 타?”
“아니...”
“잘됐네!”
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많은 이 공원에 그림자인간들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들뜨고 달뜬 감정들이 회오리치는 이런 곳에는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에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명아는 찰리에게 그림자인간들을 신경 쓸 시간을 거의 주지 않았다. 명아는 초고속 패스를 거금을 주고 끊어놓았고, 덕분에 둘은 대기시간이 아예 없다시피 놀이공원을 뛰어다녀야만 했다.
“빨리 와! ‘대혁명’ 롤러코스터 예약시간까지 1분 30초 남았다고! 이제 29초! 28.. 27..”
“제발 그만 뛰면 안 될까... 대혁명에 탑승하고 싶지 않아... 분명 단두대에서 처형될 거라고.”
“그게 무슨 헛소리야. 귀족 인척 하지 말라고 노비 주제에. 이제 다 왔다! 아이구 잘 뛴다! 가자 가자!”
둘은 쉴 새 없이 ‘해저 탐험선’과 ‘고대 신비’ ‘특급 우주열차’ ‘용오름’같이 거창하고 빠른 놀이기구들을 탔고, 결국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반쯤 탈진한 채로 잠시 쉴 수 있었다. 대관람차에 오르자고 한 것은 찰리의 아이디어였다. 명아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날 처음으로 찰리가 타자고 한 기구인 만큼 거절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관람차는 초고속 패스가 적용되지 않는 만큼 잠시 기다려야 했지만 워낙에 높이 올라가고 객석이 많은 만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잠시 둘만의 공간에 들어가 사람들 가득한 세상을 떠나며 명아와 찰리는 멀어지는 지면을 지켜보았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대관람차는 천상을 향해서 여정을 해 나갔다. 저 멀리 하늘 끝에는 태양이 하루의 마지막 빛을 불태우고 있었고, 달은 어느새 도시의 자락에서 아름다운 빛을 드리웠다. 찰리는 지는 해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그림자인간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지켜보았다. 해질녘이 되면 더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 곳에 와있는 만큼,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그림자인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명아가 침묵을 깼다.
“나는 폐쇄된 공간을 무서워해.”
그 말에 찰리는 화들짝 놀랐다.
“그럼 여기에 있어도 괜찮은 거야? 괜히 타자고 그랬나?”
“네가 사람들 많은 곳을 무서워하는 것과 비슷할 거야. 너도 오늘 견뎠으니 나도 견딜 수 있겠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아니, 그럴 필요가 있었어. 이 질문을 하기 위해서라도. 너는 무엇을 무서워해 찰리야?”
찰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죽는 것이 무서웠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찰리는 떠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보다는 사람이 무서웠다. 상처 받는 것도, 상처 주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감정을 읽을 수 없고 이어져있는 운명의 끝을 알 수 없는 지금 찰리는 불안했다.
그렇게 말하면 명아가 상처 받을 것을 찰리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아의 두 눈은 석양을 받아 묘한 신비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그 어떤 진실을 말하더라도 괜찮다고 말하는 마냥 말이다. 그 두 눈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찰리는 대답했다.
“나는 사람이 무서워.”
“왜?”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너는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잘 알잖아. 감정을 읽으니까. 감정이야말로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것 아니었어?”
“응. 그런데 안 읽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어.”
“그래? 그런 사람이 있단 말야?”
“응. 널 보면 그렇더라고.”
“나?”
“응. 처음 볼 때부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다른 사람들의 운명, 일어날 일, 미래나 감정은 읽혀. 그런데 너 주변에서는 혼선이 생겨. 그래서 불안하고 그래서 편안하기도 해. 이렇게 말하면 상처 받을까 봐 그동안 말하지 않았어. 미안해.”
명아는 생긋 웃었다.
“알아.”
찰리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황하거나 화낼 줄 알았는데 명아가 보인 반응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당혹하여 빤히 쳐다보고 있자 명아는 부드러운 미소로 말을 이었다.
“널 처음 볼 때부터 나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주변 모든 감정들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네가 날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거든. 네 표정에도 쓰여있었지. ‘이건 뭐지?’ 하고 말야. 그런데 어찌 눈치를 안채겠어.”
“어.. 음.. 그게 안 불편해..? 안 이상해?”
“그게 왜 이상해? 원래 그게 당연한 거잖아.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 우리는 그 이유를 찾으면 되는 거구.”
놀라우리만큼 간단하고 당연한 논리에 찰리는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다. 때때로 사람들은 당연한 것을 잘 보지 못한다. 원래부터 해온 것들에 사로잡혀 놓쳐버리는 것이다. 찰리는 자기 자신이 살아온 삶이 유달리 특이했기 때문에 사람을 이해할 수 없거나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당연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된 지금은 약간의 해방감마저 느꼈을 뿐이다.
찰리는 감정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왜 본인은 타인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건지, 왜 유달리 명아의 감정만을 읽을 수 없는 것인지 답을 찾고 싶었다. 그것을 이해하면 어쩌면 불안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저렇듯 삶을 서성거리며 찰리의 눈에만 보이는 그림자인간들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찰리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나는 언제나 감정탑에 올라보고 싶었어.”
“왜? 그건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아니, 사람들 다 가는 쇼핑몰 지역 말고. 그 꼭대기에 있는 천상의 문에 도달해보고 싶었어.”
찰리가 꺼내놓은 해묵은 도시전설 이야기를 들으며 명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그냥 소문 아니었어? 실제로는 꼭대기에 전망층이 있잖아.”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전망층 너머에도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아. 아니, 있어야만 해. 나는 그곳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들고, 그곳에 도착하면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수 있을 것 만 같은 갈망을 느끼는 걸. 그 탑을 끝까지 오른다는 건 내겐 예정된 죽음에 도달하는 의미야. 어쩌면 천상에 올라 죽음을 맞이하는 느낌이 좋아서 이 관람차에 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명아는 찰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고, 그 사실을 인정했다.
“나는 아직 너를 다 이해할 수는 없어 찰리. 죽음에 대한 갈망도, 그 동경도 다 와 닿지는 않아. 힘들었다고 한들, 나 역시 힘든 일들을 많이 겪으며 살아왔지만 아직 그렇게 강렬하게 떠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거든.”
“그래. 그렇겠지.”
“상처 받지 말고 계속 들어줘. 하지만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너를 응원할 수 없는 것은 아니야. 물론 네가 죽는 것을 응원하지는 않아. 하지만 네가 선택하는 것을 응원해. 네가 어떤 선택을 내리더라도 그것이 너의 선택이라면 나는 너를 응원해보고 싶어. 내가 지지하는 건 너의 죽음이 아닌 너의 선택이야. 그리고 그것이 삶을 만든다고 생각해.”
찰리는 그 진솔한 마음에 잠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찰리 역시 아직 명아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괴로운 일이 있어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직은 찰리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서로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서로의 선택을 존중할 수는 있다는 말은 찰리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명아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찰리, 학교에 다시 가보는 건 어떨까?”
“응? 내가 휴학한 줄은 어떻게 알았어?”
“사람들 많은 곳을 싫어하는 데다가 평일에도 항상 집에 있으니까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고 가봐. 작은 데서 변화가 시작될지도 모르잖아.”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부담받았겠지만 명아에게선 아무런 의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찰리는 저도 모르게 알겠다고 대답할 뻔했다. 명아는 찰리를 쳐다보지 않은 채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나는 네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찰리.”
찰리는 잠시 숨을 멈춘 채로 명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깃들며 명아의 모습은 반쪽짜리 여신처럼 빛나고 있었다. 명아는 계속해서 말했다.
“죽음을 갈망하는 것은 괜찮아. 어쩌면 그것도 삶의 방법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가 무엇을 선택하는지조차 모른 채 막연히 죽지는 말았으면 좋겠어. 네 선택이라면 막지는 않아. 하지만 적어도 올바른 이유에서, 너만의 발걸음으로 선택해줘. 그게 아니라면 죽지 말았으면 좋겠어.”
대관람차는 천상을 향해 느릿하게 높아졌고, 그 안의 두 젊은 남녀의 감정도 함께 천천히 높은 곳을 향해갔다. 아래에서는 휘몰아치는 세상이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섞으며 혼란스럽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이 드높은 하늘 위에는 맑고 투명한 감정만이 노을처럼 옅게 퍼지고 있었다.
명아는 관람차가 지상에서 50미터쯤 떨어졌을 때 무언가를 발견했다. 찰리도 비슷한 시기에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꼭대기에 올라가는 중에는 하늘밖에 보이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땅에는 그림자 인간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수백은 될 것 같은 엄청난 군중이 대관람차를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에 찰리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몇몇 그림자인간들은 손을 들어서 대관람차를 가리켜 보였다. 아무리 봐도 자신들이 타고 있는 칸을 가리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찰리는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그들이 찰리를 분명하게 인식한 듯 행동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점차 분명해지던 행동들은 지금 이 순간에는 확실한 태도로 나타나고 있었다. 겁에 질린 찰리의 손을 갑작스레 꼬옥 잡으며 명아가 말했다.
“찰리.. 너도 저기 저 검은 사람들이 보여?”
그 말에 찰리는 더욱 기겁을 하고 말았다. 여태까지 그림자 인간들을 볼 수 있었던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었다. 누구에게 말하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뿐이었던 것이다. 찰리는 명아를 놀라서 쳐다보며 말했다.
“너도 저 그림자인간들이 보인단 말야?”
“그림자인간이라니..?”
“저 흐릿한 안개 같은 사람들 말하는 거 아니야..?”
“응..? 아니 저기 저 검은 양복 입은 사람 말야. 저 벽 그림자 뒤에 은밀하게 숨어있는데 보여?”
찰리는 명아가 그림자인간을 보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잡은 손의 떨림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넘실대는 그림자인간들 사이로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 두어 명이 숨어있는 것이 보였다. 넘실대는 감정과 그림자인간들은 이상하게 그 양복쟁이들을 피해 가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런지 찰리의 눈에는 더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응 보여. 그런데 왜?”
명아는 찰리에게 뒤쫓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박기자가 말해준 감정탑 관련 사람들인 것 같다고, 아까 놀이동산에 들어올 때도 봤는데 지금 보니 계속 미행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찰리는 기억을 더듬어보았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보였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큰 충격을 받았다. 명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긴 시간 동안 미행만 했다니 무언가 해코지를 할 건 아닌가 보네.. 그래도 무섭다 찰리. 조심해서 다녀야겠어.”
찰리는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관람차에서 내리자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그림자인간들은 웅성거리며 찰리를 쳐다보았다. 무엇인가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 언어였을 뿐이다. 그들은 찰리와 명아가 걸어오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길을 비켰다. 명아는 찰리가 검은 양복들 때문에 긴장한 줄 알았는지 내려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어설프게 마주 잡은 손에서는 처음이라는 긴장과 서로 아직 알지 못하는 설렘이 부드럽게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 순간의 찰리는 너무도 긴장한 탓에 알지 못했지만, 명아의 감정은 마주 잡은 손에서는 전해져오고 있었다.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설렘이 그곳에 있었다. 운명이 얽혀 드는 와중에, 석양이 익어 밤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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