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에 대한 짧은 고찰

2024년 11월 29일

by 양동생

오늘은 별다르게 할 말이 없는 날이다. 그저 평범하고, 너무나도 평범해서 아무런 특징도 없는 하루. 창밖을 내다보면 겨울 햇살이 너무 조용히 떨어지고, 세상은 그저 그대로 흘러간다. 딱히 기쁜 일도 없고, 슬픈 일도 없다. 그런 날엔 묘하게도 삶의 가장 사소한 루틴이 더 크게 다가오곤 한다. 이를테면 면도 같은 것.


나는 매일 아침 면도를 한다.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출근하기 위해서다. 사실 면도를 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없다. 누가 내 얼굴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일을 나가기 위해 면도를 한다.


면도라는 건 묘한 행위다. 아주 일상적인 동작이면서도, 어딘가 의식적인 행동에 가깝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서서 면도기를 든다. 차가운 물 대신 따뜻한 물로 얼굴을 적시는 순간, 얼굴 근육이 조금은 이완된다. 그러고 나면 면도 크림을 바르고, 조용히 면도날을 피부에 대기 시작한다.


면도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모든 집중이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향한다는 것이다. 다른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오직 얼굴에 집중하게 된다. 턱선의 각도, 뺨의 곡선, 인중의 미세한 굴곡. 매일 같은 얼굴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주 낯선 풍경처럼 느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말했다. “남자는 매일 면도를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마주한다.” 무슨 대단한 철학이 담긴 말이라기보다는, 그냥 사실적인 진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이 주는 묘한 울림이 있다.


면도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건, 아주 작고 사소한 통제감이다. 인생은 대부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면도라는 행위만큼은 확실하다. 하루의 시작을 조금은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뭔가를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강한 안정감을 준다.


반대로, 면도를 하지 않은 날은 조금 어딘가 느슨해진 느낌이 든다. 그런 날엔 시간도 괜히 늘어지고, 하루가 어수선하게 흘러간다. 마치 하루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처럼.


사실 면도라는 건 크게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소한 행위가 삶의 리듬을 잡아주는 일종의 메트로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단순히 턱수염을 깎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듬고 다시 세우는 시간.


그렇다고 해서 면도를 하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거나, 심오한 깨달음을 얻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그냥 면도를 하고, 하루를 시작할 뿐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만큼은 어쩐지 나 자신과 가장 솔직하게 마주하는 시간이다.


오늘도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없었고, 누나에게 자랑할 만한 사건도 없었다. 하지만 아침의 면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거울 앞에서 나는 조용히 면도기를 들었고,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의식을 반복했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별일 없는 하루, 그 속에서 여전히 면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겠지. 대단할 것 없는 그 시간 속에서, 어쩌면 삶이라는 건 아주 작고 단순한 반복 속에서 조용히 흘러가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것이 겨울로 향하는 11월의 마지막 금요일, 별다를 것 없는 하루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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