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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오시 Mar 02. 2024

아일랜드에서 차 산 이야기 (1)

구매 결정을 하기까지

아일랜드에 정착한 지도 벌써 5년째다. 그간 영어는 1도 늘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 정말 빨리 흐른다. 재작년 겨울에는 열심히 돈을 모아서 방 두 개짜리 작은 아파트를 구매했다. 집은 사는 게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던지라 부담이 컸는데 지나고 보니 좋은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는!) 렌트비도 아낄 수 있고 무엇보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는 내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가장 크다. 집을 구하기 전 3년간 이사를 다섯 번이나 다니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짐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얼마 안 되는 옷가지가 전부라 이사 자체는 힘들지 않았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보다 저렴한, 그러면서도 안전과 편의시설이 보장된 장소를 찾는 것은 고질적인 주거난을 겪고 있는 더블린에서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기사: 몰려드는 기업·이민자에 주거난 심각)


집을 장만하고 나서 가구며 이런저런 살림살이를 구비하는 데에도 예상치 못한 돈이 쏠쏠히 들었지만 그간 신경 써가며 저축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이제는 차를 장만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아일랜드는 자연이 참 아름다운 나라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아무래도 갈 수 있는 장소에 한계가 있다. 장소뿐만이 아니라 차편이 끊기기 전에는 귀가해야 한다는 시간적인 한계도 있고 더 큰 문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안전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스나 루아스, 다트를 탈 때면 항상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생명을 위협하는 큰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적지만 신경을 예민하게 하는 일들은 자주 일어나는 편이다. 뒤에서 과자나 초콜릿을 던지는 십 대나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는 승객에게 한 번이라도 시달려봤다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걱정하게 된다. 꽉 찬 루아스에서는 언제나 소지품 도난에도 신경 써야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평생 뚜벅이 인생이었던지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편에는 익숙하고, 직접 차를 소유하고 운전을 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부담과 리스크가 적다고 생각했다. 또한 차는 집과는 다르게 100% 소모품이기에 구매 결정이 쉽지 않았다. 집과는 달리 한 번 구매를 하고 나면 절대로 가격이 오를 리가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사고와 유지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구매를 결정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다. 거의 반년 이상 고민만 했다. 만약 집에서 대중교통에 접근하는 게 어려웠다면 결정에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집보다는 차를 먼저 구매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차를 장만하지 않으려고 기차역과 가까운 곳의 집을 구했기에 차가 없어도 통근과 생활에 큰 지장이 없었다. 약간의 불편이 있다면 장 보러 갈 때 항상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에서 오는 제약정도. 하지만 여자친구와 같이 살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야간에 일을 하는 여자친구의 가장 큰 걱정은 교통편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겨울에는 눈이 조금이라도 쌓이면 기차가 지연되거나 중단되기 일쑤이고 주말이거나 공휴일에는 차편을 기다리기 위해 한두 시간을 그냥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차를 사는 결정은 쉽지가 않았다. 차 구매부터 유지까지 모든 게 해야만 하는 숙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숙제를 미루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차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비상시에는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렌트를 하든 구매를 하든 뭐가 되어도 좋으니 아일랜드에서 언제든 운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두는 것을 올 한 해 버킷 리스트에 넣었다. 한국에서 취득한 면허를 진작 아이리시 면허로 바꿔놓긴 했지만 10년도 넘은 장롱면허라 바로 도로 위로 뛰어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일랜드는 영국/일본처럼 좌측통행을 하는지라 사전 연수는 필수였다. 그래서 올해 초부터는 연수를 받으며 천천히 운전 감각을 되살렸다. 연수는 요즘을 기준으로 1회에 50유로 정도 한다. 처음에는 수동기어로 연수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왼손으로 기어를 조작하는 게 힘들기도 하고 도로 위에서 신경 쓸 게 많아서 2회 정도 연수를 받아보고는 자동을 고려하게 되었다. 수동을 생각한 이유는 아직도 아일랜드는 수동 차량이 대세이고 자동보다는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차량 유지비용이 부담된다면 렌트를 하는 것도 방법인데 자동 렌터카를 찾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회 차는 자동기어를 시도해 봤는데 강사에게 이 정도면 연수는 더 받을 필요가 없으니 이제는 차를 렌트해서 이곳저곳 다녀보라는 말을 들었다. 수동/자동 기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연수를 한 번 받고 나니 앞으로도 수동 차를 탈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강사가 하는 말이 아직 수동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요즘 차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동을 선택한다는 것으로 봐서 이 대세도 곧 바뀔 듯싶다.


연수를 받으면서 칭찬을 받고 나니 운전에 대한 자신감이 올라갔지만 처음부터 차를 살 생각은 없었다. 우선은 렌트를 하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먼저 해 볼 생각이었는데 문제는 내가 사는 곳에서 자동기어 렌터카를 찾는 게 너무 힘들었다. 렌트는 Go Car가 유명한데 더블린이 아닌 킬데어(Kildare)에서는 차를 픽업하는 장소도 별로 없는 데다 있다고 해도 전부 수동 차량이었다. 로컬매장에서 렌트를 하려고 해도 매장까지 거리가 적어도 20km는 돼서 왕복 택시비만 고려해도 꽤 되는 금액이었다. 물론 이게 차를 구매하는 것 보다야 저렴하지만 한 달에 4일만 운행을 해도 적어도 400유로 가까이 지출하는 셈이기에 ((렌트 50유로 + 왕복 택시비 40유로) * 4일 + 기름값등...) 결국 구매를 조금 서두르는 것으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중고차를 구매한 이야기와 팁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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