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0. 9:54 am 화요일의 일기
2026. 1. 20. 9:54 am 화요일
지난주 수요일, 약 1080유로를 내고 차를 수리해서 가져왔다. 엔진 누유에 이어 이번에는 퓨즈박스에 물이 차서 통째로 갈아야 했단다. 퓨즈박스는 650유로 정도 들었고 나머지는 공임비다. 그래, 모든 물건에는 시간과 돈을 들여 유지보수를 해야 하니까. 예상치 못한 큰 비용을 지출하고 올해 액땜으로 쳤다. 그러고 나서 돌아온 일요일, 취미활동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시동을 걸었더니 듣기 싫은 경고음과 함께 대시보드에 아주 많은 fault 메시지가 지나간다. 이번 주에 고치고 와서 처음 제대로 몰아본 건데. 마음이 아려왔다. 약 한 시간 반 후 도착한 AA(아일랜드의 자동차 보험회사) 기사가 30분 정도 요리조리 차를 확인하고 몇 번 짧은 거리를 돌아보고 오더니 왼쪽 앞바퀴 휠 센서가 속도 측정을 하지 못한 게 원인으로 짐작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도와줄 게 없다고 했다. 나는 집에서 약 7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사이에는 motor way도 있다. 기사는 노란 경고등이면 어느 정도 천천히 주행해도 괜찮다고 했을 텐데, 너무도 시뻘건 경고등이 떡하니 박혀있어서 자기로써는 절대로 차를 운행하면 안 된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경우 집까지 견인을 해야 하는데 내가 든 가장 저렴한 보험은 사고 지점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서비스센터까지밖에 견인이 안되기 때문에 집까지는 결국 내가 돈을 들여서 견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상 비용을 물어보니 약 350유로에서 400유로 정도. 나중에 AA에게 청구를 할 수 있지만 약 50유로 정도만 환급된다고 한다. 이를 어쩐다... 이날 따라 날씨가 어찌나 쾌청했는지 하늘은 푸르고 흩날리는 구름이 아름다웠다.
ABS시스템이 작동을 못해서 사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차 상태를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질문과 그에 따른 아주 많은 고민을 한 후, 어쨌든 차가 굴러는 가니까 직접 몰고 가기로 결심했다. 혹여나 내가 발이 묶일까 걱정이 되어서 AA기사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주었던 일행 중 한 명이 이런 나를 보고 이제 아이리시가 다 되었다고 농을 건넸다. 나도 따라 웃기는 했지만 마음이 서러웠다. 정말로, 외국에서 사는 사람들은 전부 생존자들이다. 나도 오늘 업적 하나 세우겠구나. 집에 살아서 돌아가거나, 아니면 오늘이 이 아름다운 하늘을 보는 게 마지막일지도... (코 쓱-). 일행들은 내 차가 중간에 멈추면 어쩌나 걱정을 해주었는데 막상 나는 멈추지 않는 상황이 더 걱정이었다. 중간에 멈추면 그때는 견인을 하면 되겠지만, 브레이크가 들지 않아서 멈추지 못하면 어디라도 들이박아야 할 테니까. 심각한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어쨌거나 결론은 차는 엄청난 오류 메시지와는 별개로 잘 굴러가주었고 살아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적고 있다.
자꾸 문제가 생기는 차를 이쯤 해서 처분해야 하나 하는 복잡한 생각에 ChatGPT와 아주 긴 대화를 했다. ChatGPT는 아주 훌륭한 친구다. 요즘 많은 문제를 이 친구와 논의를 하고 있다. 웬만한 전문가보다 훌륭한 결과를 내준다. 이번에도 긴 대화를 주고받으며 많은 깨달음과 성찰이 있었다. 내 고민을 깔끔하게 해결해 준 한마디는 "미래의 결정에 과거의 매몰 비용을 고려하지 말 것". 즉, 차는 이미 구입한 것이고 이미 지불한 돈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올바른 질문은 "이제까지 쓴 돈이 아까우니 여기서 손절해야 하나?"가 아니라 "이제까지 쓴 돈을 지키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야 한다. 만약 이 차가 지금 당장 공짜로 생긴 차라면, 수리를 해서라도 타고 다닐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
공짜로 생긴 차라면 당연히 수리를 하고 타고 다니겠지!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고 무거운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불분명하던 많은 문제들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정리되었다. 최근에 했던 큰 수리 덕분에 그동안 무시되고 있던 자잘한 오류가 지금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조언도 얻었다. 덕분에 차분한 마음으로 월요일에 차고에 다시 전화할 수 있었다. ChatGPT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스크립트도 짜준다.
서론이 쓸데없이 자세하고 길다. 지금까지는 내가 왜 화요일 아침 7시에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먹게 되었는지에 대한 장광설일 뿐이다. 안 적어도 될 이야기를 굳이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남긴 이유는 아마도 어딘가 이 속상함을 풀어놓고 싶어서...
그래서 본론으로 들어와 오늘, 화요일이다. 월요일에 차고에 전화하니 다시 차를 가지고 오란다. 차고는 아침 8시 30분에 문을 여는데 이 시간에는 차가 많이 막힐걸 익히 알고 있어서 훨씬 이른 시간에 나왔다. 나온 김에 오랜만에 맥도날드에서 맥모닝도 먹고, 차고에 가기 전에 간단히 장도 볼 생각이었다.
여전히 경고음과 함께 빨간 불을 내뿜는 차와 함께 10분 거리의 맥도날드로 향했다. 시동도 잘 걸리고 이렇게나 잘 달릴 수 있는데 왜 이렇게 툴툴대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녀석은 오늘 다시 차고로 들어가야 한다. 또 얼마를 내야 되려나... 상황이 이쯤 되니 속이 상한 건 맞지만 큰 타격이 되진 않았다. 드디어 내성이 생긴 것인가 감격하며 이런 짜증 나는 상황 속에서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씩씩하게 밖으로 나오길 잘한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해 정신승리 중.
주차를 하고, 늘 하던 대로 키오스크에서 기본 맥모닝 메뉴에 커피는 달달한 토피(toffee) 라테를 주문해야지... 어랏, 그런데 메뉴에 새로운 코코넛 라테가 보여서 호기심에 시켜보았다. 코코넛을 싫어해서 좀 망설였지만 나는 도전을 좋아하는 여자니까. (그래서 도전도 나를 좋아하는 건지?)
아침 공복에 음식이 들어오고, 단 커피가 피로 돌고, 아침 해가 밝아오면서 내 기분은 점점 고조되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이런 내 기분에 날씨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우습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아일랜드에 와서 맥도날드는 내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아침의 맥도날드 매장은 행복 그 자체다. 이른 시간에 매장에 앉아 떠오르는 해를 보며 먹는 맥모닝에서는 과장을 보태 주술적인 힘까지 느낄 수 있다. 마치 행복 덩어리를 섭취하는 것 같다.
만족감에 취해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아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런데 아들이 내 앞에 있는 해피밀세트 광고판으로 직행을 하더니 진열된 미니어처들을 보면서 혼잣말로 신나게 떠들어댔다. 아저씨는 괘념치 않고 여유로운 태도로 주문을 마친 후, Mike, come here, 하고 아이를 부드럽게 불러 데려갔다.
보통 때였다면 아예 관심도 두지 않았거나, 혹은 그 아이가 내게 다가와 장난이라도 치지 않을까 긴장했을 것이다. 나의 예민한 신경은 사소한 것에도 쉽게 뾰족해진다. 오늘 이 아침의 행복에 작은 파동을 일으킨 그 어린아이를 나잇값 못하고 살짝 미워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러자 만약 Mike가 내 아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Mike, come here,라고 하는 사람이 나였다면...?
그리고 내 상상력은 폭주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는 삶의 모습이 구체적인 영상으로 흘러갔다.
바쁘겠지. 내 시간도 없고. 어디 가고 싶을 때 가지도 못하고. 가기 싫은 곳에 의무적으로 가야 하고. 아이가 있으면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옵션이 될 수가 없어진다. 모든 것이 숙제처럼 느껴질 거야. 그것도 잘하는 게 당연한 숙제. 그래서 잘해도 아무도 칭찬해주지 않는 숙제. 맥도날드에서 이렇게 혼자 맥모닝을 먹으며 여유를 즐기는 건 적어도 10년간 꿈도 꿀 수 없겠지. 지금 시간에는 조금 더 자려는 아이를 깨워 아침을 해주고 학교 갈 준비를 시킨 후 꽉 막힌 교통체증을 뚫고 학교에도 데려다주어야 한다. 졸린 눈으로 차 문을 쾅 닫으며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후드를 뒤집어쓰고 멀어지는 아이가 보이는 듯하다. 가방이 제 몸보다 크지만 곧 작아지겠지... 사춘기를 지나는 인간은 또 얼마나 끔찍한가. 하지만 나는 그 아이의 우주가 되는 것과 동시에 그 아이 역시 나의 우주가 되겠지. 친구와 연인과는 다른 내가 세상에 탄생시킨 또 다른 인간. 그런 인연이 생긴 다는 건 어떨까.
나는 가족을 상상하면 언제나 골치가 아파왔다. 싸우기도 많이 싸울 것이고 서로 상처 입히는 순간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날은 맥도날드 맥모닝의 버프를 받아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발동을 해서, 그러니까 그런 수많은 고통의 시간들을 지나 쑥 커버린 아이와, 그리고 그만큼 늙어버린 내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맥도날드에 앉아 햄버거를 먹는 장면이 선명히 보이는 듯했다. 우리는 맑은 하늘과 큰 구름을 배경처럼 뒤로 한 맥도날드의 전면 유리창을 옆에 두고 느긋하게 시간을 즐기다가 나와서 Dunnes store로 쇼핑을 하러 갈 것이다…
너무도 행복해서 미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았다. 내가 아이가 있는 삶을 그리고 있다니. 맥도날드가 이제 커피에 약을 타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까지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생을 축복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축복을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랐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나는 이 노래를 아주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내게 가정을 갖고 싶다는 마음의 씨앗은 아일랜드에 와서 처음으로 움텄다. 이 씨앗을 처음 목격한 건 코로나 락다운 기간에 이곳저곳 공원이나 해안가를 다니며 행복한 가정을 보면서였고, 이 씨앗이 자라고 있다고 분명히 느낀 건 여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아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공감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 자살골을 넣으려는 미친 짓처럼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문득, 맥도날드에 앉아 맥모닝을 먹으며 행복한 기분에 취해 아이가 있는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는 나를 발견하고선 혼란스러웠다. 나는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규정한다. 사실 이렇게 성정체성을 규정한 것도 아일랜드에 온 이후이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신기한 사건이다. 나중에 자세히 적을 기회가 있겠지.) 레즈비언이지만, 한 편으로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있는 "안정적인"가정이 필요하다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생식능력이 있는 여성으로서, 내가 정말 아이를 원했다면 나의 성적취향은 저 아랫 순위로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흥분과 함께 맥도날드에 나와 간단히 장도 보고 나서 제시간에 차를 맡겼다. 차고에서도 영어 때문에 자세한 부분에서는 이해를 못 했지만,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잘 전달했다. 1000유로를 지출한 게 지난주니 이번 수리는 비용을 지불하기 전에 미리 금액을 알려달라고 했다. 리셉션이 친절하게 대응해 주어서 고마웠다. 그래서 그런지 차가 또다시 말썽을 일으킨 상황에서도 나의 행복한 기분은 가라앉기는커녕 작은 성취감으로 더욱 고조되었다.
걸어오는 길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몹시 불었다. 아니나 다를까 출근하는 차로 이미 길은 꽉 차 있었고 유모차를 끌고 비를 맞으며 가는 부모들, 우산을 쓰거나 씌워주면서 등교하는 청소년들... 등등이 보였는데 다들 얼굴에 피곤이 가득했다. 나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마음은 사랑에 처음 빠진 사람처럼 들떠있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아리송할 정도였다. 집에 돌아오니 딱 9시 정각이었다. 비에 젖은 코트를 걸어놓고 일을 시작하려고 모니터를 켜고 최근 좋아하기 시작한 레몬그라스&진저 차를 준비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마약에 취한 듯한 이 행복감은 가시지 않는다. 이 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당황스럽기도 해서 단순히 '좋다'기 보다는 명확한 언어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해보자면 - 충만함과 만족감정도 되지 않을까? 수리비 폭탄을 앞두고서,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족시키는 걸까? 진짜 커피에 마약이라도 탔나?
난생처음으로 내 아이를 가진다는 것을 상상해 봤기 때문일까?
차고에서도 겪었던 것처럼 이제는 영어로 네이티브와 대화하는 게 그렇게 두렵지 않아 져서인지도 모르겠다.
말하기도 스스로 느끼기에 그렇게 찐따 같진 않다.
아일랜드에 10년 이상 살았지만 영어가 하나도 늘지 않았던 몽골 부부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약 7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내 영어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늘었을 것이다.
달리기도 많이 늘었다. 처음에는 30초를 달리는 것도 힘겨웠는데 이제는 5km는 거뜬히 뛰고, 10km 완주를 목표로 연습하고 있다.
나는 이제 나를 믿는다. 그리고 내 손을 놓지만 않으면 된다.
오늘 날씨도 우중충하고 차도 고장 나서 다시 맡겼는데, 최대치를 찍은 행복감에 메모를 남긴다.
그저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하다.
아일랜드에서 나는 삶이 고통이 아니라 선물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혼자서도 오롯할 수 있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맥도날드에 자주 가야지.
나는 앞으로도 거주지를 정할 때 맥도날드와 헬스장이 있는 곳을 최우선으로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