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아 본 키워드 다섯 개
(작성일: 2022. 12. 30)
아일랜드에서 집을 샀다. 올해 5월 한국에 방문하고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꿈도 희망도 없던 과거의 나는 집은 사는 물건이 아니라 굳게 믿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나그네 같은 인생, 뭘 자꾸 소유하려 드는지. 그런데 아일랜드에 와서 살다 보니 렌트(월세)가 너무 높아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은행 이자를 내는 것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한창 코로나가 판을 치던 2021년 2월에 들어간 코딱지만 한 스튜디오가 월 900유로였다.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6평 원룸정도 될 것 같다. 당시 환율이 1400원 정도이니 한국돈으로는 거의 130만 원이다. 이 정도 가격이면 서울 어느 지역이든 내 마음대로 골라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물이 워낙 없는 더블린에서는 이 정도 가격으로 스튜디오를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혼란한 시국 덕분이었다고 해야 할까. 이때에는 본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많아서 도시에 사람이 없었다. 때문에 1년 계약한 스튜디오의 만기일이 다가오면서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다음 계약은 결코 같은 가격으로 연장할 수 없을 것이라는 강한 불안이 밀려왔다. 못해도 삼, 사백 유로는 올려 받게 될 것이라는 불안에 등 떠밀려 결국 이사를 나왔다. 코로나가 안정된 지금 그 스튜디오의 월세는 2,150유로이다(한화 약 300만 원). 렌트가 두 배가 넘게 올랐지만 지금 확인해 보니 예약이 가득 찬 상태이다. 돈이 있어도 들어갈 방이 없는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예약했을 세입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나로서는 계약이 끝나기 전에 더 저렴한 곳으로 옮긴 것은 잘 한 결정이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이사가 한 두 달만 늦어졌더라도 방을 찾지 못해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2022년 2분기부터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방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더블린에서 스튜디오에 살려면, 물론 지역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최소 월 1,300~1,500유로(한화 약 200만 원) 예산을 잡아야 한다. 오롯이 방 값 만이다. 여기에 전기세+식료품+생필품 비용까지 합치면 월 2,000유로(한화 약 280만 원) 정도 된다. 그것도 운이 좋아서 방을 구했을 경우에만. 이렇게 1년만 살아도 24,000유로이다(한화 약 3300만 원). 이 돈은 생활비이기 때문에 그냥 날아가는 돈이다. 나는 이미 3년 동안 평균 약 800유로를 방값으로 지출을 했으니 800유로*12개월*3년 = 대략 28,800유로(한화 약 4천만 원)를 이미 오롯이 렌트로만 지출했다. 내 직장 동료들은 이 보다 더 비싸게 주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내 집이 있다면 월세 비용도 아끼고 이사도 안 다니니 좋을 것 같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금방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우선은 운전연수를 받고 차를 먼저 준비한 후 더블린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으로 뷰잉(viewing, 매물을 보러 다니는 행위)을 다닐 생각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큰 결정이니만큼 느린 호흡으로 신중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외국 타지이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더블린을 얕본 것인지, 한국에서 돌아온 후 큰맘 먹고 전화를 한 운전학원에 대기자가 너무 많아 연수만 받는 데에도 2개월을 기다리란다. 많은 운전학원이 문을 닫아서 운영 중인 기관이나 개인을 찾는 것도 힘들었다. 2개월 후에 다시 연락을 한 들 내 차례가 올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다. 그래서 차가 없어도 뷰잉을 할 수 있는 곳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집 보는 경험을 키우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아일랜드는 집을 사는 과정이 한국과 달라서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 경우는 뷰잉을 다니기 시작한 게 6월 중반이었고 최종적으로 구매가 끝나 부동산 에이전트에게 키를 넘겨받은 것이 11월 말이니 거의 5개월이 걸린 길고 힘든 여정이었다. 집을 사는 과정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으나 솔리시터가 답장을 제 때 주지 않아 마음고생을 좀 많이 했다. 뉴스에서는 세계 경제가 어려워져서 금리가 오르고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하고, 은행에서는 곧 이자를 올리겠다는 통보를 하고, 계약은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솔리시터는 답장이 없고.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솔리시터에게 보낸 문의 메일들이 스팸함에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뻔한 거짓말에 분통이 터졌다. 솔리시터를 바꿀까 백 번도 넘게 고민을 했지만 그렇게 되면 또다시 거래가 몇 주, 아니 몇 달이나 지연될지 알 수 없었다. 은행에서는 0.5% 이자를 올린 것도 모자라 곧 0.5%를 더 올릴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한 달에 지불하는 이자가 늘어나는 셈이라 계약이 늘어질수록 손해를 보는 것은 나였다. 영어도 부족해서 제대로 대응할 수 없으니 그것도 답답했다. 내가 클라이언트인데 마치 을처럼 굽신거려야 하는 상황을 겪은 후 이제 다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힘든 과정을 겪고 마침내 집 키를 받았을 때에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울적했다. 집이라는 거대한 소유물이 늘었다는 생각에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삼킨 것처럼 거북했다. 앞으로 20년 동안 은행 빚을 갚아야 한다. 그것도 외국 땅에서. 잘 한 선택일까. 렌트비를 내고 살 때에는 고충은 있을지언정 마음은 이보단 가벼웠는데. 직장 동료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집 얘기가 나와 이런 감정을 솔직히 말했더니 위로해 주었다. 어쩌면 집 구매하며 받은 스트레스가 누적된 것일 지도 모르겠다고. 막상 집에 들어가면 훨씬 좋을 것이라고. 내 공간이 생기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고… 그 가벼운 위로의 말을 동아줄처럼 내내 부여잡고 있었다. 좋은 회사와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건 천운이다. 이 점은 언제나 감사히 여기고 있다.
어찌어찌 구매 프로세스가 마무리되어서 12월에는 이사를 하고 아무것도 없는 집에 가구를 들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부 이케아에서 산 조립식이라 전동 드라이버도 없이 손으로 조립을 했다.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뿌듯했지만 이사도 하고 결국 몸에 무리가 갔는지 허리디스크가 재발해서 고생 중이다. 원래 허리/목디스크가 있어서 주의해야 하는데 방심을 했다. 그래도 직장 동료가 해 준 위로의 말이 맞았다. 처음으로 렌트가 아닌 모기지 비용을 은행에 지불하고 나니 이제야 집을 산 것이 실감이 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정체 모를 불안감에 너무 걱정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 전에는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돈만 있다면 그 외의 것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경제에 관해 알고 있는 건 세금을 뗀 내 월급액수와 고등학교 때 배운 수요-공급 그래프 정도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난리였던 암호화폐에도, 2020년 붐이 일었던 주식에도 관심이 전혀 가질 않았다. 회사 월급이 내가 생활하는 데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전자기기/명품에도 관심이 없다. 나의 소소한 낙은 책 읽기와 수학문제 풀기, 피아노 치기와 가끔씩 하는 컴퓨터 게임 정도. 일 이년 후 미래도 보이지 않는데 고령화가 문제다, 은퇴준비는 일찍부터 해야 한다고 옆에서 아무리 떠들고 강조해도 머리만 아프고 답답할 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집 구매에 대한 생각이 본격적으로 구체화되면서 필연적으로 알아야 하는 경제지식이 많아졌다. 우선 모기지라는 개념이 어떤 것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경제 쪽으로는 문외한이라 이게 무슨 개념인지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하나씩 알아가다 보니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돈이라는 숫자로 치환되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부동산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화폐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10년 전 은행에 저금해 둔 만원은 지금 얼마 정도의 가치가 되었을까? 인플레이션은 조용한 도둑이라던데 이제 그 의미를 알겠다. 만약 10년 전 은행에 저금하는 대신 금처럼 희소한 재화를 샀다면 내 숭고한 노동의 가치를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건을 관리해 주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고 녹이 스는 것처럼 돈도 마찬가지이구나. 신기하다. 관심이 생기니 자연스레 보이는 정보의 양도 많아지고 그럴수록 능동적인 학습을 하게 된다. 집이라는 거대한 자산을 90% 모기지를 끼고 구매를 하니 이 전에는 보이지 않던 세상이 갑작스레 눈앞에 펼쳐졌다. 경제지식이 없던 나의 이 전 삶은 마치 반쪽짜리 같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을 알아갈수록 감탄을 하고 있다. 역시 세상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고작 반년 전의 모기지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내가 이제는 너무나 다른 사람 같다. 집은 절대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세금으로 얼마를 내는지도 모르고 그저 월급만 받으면 은행에 쌓아두던 나였다. 아직도 공부할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 것이 고무적이다.
올해 날씨는 정말 이상했다. 작년인 2021년까지만 해도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도 그렇게 춥지 않았었다. 그러나 올해는 11월 말까지 낮에는 마치 여름처럼 더웠다. 무엇보다 햇볕이 예사롭지 않았다. 내 기억에 이 전에는 9월만 돼도 전기장판을 틀고 잤는데 올해는 11월이 되도록 그러질 못했다. 그러다 12월에는 영하 5, 6도까지 내려갔다. 그러던 기온이 그 주 주말에는 다시 영상 13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직장의 아일랜드 토박이 동료도 날씨 걱정을 많이 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고 한다.
전 세계가 기상이변으로 이제는 심각한 자연재해를 경험하고 있다. 올 겨울은 이렇게 넘어간다 하더라도 내년 여름이 걱정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는 해가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Isa는 아일랜드에 와서 사귄 여자친구이다. 브라질 사람으로, 사랑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다. 사랑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그 정의도 발현되는 모습도 각양각색이겠지만 이자를 만나고서는 이자가 아니라면 알지 못했을 사랑의 모습을 보고 배우는 중이다. 올 한 해도 덕분에 즐겁고 행복했다. 2023년 서로 아프지 말고 건강했으면.
나는 행복하다. 는 문장을 이제는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적고 말한다. 나는 무척 행복하고 이 모든 것에 감사한다. 외국 타지에 나와 혼자 살면서, 코로나라는 유례없는 전염병을 겪으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개발자)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이라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할 줄로만 알았다. 어른들은 내가 틀렸고 자기들이 옳다고 했다. 지금은 우리를 원망하겠지만 나중에 가면 고마워하게 될 것이라고 했었다. 나는 언제나 그들이 틀린 쪽이길 바랐다. 그래서 그들을 끝까지 원망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제 나도 서른 중반이 되어간다. 그들이 옳다고 해왔던 길을 돌아보니 어떤 면에서는 정말로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한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기에 그들이 이끈 길에 이제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행복이 무엇일까. 가장 마음에 드는 간단한 정의는 행복이란 곧 현재에 만족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거기에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조금 더 보태고 원만한 인간관계로 장식을 해주면 행복이라는 보이지 않는 녀석은 꽤 구체화된다. 고등학교 수업시간 “너희는 행복하니"라는 선생님의 뜬금없는 질문에 손을 번쩍 들고 “네, 저는 행복해요"라고 답하던 반장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늘 끼고 다니며 뒤적이던 불안의 책(페르난두 페소아 지음)은 더 이상 보지 않는다. 이제는 유튜브에서 경제와 주식 관련된 채널, 부자 되는 법, 시간 관리하는 법을 보고 자기 계발 서적을 읽는다. 집을 갖기 전에는 돈에 욕심이 없었는데 집을 갖고 나니 모기지를 가급적 빨리 상환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돈 버는 방법이라는 추천 클립이 떠도 관심조차 없었는데 이제는 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 인생이 책이라면 이제까지의 나는 책장을 빨리 덮을 궁리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뒷얘기가 궁금하다. 길고 지루했던 장을 포기하지 않고 읽어 낸 나를 몹시 칭찬한다. 다음 장에는 무슨 이야기가 적혀있을까? 어떤 이야기로 채워나갈까? 나라는 책을 읽고 쓰는 게 점점 재미있어진다. 많은 걱정과 함께 시작하는 2023년이지만 괜찮아도 안 괜찮아도 결국은 다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