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y에서 마무리한 2025년 & Bray에서 시작한 2026년
Bray, 브레이: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해안가 마을
2025. 12. 31. 8:00 pm
브레이의 마르텔로 호텔이다. 집에서 새해를 맞이할 수도 있었지만 기분을 내기 위해 일부러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묵기로 결심했다. 올해 결혼과 거의 동시에 이혼을 결정하며 든 지출이 많았기에 돈을 아낄까 싶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굳이 밖으로 나돌았다. 차가 고장 나지만 않았다면 Wexford나 Waterford를 가고 싶었다. 여유롭게 한 2박 3일쯤 말이다. 그런데 수리 기간이 이런저런 이유로 늘어지더니 결국 크리스마스 휴가에 걸리고 말았다. 크리스마스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크고 긴 연휴다. 그러니 Happy new year을 인사말로 쓰기에도 좀 머쓱한 느낌이 드는 1월 어느 날이나 되어야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차는 포기하고 대중교통으로도 접근이 수월한 브레이로 오기로 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기차를 타고 더블린에 가서 Dart로 갈아타면 약 2시간이면 된다. 브레이는 이 전에 몇 번 와본 곳이기도 했고 더블린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이라 심적 부담도 훨씬 적다.
여행은 만족스럽다. 8시 50분쯤 집에서 나와 9시 9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탔고, Grand Canal Dock에서 내리니 바로 브레이행 열차가 와서 갈아탔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오전 11시가 채 안되었다. 체크인이 오후 4시였기에 가방을 맡겨두고 돌아다닐 요량으로 호텔로 먼저 왔더니 벌써 방이 준비가 되었다고 했다. 아낌없는 감사인사를 전하고 바로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이동으로 조금 떨어진 체력을 충전하기 위해 30분 정도 낮잠을 자고 일어나 호텔 바로 앞에 위치한 해변가로 나갔다.
딱히 정해둔 목적지 없이 바다가 보이는 어느 카페에 들어가 요즘 푹 빠진 Elena Ferrante의 나폴리 4부작을 읽을 심산이었는데(이 책에 관해서 할 말이 너무 많다. 언젠가 이 책에 관한 글을 남기고 싶다), 멀리서 보이는 십자가를 보니 생각이 금세 바뀌었다. 브레이에는 전에 내 여자친구와, 여자친구의 동생 커플과 함께 온 적이 있다. 그때 그 커플이 30분이면 된다고 같이 가보자고 했던 곳이다. 여름날이어서 나도 내 여자친구도 이미 너무 귀찮고 더웠던지라 우리는 그저 해변에 앉아 바다와 갈매기와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느긋하게 그들을 기다렸던 생각이 났다.
브레이 십자가는 브레이에 온 사람이라면 못 찾는 것이 불가능한 심볼이다. 내게 딱히 종교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검색을 해보니 공식적인 이름이 Bray Head Cross였다. 동생 커플이 했던 말대로 구글맵에 도보로 35분이 떴다. 보기에 굉장히 멀리 있는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왜, 보통 가까이 있어 보이는 건물이라도 걸어가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경우도 있지 않던가. 그런데 어차피 나는 오늘 혼자고, 딱히 할 일도 없고, 구글맵에 35분이라고 뜨니 넉넉히 잡아도 왕복 1시간 30분이면 갔다 와서 점심 먹기에 딱 좋은 타이밍인 것 같아 별 망설임 없이 무작정 출발했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산을 타며 알게 된 사실은, 구글맵에 35분이라고 뜬 이유는 실제로 거리가 짧았기 때문이고 짧은 경로만큼 경사가 높았다는 것이다. 올라간 지 얼마 안돼 더워져서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내 앞으로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도 내려오고 있고, 아이를 목마 태운 아버지도 내려오고 있고, 훨씬 어린아이들도 씩씩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어려운 등반이라고 생각하며 오르고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그들을 보니 되려 용기가 났다. 심지어 그 경사와 돌멩이 투성이 길을 달려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나중에 내려오는 길에 올라오는 사람을 본 거라 과연 하산을 할 때에도 뛰어서 내려왔는지 궁금하다. 만약 그랬다면 그 사람은 '세상의 이런 일이'에 나와야 할 것 같다.
코스는 험난했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2025년 마지막날 브레이 십자가를 만져보겠다는 내 가벼운 결정에 막 후회가 되려는 참에 도착했다. 그리고 위에서 본 브레이의 풍경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올라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브레이 앞쪽은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의 바다였을텐데 이 바다를 보며 요즘 듣고 있는 [The Buddy DeFranco Quartet - Laura]를 들으며 마음을 정리했다. 처음 목적했던 대로 십자가에 손을 대고 주기도문도 외웠다. 사진 찍는 걸 싫어하지만 어쨌든 이것도 기념이니 셀카를 찍어봤는데 생각보다 예쁘게 나와서 만족한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오는 길 보다 훨씬 조심스러웠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미끄러져서 엉덩방아를 찧어 꼬리뼈에 금이 가는 상황이라도 생기면 끔찍했다. 예전 내가 좋아했던 교수님이 그렇게 다치셔서 아주 고생 중이라고 하던 게 이 상황에 떠올랐다. 아주 작은 부상-발목이라도 삐끗하거나 무릎을 찧는 정도로도 오늘 다치면 아주 곤란하다. 지금 문을 연 병원은커녕 약국도 없을뿐더러, 당장 몰고 갈 차도 없는데 누가 나를 보호해 준단 말인가. 그러니 온 신경을 집중해 나 스스로를 미리 보호하며 온 신경을 집중해 살금살금 내려왔다.
혼자 여행은 너무 아름답다. 원하는 때 원하는 곳으로 훌쩍 가면 된다. 누군가의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고, 내가 원하지 않는 액티비티를 할 필요도 없고, 하기 싫다고 거절을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단점은 혼자이기 때문에 두 배 세배는 조심을 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장단점이 있는 거니까.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 누군가와도 오지 않아서 정말 잘했다고 열 번은 넘게 생각했다. 삼삼오오 사랑하는 사람과 혹은 가족과 혹은 어찌 되었든 누군가와 같이 와 연말연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한편으로 나는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특히 마르텔로 호텔에서 점심을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피시 앤 칩스를 주문하고 먹는데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런데 하나도 민망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너무나 편했다. 1년 전만 해도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섬처럼 동동 떠있는 내 모습에 조금은 민망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은데. 이제는 혼자서 핸드폰도 보지 않고 오롯이 음식에 집중하며 맛을 즐길 줄 아는 내가 대견스러웠다. 직원들이 나를 상냥하게 대해주어(그들은 그냥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5유로를 팁으로 더 얹어주었다. 캐셔가 밝게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오늘도 곳곳에서 열심히 세상을 굴리고 있을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피시앤칩스처럼 기름진 음식이 가끔 당기긴 하지만 먹자마자 곧 느끼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남기기 싫어서 다 먹긴 했는데 먹고 나니 디저트로 커피가 생각났다. 그것도 이탈리아에서나 먹을 수 있을 법한 아주아주 맛있는 커피로. 그래서 구글맵에 검색을 했더니 진짜로 이탈리아 커피를 파는 곳이 있어서 11분 정도 걸어서 갔다. 매점 위치가 브레이 중심 같았는데 의외로 별게 없었다. 해변가에 집중된 관광지를 제외하면 조용하고 심심한 동네일 것 같았다. 막상 커피가게에 도착하니 구글맵에는 영업 중이라고 나와있었지만 셔터는 내려져 있었다. 맞은편에 테스코가 있길래 내일 먹을 요거트만 사서 돌아왔다. 그래도 따뜻한 커피가 아쉬워서 돌아오는 길에 브레이 역에 인썸니아(Insomnia)가 있던 것을 생각해 내고 괜히 헤매지 말고 그리로 직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썸니아는 아일랜드의 브랜드 커피숍인데 나는 왠지 이 브랜드에는 마음이 잘 가지 않았다. 근처에 스타벅스가 없으면 대신 가는 곳 정도랄까. 그런데 이곳 역사에서 주문한 진저라테가 너무 맛있어서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기대 이상으로 커피가 맛있었는 데다 잘생긴 바리스타 청년이 진저쿠키를 하나 덤으로 얹어줘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때가 오후 4시였고 해가 막 지려고 하는 때였다. 해변에 서서 바다를 보면서 매일 외치는 긍정확언을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외쳐보았다. 파도 소리가 좋아서 15분 정도 바닷소리를 녹화로 담기도 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아직 5시가 안 되어서 걸으면서 바닷가의 예쁜 돌멩이들도 주웠다. 내 긍정확언 개수에 맞는 7개 돌멩이를 골랐다. 해변을 걸으며 이 추위에 이 시간에 옷을 훌쩍 벗고 바다로 뛰어들어 5분~10분 정도 수영을 하다 돌아오는 사람을 한 두 명 봤다. 수영복을 입고 뛰어드는 여자도 봤다. 나는 바닷물은 만지는 것도 싫었지만 그들을 보고 약간 고무되어 신발을 벗고 발을 적셔보았다. 역시 차가웠다. 발을 적신김에 맨발로 해변을 걸어보려고 했는데 이곳은 모래가 아니라 돌밭이라 걷기에 투박하고 무엇보다도 발이 너무 시려서 곧 다시 신발을 신었다. 그러고도 오늘 십자가를 보러 향했던 곳으로 해변 끝까지 천천히 걸으며 밀리의 서재로 책을 들었다. 평화롭고 완벽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5시 반쯤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으며 집에서 챙겨 온 고구마와 계란과 약간의 과일을 먹었다. 늦은 점심으로 먹은 피시 앤 칩스가 무거운 음식이라 배가 고프진 않았는데 지금 조금 먹어둬야 오늘 밤에 배고파서 시달리지 않을 것 같았다.
7시쯤엔 샤워를 하고 나왔다. 비록 욕조는 없지만 뜨거운 물이 잘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욕조가 있으면 반신욕 하려고 배쓰밤도 가져왔는데… 좀 아쉽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종종 혼자 여행을 다닐 기회가 올해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욕조가 있는 곳에서 하면 되지 뭐. 물이 뜨거워서 아직도 몸이 따뜻하다.
그리고 지금 8시 45분을 지나고 있다. 방이 내게 딱이다. 작지만 스탠드가 있는 책상이 있어서 이게 제일 마음에 든다. 덕분에 이렇게 아이패드에 블루투스 키보드로 아주 긴 일기도 적고 있다. 블루투스 키보드는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것이라 충전이 잘 될까 작동은 잘 될까 걱정이 되었는데 아주 쌩쌩하다.
오늘은 10시나 11시쯤 잠이 들 것 같다. 내일은 한 6-7시쯤 깨어 책을 읽고 마찬가지로 집에서 싸 온 음식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일출 시간에 맞춰 달리러 나갈 것이다. 내일 일출시간은 8시 38분이니까 8시 20분쯤 나가면 좋을 것 같다. 그러고 9시쯤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마지막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배를 약간 채우고 체크아웃을 하면 11시쯤 될 것 같다. 집에 돌아가면 3시나 4시쯤 될 거고 그러면 밥을 먹고 또 아마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지 않을까.
2026. 1. 1. 5:48 pm
어제 마르텔로 호텔에서 일기를 적고 9시쯤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 위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심상치 않은 바이브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그렇다. 근처에 나이트클럽이 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호텔 안내 문구에 나이트클럽이 있어서 새벽 3시까지 시끄러울 거라고 경고가 있긴 했다. 나는 그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울림의 정도가 심상치 않았다. 귀를 막아야 하는 소음을 10점 만점으로 치면 방 안에서 느껴지는 소음과 진동은 거의 8-9점 정도였다. 내 방에서 당장 파티를 해도 될 것 같았다.
정말 다행히도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에어팟이 있어서 소음은 어느 정도 견딜만했는데 클럽음악의 진동이 꽤 심했다. 적어도 120~130비트 이상의 빠른 진동이 침대 아래서 올라오니까 에어팟을 끼고도 마음을 진정하고 잠을 자기가 힘들었다. 심란한 마음에 뒤척이는데 밖에서 새해를 알리는 폭죽 소리가 시작되고 나서도 꽤 오래 들렸다. 잠도 못 자게 된 마당에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지금은 나가봤자 술에 취한 사람들을 잔뜩 보게 될 거라는 생각에 그저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나이트클럽 음악이 들린다고 바깥이 전부 나이트클럽이 된 건 아닐 텐데 내 방이 나이트클럽이 되자 온 세상이 나이트클럽이 된 것 같았다. 밖에서는 벌써부터 누가 토하는 소리도 들렸다. 딱히 폭죽을 못 봐서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지금 생각하니 진짜 밖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밖에 나가보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클럽 음악 때문만이 아니라도 졸린 기운이 하나도 없고 잠이 오지 않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연도가 바뀐다는 생각에 조금 설레서 그런 것 같다. 읽고 있는 책 4부작 중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도 너무 재밌어서 노이즈캔슬링을 활성화하고 책을 오디오로 계속 들었다. 그래도 새벽 두 시가 지나자 피곤이 몰려오고 내일 컨디션도 걱정돼서 자려고 노력했다. 밤이 깊었지만 들려오는 소음과 진동은 여전했다. 결국 뒤척거리다 선잠이 든 건지 새벽 세시 삼십 분쯤 정신을 차리고 이어폰을 빼보니 그제야 사위가 고요해져 있었다.
오늘 아침 일출이 8시 40분이기 때문에 적어도 7시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하려고 알람을 맞추고 어렴풋이 잠에 들었는데 평소 새벽 기상을 해왔던지라 습관이 된 건지 알람보다 이르게 6시에 눈이 떠졌다.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에 미적거리다 결국 6시 30분쯤 일어났다.
지난밤 잠을 설쳤지만 그래도 침대 위에서 눈을 감고 책을 들은 게 몸을 쉬게는 한 건지 컨디션이 최악은 아니었다. 일어나서 간단히 씻고, 책도 읽고, 긍정확언도 하고 이것저것 한 다음에 8시 20분에 딱 맞춰 방을 나섰다.
어제 Head Corss를 찾아 산을 막 오르기 시작했을 무렵 두 갈래 갈림길이 있었다. Head Cross는 오른쪽 방향이었으니 이번에는 왼쪽을 길을 선택해 무작정 뛰었다. 그 길은 무난한 평지로 된 산길이었다. 해가 산 반대쪽에서 떠오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어쨌든 이 길로 계속 달리면 산의 경계를 타고 돌아 결국 해가 뜨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중간에 커다란 문으로 막아두어서 다시 돌아와야 했다. 막혀있는 곳까지 호텔에서 달려서 10분밖에 걸리지 않았기에 아직도 일출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해 뜨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려 다시 해변으로 내려왔는데 결국 구름에 가려 해는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해변에 나와있었다. 바다수영을 하는 단체모임도 있었다. 다들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구름에 해가 가리긴 했지만 그래도 햇볕이 비치고 곧 몹시 밝아졌다. 춥지만 쾌청한 새해 하루의 시작이었다.
나는 해변을 따라 중간에 멈춰 서서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며 총 4.5km를 걷고 달렸다. 브레이 해변은 그리 길지 않아서 왕복했다. 마음은 더 뛰고 싶었지만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조금 달렸는데도 힘에 부쳤다. 방으로 돌아오니 9시 30분 정도였던 것 같다. 샤워를 하고 마지막으로 가져온 음식을 마저 챙겨 먹고 방정리를 하고 10시 40분쯤 나섰다. 호텔방을 나서며 새해인사를 남긴 메모와 함께 5유로를 팁으로 뒀다.
돌아올 때는 올 때 와는 달리 한 번만 환승하면 되는 경로가 없어서 Conolly로 간 다음 Heuston 기차역으로 가야 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머리에 구름이 낀 것처럼 흐리멍덩했다. 기차 안에서 책을 듣다가 눈을 감았는데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떴는데 순간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게 아닌가 헷갈려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후 나머지 역은 서서 왔다. 이번에 눈을 감으면 깊이 잠들어서 정말로 내릴 역을 놓칠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얼마 되지 않는 짐 정리를 후딱 해치우고 간단히 끼니를 챙겼다. 역시 집이 편하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나는 집이 참 중요한 사람인 것 같다. 아니, 꼭 이 장소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저 나만의 공간. 세상과 분리될 수 있는 안전한 곳이면 된다. 어제 마르텔로 호텔에 침대에 누워서도 마치 거기서 오래 지내왔던 것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오롯이 나에게만 주어진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어제오늘은 내가 스스로에게 준 휴가니까 책을 마음껏 읽었다. 그리고 지금이다.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오후 벌써 6시 40분이다. 이제 크리스마스부터 시작된 연휴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고, 2026년이 시작된다.
예년답지 않게 2026년은 설레는 구석이 있다.
내일은 드디어 긴 휴가를 마치고 일로 복귀하는 날이다.(24일부터 오늘까지 총 9일을 내리 쉬었다) 금요일이기 때문에 모두 휴가를 내서 토요일, 일요일까지 쭉 쉰다고 했으니 팀에서 나만 일을 한다. 하지만 누가 강요한게 아니라 나는 이 편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이 시간을 이용해서 다음 주 월요일, 본격적인 2026년을 위한 일을 하기 전에 메일과 메신저를 확인하고 이것저것 정리를 해둘 것이다.
올해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개인 서비스도 느리지만 꾸준히 개발하고,
직업 관련한 강좌도 틈틈이 보고,
책도 읽고,
장구도 치고,
운동도 하고,
가끔 여행도 가고,
오늘은 평화롭고 고요한 내 침대 위에서 책을 읽다가 자야지. 지난밤에 잠을 못 자서 너무 졸리다. 다음엔 꼭 호텔 주의사항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오늘은 무슨 꿈을 꾸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