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오지 않은 이유

2024년 11월 28일

by 양동생

그날 나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 "태국 사진 좀 보여줄 수 있어요?"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아무 의도도, 계산도 없는 질문이었다. 그냥, 누나와 잠깐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사진은 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무심코 던진 말이었는데, 돌아온 건 텅 빈 침묵뿐이었다. 어쩌면 바빴던 걸까. 아니면 그저 귀찮았던 걸지도 모른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다른 사람이 같은 질문을 했다. 내 친구였다. 별 기대 없이 던진 말. 그런데 이번엔 아무렇지 않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진이 도착했다. 가볍고 빠르게.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리고 그다음, 내게도 사진이 왔다. 마치 이제야 기억이 났다는 듯, 아니면 너도 필요하면 가져라는 식으로. 이상하게 그 순간, 사진이 아니라 그 순서가 마음을 때렸다. 왜 내 요청은 스쳐갔는데, 친구의 말에는 그렇게 쉽게 반응했을까?


문득 생각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건방지게 들렸던 걸까? 아니면, 그냥 나라는 사람이 누나에게 그 정도의 의미도 없는 존재인 걸까?


가장 단순한 결론이 때로는 가장 불편하다. 누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들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유를 찾는다. 나에게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불편한 태도를 보였던 걸까? 질문이 어색했나? 이 모든 건 그저 자기 위안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원래 그런 식으로 마음의 균형을 맞춘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걸 인지 부조화라고 한다. 불편한 현실과 마주했을 때, 그 틈을 채우기 위해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낸다. 아마 나는 누나의 무심함 속에서 이유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해석조차 피로하다. 어쩌면, 그저 그 사람과 나는 맞지 않았던 것뿐이다. 관계에는 이유 없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아무리 가까워지려 해도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다.


그럴 때 사람은 스스로 물러서게 된다.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져서, 애초에 다가가는 걸 주저하게 된다. 이런 심리적 패턴은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심리학자 존 볼비는 이런 걸 회피형 애착이라고 불렀다. 거절이 두려워서 스스로 벽을 쌓는 것. 가까워지면 다칠까 봐, 차라리 멀리 서 있는 선택.


내가 지금 누나와의 거리에서 느끼는 이 불편함도 어쩌면 그런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쌓아 올린 벽이 너무 단단해서, 이제는 어떻게 넘어야 할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자꾸만 의미를 찾고 있다. 누나는 왜 사진을 바로 보내주지 않았을까? 나와 친구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나는 그냥, 그 순간 친구가 더 가깝게 느껴졌을 뿐일 수도 있다. 그저 우연, 아무 의미 없는 선택. 우리는 종종 그 우연 속에서 너무 큰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게 인간이니까.


그럼에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관계에서 가장 힘든 건,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느껴질 때의 괴리다.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단순한 바람.


그런데 때때로 그 기대는 스스로를 더 멀게 만든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거절은 더 깊이 박힌다.

사진이 오지 않았던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내 안에서 많은 것들을 만들어냈다. 누나의 무심한 태도, 나의 불안, 관계 속의 균열. 어쩌면 이 모든 건 너무 과장된 해석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것.


사진은 결국 도착했다. 너무 늦었지만, 어쨌든 도착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미 너무 많은 감정이 흘러갔다.


어쩌면 내가 진짜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사진이 아니라 그 공백 속에서 드러난 내 위치였다.


그게 관계의 가장 솔직한 순간이니까.


누나는 아마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


문제는, 그 사실 앞에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어쩌면 괜찮다. 모든 답이 꼭 필요하지는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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