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지윤

by 새벽오시

나는 분명한 것이 좋다.

좋은 것은 좋고 싫은 것은 싫다.

좋으면서 싫거나 싫으면서 좋은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 것을 생각하는 건 시간낭비다.


그런 내게 박지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성인지 가성인지 구분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목소리가 그녀의 노래보다 항상 먼저 들려왔다. 그녀를 아주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만큼 그녀의 노래 또한 아주 많이 들어왔지만 내 상관이 된 적은 없었다. 애당초 내 머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의미 없는 배경음악 그 이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도 내가 아닌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경계가 분명해지고 또 흐려졌다. 좋은 것이 싫어지기도 했고 싫은 것이 좋아지기도 했고 혹은 그 둘 다인 경우도 많았다. 분류하고 선 긋기 좋아하는 습성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이제는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그런 내가 이제야 박지윤을 알아차린 건 순리일 것이다. 감히 발견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도 머쓱한 게, 그녀는 나의 인생 대부분의 시간에 내가 아는 영역에서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 그러고 보면 이런 건 또 얼마나 많을까. 언제나 있지만 알아차리지 못해 그저 흘려보낼 뿐인 반짝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문득 아득해진다...


2026년 1월 어느 날에 박지윤의 음악이 내게 불쑥 들어왔다. 일을 하며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음악이 셔플로 재생되고 있던 중이었다. 그 틈새에 박지윤의 '환상'이 껴있었다. 너무도 익숙하고 수없이 들어왔던 곡. 누구나 다 아는 곡.

다만 이번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영상이 2024년 그녀의 콘서트에서 불려졌다는 것이다. 노래가 어찌나 좋은지 하던 일을 멈추고 영상에 집중했다. 박지윤의 '환상'은 24년이라는 시간을 지나며 너무도 멋지게 무르익었다. 그녀의 뛰어난 가창력에 화들짝 놀라서 알지 못하는 다른 곡들도 부러 찾아 듣기 시작했다. 곧 나는 이렇게 멋진 사람을 발견했다는 것에 신이 났다. ('발견'이 적합한 단어인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갓 데뷔한 신인도 아닌, 초등학생 시절부터 알아온 가수에게 이런 낯섦을 느낄 줄이야.

며칠 전 지평선 근처에서 뜨는 보름달을 본 적이 있다. 어찌나 큰지 내가 평생을 보아온 달이 아닌 것 같았다. 처음에는 너무 크고 밝아서 태양과 착각될 정도였다. 해와 달이 지평선에서 커 보이는 것은 착시라는 설이 있지만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절대 착시일 수가 없다고. 지평선에서 목격된 달은 내가 평생을 달이라고 생각하던 것과 분명 달랐다. 같은 달이었지만 다른 달이었고 그 발견에 벅차올랐다. 마찬가지다. 그날 우연히 목격된 '환상'이라는 곡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듣던 것과 같은 것이었지만, 같지 않았다. 아름다운 자연에 압도될 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전율이 흘렀다. 그녀는 그녀의 시간에 충실해 피어난 꽃이거나 그 꽃을 피워낸 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신비로운 목소리에 대한 나의 아리송함이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목소리를 집중해 듣는 지금은 과학자가 되어 해부를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심정이다. 모르기에 더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름에 막혀 뒤돌아 서지 않고 그 틈을 스르르 통과해 넘어가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런 의미에서 나이가 든다는 건. 그래서 경험이 쌓이고 생을 살아가는 게 능숙해진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작곡가 헨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녀는 박지윤의 특이한 음색과 아름다운 외형을 두고 세이렌에 비유를 했다. 역시 작곡가답게 언어의 힘을 잘 알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이로구나. 모호함이 그 자체로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세이렌이다. 나는 살아있는 세이렌을 보는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아주 멋진 사람으로 무르익는 동안 나도 같은 양의 시간을 살아내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나로서는 내 생을 전적으로 믿게 되었다. 나의 생은, 성실한 연출가처럼 특정 시절의 나에게 맞는 장소와 사람을 적시적소에 배치해두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옳다. 그런 생이 준비한 이벤트를 나는 기꺼이 놀라하며 운명이란 이름으로 반긴다. 나의 성실한 연출가는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가수 박지윤을 준비해 두고 있었고 강산이 세 번쯤 바뀌고 나서야 드디어 발현된 이 사건으로 올해의 시작도 아주 근사하다.


느긋하고 나른한 오후 두 시 아직은 춥지만 분명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2월 하고도 2일 (아일랜드는 휴일인 월요일이다). 박지윤의 10집 앨범을 틀어두고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남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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