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과정과 팁
지난번 글에서는 아일랜드에서 차를 구매하게 된 동기를 적어보았고 이번 글에서는 구매과정과 팁을 적어보려고 한다.
차를 사려고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쇼핑을 할 차례였다. 가장 중요하고 그만큼 힘든 과정이지만 일단 마음을 먹고 나자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고민만 하던 때보다는 움직이기가 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웹사이트만 뒤져가며 쇼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 생각으로는 저렴한 경차를 신차로 사서 되도록이면 오래 몰고 다닐 생각이었다. 신차가 가격이 비싸긴 해도 중고보다는 잔고장이 덜하고 또 잘 관리만 한다면 되팔기 용이하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주위 의견을 들어보면 모두가 신차보다는 중고차를 추천했다. 특히 첫 차라면 더더욱. 신차는 출고하자마자 5000유로 정도 감가가 되고 또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예상치 못한 사고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도 일리가 있으나 그래도 되도록 신차를 선호하던 한국에서의 사고방식 때문에 주위사람 모두 중고차를 추천하는 게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약 한 달가량 차를 타고 돌아다녀보니 알겠다. 아일랜드의 운전문화는 정말 별로다. 물론 내가 초보인 탓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더 해보겠다.
신차로는 현대 the new i10 같은 경차를 알아보고 있었지만 실제 차 사이즈를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도 너무 작아서 결국 이런저런 고려 끝에 중고로 구입하기로 결정을 했다. 당연히 중고차가 가격적으로 이점이 있지만 쇼핑 난이도는 더 높아졌다. 상태 좋은 차를 고르기 위해서는 차종에 대한 지식과 더불어 차량에 대한 기본지식까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에 쇼핑이 즐거운 과정이었다기보다 숙제에 숙제가 더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점차 새로운 용어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나만의 팁도 생겼다. 그래서 나와 같은 차알못이 쇼핑 초반에 보았더라면 도움이 되었을만한 팁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좋은 물건을 고르기 위해서는 좋은 물건이 있는 장소로 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좋은 차를 구매하려면 좋은 차를 많이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알고 있는 게 좋다. 내경우는 검색을 계속하다 보니 주로 이용하게 되는 사이트가 DoneDeal과 CarZone이 되었다. 신차를 고려하던 초반에는 브랜드와 차종 위주로 검색하는 게 편했던 CarZone을 주로 이용했는데 중고매물을 본격적으로 탐색하면서 DoneDeal이 본진이 되었다. 쇼핑몰 별로 다른 필터를 제공하니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교차 검색을 하면 한 사이트에서 놓친 매물을 발견할 수도 있고 검색 결과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내 경우 처음부터 이 사이트가 본진이다 하고 이용을 한 것은 아니고 차 모델명 위주로 검색하며 여러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다 보니 그중 내게 필요한 검색 필터를 가장 많이 제공하는 DoneDeal이 메인이 된 것이다. 때문에 이하 모든 설명은 DoneDeal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검색이 곧 필터이고 필터가 곧 검색이다. 그만큼 필터를 잘 만질수록 좋은 매물을 발견할 확률이 올라가고 쇼핑 피로도는 줄어든다. 검색은 어떤 것을 우선순위로 두느냐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본인에게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한 지부터 생각을 해보고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검색을 하다 보면 눈이 높아지기 십상이라 검색을 하면 할수록 선택지가 좁아지지 않고 넓어지기만 한다면 나만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 룰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 또한 처음에는 너무도 많은 선택지에 압도되었다. 브랜드는? 차종은? 바디타입은? 연료유형은? 적당한 가격은? 필수 옵션은? 등등. 차알못인 상태에서 무작정 검색만 계속해나가다 보니 점점 늘어만 가는 질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우선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 무엇인지, 처음 차를 구매하기로 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을 되짚어 보았다.
목적
일상활동. 장보기, 시내방문 등... (반경 10-20km)
가끔씩 근교 쇼핑/나들이 (반경 20-30km)
주말 더블린 방문 (50-100km)
정말 가끔 장거리 여행 (100km 이상)
우선순위
5년 이상 몰아도 '큰 문제' 없는 차
조금의 프리미엄을 더 줘도 믿을만한 딜러에게 사는 것
내경우는 첫 차이기도 하고 중고로 구입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맥이 없기 때문에 문제차량을 구입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때문에 개인 거래보다는 딜러거래를 선호했고 이런 안정성과 신뢰도에 관련된 검색 필터가 DoneDeal에 잘 준비되어 있다.
이런 목적과 우선순위로 DoneDeal에서 내가 적용한 필터 옵션은 다음과 같다.
Donedeal이 본진이 된 가장 큰 이유이다. Annual Road Tax는 초반 검색 시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옵션이었지만 안목이 높아지면서 내가 중요한 요소들을 하나의 수치로 잘 나타내주는 것이 Annual Road Tax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세금이 어떻게 측정이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궁금하신 분들은 추가 검색을 하면 될 것이다) 내 마음에 드는 차들의 Annual Road Tax는 170-250 범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이 필터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 초기 검색 시 매물 범위를 많이 좁힐 수 있었다.
Greenlight Verified는 쉽게 말해서 '이 매물은 믿어도 괜찮을 확률이 높음'을 말해준다. 문제차량을 피하는 것이 최우선순위였던 나는 이 옵션은 항상 켜두었다. 자세한 설명은 https://www.blog.donedeal.ie/post/selling-your-car을 참고하면 된다.
NCT는 이 차가 굴러다녀도 괜찮은 차인지 검사받는 것인데 2년마다 필수로 받아야 한다. 10년 이상 된 차량은 1년마다 받아야 한다.(https://www.ncts.ie) 때문에 NCT 유효기간이 길 수록 최근에 정기점검을 받은 차량이므로 신뢰도를 높이는 지표다.
보증 역시 중요한 부분이었다. 나는 차알못이라 개인거래보다는 딜러에게 구매하는 것을 선호했다. 물론 개인이든 딜러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거래는 아무래도 첫 차를 구매하기엔 꺼려지는 옵션이었다. 딜러에게 구매를 한다면 적어도 3, 4개월은 엔진/기어/배터리 등 기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보험이 적용이 되니 조금 더 마음 놓고 구매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새 차가 아닌 이상 이 전 주인 수는 큰 의미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적어도 몇 명의 주인이 거쳐갔는지를 알면 이 차가 어떤 생을 살아왔는지 대강 짐작은 해볼 수 있다. 10년이 넘어가는 연식에 이 전 주인이 4, 5명이라면 과연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차를 구매하고 팔았을까? 나처럼 운전연습용으로 구매한 다음에 다음 차량으로 넘어갔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운전연습용으로 구매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 차량이 마음에 들었다면 계속 타지 않았을까? 그저 초보자가 타기에 쉽고 관리하기에도 만만한 차량인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차의 대표적인 예가 현대 i30, i40다. 나 역시 2-3년 타다가 바꿀 생각이었다면 이 옵션에 별로 개의치 않았겠지만 5년 이상 문제없이 타고 다닐 차량이 우선순위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눈여겨본 옵션이었다.
엔진사이즈는 직접 차를 몰기 전에는 감이 잘 오지 않는 수치이긴 하다. 그리고 어떤 엔진이라도 수요가 있고 도로 위를 굴러다니긴 한다! 하지만 이런저런 조사를 해보니 아무래도 모터웨이를 탈 일이 많을 것 같아 적어도 1.2 이상이 좋은 것 같았다. 1.0 엔진을 검색결과에서 제거하면 내가 원하지 않는 너무 작은 사이즈의 경차가 없어져서 검색이 수월했다. 반대로 작은 사이즈 경차를 원한다면 Road Tax와 함께 엔진사이즈 필터를 적극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내 경우 fuel type은 가장 나중에 결정을 한 부분이다. Fuel Type을 적용할 때는 이미 차종의 범위가 많이 좁혀져 있는 상태였다. 르노 Capture가 휘발유와 경유 모델 둘 다 있는데, 아무래도 disel은 내 용도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 patrol과 hybrid 중에서 고민을 했다. 환경을 생각하면 전기차도 매력적인 옵션이었지만 아직 아일랜드에는 충전포인트도 별로 없고 해서 다음 차를 구입할 때에야 전기차를 적극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이브리드가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듣긴 했지만 막상 구매를 하려고 보니 문제가 생겼을 때 정비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적을 것 같다는 걱정이 있었다. 그래도 주요 고민 포인트는 일반 휘발유 차량과 비교해서 하이브리드 가격이 생각만큼 높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Nissan Note 일반 패트롤 차량이 7000-8000유로대에 형성되어 있고 hybrid epower가 11000, honda fit이 9000-10000인 것을 보면 일반 패트롤 차량 가격이 높게 측정이 되어있는 게 아닌가 싶다. 5년 이상 타고 다닐 생각이었던 나는 결국 하이브리드를 선택했다.
이 정도 옵션만 적용해도 예산과 기어타입을 함께 조합하면 검색 범위를 많이 좁힐 수 있다. 필터를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다면 이제는 주행거리와 연식을 신경 써야 하는데 이 부분은 당연히 예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부분이라서 본인에 맞는 적당한 균형을 찾으면 된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마음에 드는 차종은 두세 가지로 좁혀졌을 것이고 마음에 드는 딜러샵도 눈에 들어온다. 깔끔하게 차를 올려둔 딜러샵도 눈여겨보면서 그들이 어떤 차를 주로 거래하고 있는지도 참고를 하면 시야를 조금 더 넓힐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차를 구입하는 목적과 개인의 사정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본 글의 큰 흐름만 참고하며 본인에게 맞는 차를 고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나는 결국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동기어 연수를 받은 분과 동일한 차량인 Nissan Note e-power(2017)을 선택했다. 연수를 받으며 차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200,000km 주행에도 큰 문제가 없었고 무엇보다 풀탱크(41L)에 1100km 정도 달릴 수 있다는 연비적인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다. 이 차종의 특이한 점은 100% 전기로 구동되지만 충전에는 패트롤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차알못인 나의 얕은 생각으로는 휘발유와 전기 두 가지 타입으로 구동되는 하이브리드보다는 간단한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종 후보지에는 Nissan Note e-power, Nissan Note 일반 휘발유, Honda Fit가 있었고 결국 처음 시승했던 Nissan Note e-power를 구매했으며 한 달 정도 주행해 보니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진짜로 잘 한 선택이었는지는 더 타봐야 알겠지만)
최종 결정까지는 작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엔진 사이즈가 1.2인 Nissan Note e-power와 달리 Honda Fit은 1.5라서 시승을 하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 밟으면 밟는 데로 슝슝 나가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예산도 비슷해서 Honda Fit을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주문을 마치고 배송을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자꾸만 Nissan Note e-power가 눈에 밟히는 것이 아닌가. 마음도 불안하고 느낌이 좋지 않아서 결국 막판에 선택지를 바꾸게 되었다. 어쨌든 구매를 하고 보니 이성적인 판단도 중요하지만 내 차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Honda Fit hybrid와 Nissan Note e-power 둘 중 하나를 추천한다면 Honda Fit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내가 마지막에 선택을 바꾼 것은 이성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차를 선택하고 대금을 지불하면 나머지 과정은 딜러가 알아서 해준다. Tax를 연장해야 한다면 연장해 줄 것이고 최종적으로 Logbook을 넘겨받는다. 보험이 있다면 차를 구입한 당일에 가져올 수도 있지만 나는 보험이 없었기에 배송신청을 하고 보험사를 알아보았다. 보험 역시 신청한 당일에 바로 적용이 돼서 큰 불편함은 없었다. 첫 보험료는 많이 비쌀 거라는 말을 들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는 저렴해서 다행이었다. 보험사는 AA를 선택했고 나와 여자친구 합쳐서 년 1350유로인데 내년 보험료가 어떨지는 한 번 지켜봐야겠다.
다음 편은 마지막으로 초보 운전자가 아일랜드에서 운전을 하며 느낀 부분을 적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