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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오시 Oct 25. 2023

외국어 공부는 인류애로부터 시작된다

벌써 아일랜드에 온 지 2년이나 되었지만 영어가 좀체 늘지 않는다. 말하기는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 지금보다 나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어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 넷플릭스에서 영어로 된 영상을 보긴 하지만 이것으로 학습을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줄이고자 하는 최소한의 활동일 뿐이다. 취직을 하고 영어를 사용하며 일을 하면 자연스레 늘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집안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헬스를 해야만 키울 수 있는 근육이 생기지 않는 것처럼.


아일랜드의 어학원을 졸업을 할 때 내 레벨은 B2(Intermediate, 중상급)였는데 현재는 이 보다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B2는 '영어로 자신 있게 소통할 수 있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아무래도 '자신 있게'라는 부분을 도려내야 맞을 것 같다. 이 정도 수준에도 용케 직장을 구하고 별 탈 없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건 직장에서 필요한 영어는 생각보다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판데믹 때문에 회사가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주된 의사소통 수단으로 메신저를 사용하게 된 것은 영어가 부족해도 원활한 업무를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사람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일은 줄어들어서, 여전히 일과 관련되지 않은 주제는 몇 개의 단어를 간신히 주워듣고 대강의 내용을 추측하는 정도로 이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간혹 대화 내용을 통째로 잘못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깨닫고 혼자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니 이 정도 수준으로는 빠르게 흘러가는 대화에 끼어들 수 조차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왜 공부를 하지 않는 걸까. 솔직히 이제 영어 공부라면 거부감이 든다. 그렇다. 그냥 싫다. 어떤 노력도 하기 싫은 탈진 상태라고나 할까.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가 정식 교과목으로 시간표에 배정된 것이 생각난다. 열 살부터 공부한 영어 실력이 이 정도라니 그동안 해왔던 영어공부가 돈낭비, 시간낭비인 것 같아 허무하다. 하지만 이런 후회를 해도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순 없으니 앞으로 더 나아질 궁리를 해야 하는데 이제는 영어공부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 막연히 싫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 싫음을 품고 벌써 2년이 흘렀다. 시간은 참 잘도 간다. 이대로라면 5년, 10년, 아니 그 이상을 아일랜드에 살아도 여전히 영어가 늘지 않았다고 투정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 아주 오랫동안 거주를 한 사람도 그곳의 언어를 못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결국 외국어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실력이 느는 부분인데 공부하기가 이렇게도 싫으니 고질적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의 고찰을 해 보았다. 


외국어 학습에 중요한 능력은 듣기와 읽기이다. 둘 다 인풋(Input) 능력이다. 아웃풋(Output) 능력인 말하기와 쓰기는 경험상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키워드 몇 개만 잘 발음해도 원어민들은 척척 알아듣는다. 때문에 말하기는 문법을 지키는 것보다 발음을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법을 몰라도 정확한 단어를 연속적으로 나열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수준의 대화를 지속할 수 있다. 쉽게 한국어를 예로 들어 '어제', '밥', '너무', '많다', '배', '아파', '병원', '간다', '지금' - 이렇게 단어의 나열만 순서대로 잘해도 지금 이 글을 읽는 데 문제가 없는 한국어 실력이라면 금방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말하기는 못해도 해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반면 듣기는 기본적인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인풋 능력인 듣기와 읽기를 굳이 비교하자면 듣기가 당연히 더 어려운 고급 능력이다. 읽기는 내 흐름대로 조절이 가능하다. 속도가 느려도 문제가 되지 않고 중간에 모르는 단어를 검색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듣기는 다르다. 중요 단어 몇 개만 놓쳐도 큰 흐름을 잃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계속 집중상태를 유지해야 하며 모르는 표현이 나오면 재빠르게 유추하는 능력까지 있어야 한다. 이는 매우 고난도의 언어 능력이다. 쉬운 단어의 조합이지만 절대로 해석이 되지 않는 표현 또한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wing it'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짧은 문장에 모르는 단어는 하나도 없지만 원래 의미를 모른다면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이 답답함을 느껴보시라고 원래의 뜻은 굳이 적지 않겠다.) 때문에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말을 자체 통편집해서 받아들이는 상황이 부지기수다. 이렇게 듣기가 잘 안 되니 받아들이는 정보량도 떨어지고, 그래서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러니 긴장을 하고, 결국 상대방이 하는 말이 더 안 들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듣기는 말하기보다 수동적이라고 생각되기 쉽다. 말하기는 내 의지로부터 시작되지만 듣기는 타인의 의지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듣기는 매우 능동적인 두뇌활동을 요구한다. 영어에서 Hearing과 Listening은 한국어로 번역하면 '듣다'라는 하나의 표현으로 번역되지만 그 의미가 다르다. Hearing은 들리는 것이고 Listening은 이해하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있다. 만약 수업 중에 멍을 때리고 있다면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는 있지만 그 내용까지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Hearing이다. 반면 옆에서 열심히 노트필기를 하며 경청을 하는 학생은 Listening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하기 위해 집중하는 상태, 즉 Listening은 Hearing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다. 이렇게 Hearing을 Listening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집중력은 근본적으로 주제에 대한 관심과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나온다.


때문에 천성이 외향적이고 사람을 좋아한다면 외국어를 배우는 데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실제로 그렇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여자친구가 대표적인 예다. 영어학원에서는 내내 졸았고 평소에도 딱히 공부라 할 만한 것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원어민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농담도 주고받는다. 비결이 궁금해서 옆에서 관찰을 해 보니 상대방에 관심이 많고 대화의 집중도가 굉장히 높은 것이 보인다. 영어 수준과는 별개로 대화하는 순간에 진심을 다하는 것이다. 정신없이 오가는 주제의 흐름을 유려하게 타고 노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도 그곳의 참여자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지켜보고 있노라면 대화라는 행위가 예술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까지 든다. 원래 타고난 언어적 감각도 뛰어나서 모르는 표현을 앞뒤 문맥만으로 유추하는 능력 또한 뛰어난데, 이 유추가 매번 틀리는 나와는 다르게 적중률이 높은 편이라 원어민과 실전 대화를 하면서 배우는 것이 가능하다.


이처럼 외향적인 사람들은 타인과 소통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고 외국어도 금방 배운다. 반면에 나는 타인과의 소통 자체를 스트레스로 여기고 자꾸만 안으로 숨어들게 되니 많이 해도 모자랄 말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배운 것을 써먹지 않으니 아무리 예습을 많이 했어도 실전에서 얼어붙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외국어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의 근본적인 이유인 것 같다.


HELL IS OTHER PEOPLE — JEAN-PAUL SARTRE


타인은 지옥이다 - 장 폴 사르트르. 한 때 드라마화 된 웹툰의 제목으로 유명해진 아포리즘(Aphorism)이다. 그렇다. 타인을 지옥으로 인식하느냐 천국으로 인식하느냐는 외국어 실력을 늘리는 결정적인 부분이다. 언어의 본질은 결국 타인과의 소통이기 때문이다. 문제 인식이 되었으니 이제 해결방법을 생각할 차례인데, 원래 없던 사교능력을 끌어올릴 방법이 갑자기 떠오르지는 않는다. 아마도 다이어트가 평생의 노력인 것처럼 이 또한 평생의 노력은 아닐지. 조바심을 잠시 거두고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내게로만 향해 있던 초점을 외부로 돌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타인과의 소통을 즐겁게 하면서 자연스레 영어 실력도 늘고, 그래서 언젠가는 원어민과 웃으며 거침없이 대화하는 날이 오리라.



(작성일: 2021. 4. 4)

(본 글은 매거진 '번역하다' 20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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