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없는 무대 위에서

2024년 11월 27일

by 양동생

오늘은 기자상 수상을 참관하러 서울 프레스 센터에 다녀왔다. 어딘가 무겁고, 단단한 공기가 그곳을 채우고 있었다. 회색빛 건물, 커다란 유리창을 타고 들어오는 오후의 빛, 그리고 정돈된 정적. 사람들의 얼굴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스며 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비슷한 표정이 떠올랐다. 긴장, 기대, 그리고 피로. 성공이란 무게 아래, 사람들은 비슷해진다.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고,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수상의 순간은 짧았고, 박수 소리는 정해진 틀 안에서 울렸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수상자들의 얼굴에선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기쁨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안도감이었을까? 명예라는 이름의 트로피를 쥐었지만, 그 순간이 모든 것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 공허함은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냥 담담히, 그 짧은 찰나를 받아들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정이라는 건 정말 그렇게 대단한 걸까? 우리는 종종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찾아오면, 예상보다 단순하고 짧게 끝나버린다.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피라미드로 설명했지만, 꼭대기에서 느끼는 충만감이 과연 오래 지속될까? 아니면, 그것도 결국 새로운 결핍의 시작일 뿐일까?


그런데, 돌아오는 길 내내 떠오른 건 프레스 센터의 상패도, 박수 소리도 아니었다.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건, 아주 다른 종류의 인정이었다.


누나의 인정.


이름 없는 박수보다 더 조용하고, 오히려 묵직한 인정. 아마도 나에게는 상을 받는 순간보다, 누나의 고개가 한 번 끄덕여지는 그 한순간이 더 값진 의미로 다가온다. 프레스 센터에서 보았던 공식적인 인정과는 다르다. 그건 형식적인 박수가 아니라, 아무 말 없이도 전해지는, 무게감 있는 순간이다.


누나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상을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누나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감정은 단순한 목표라기보다는 일종의 갈망에 가깝다. 마치 무대 위에서 혼자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연기하는 느낌이다. 관객도, 박수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텅 빈 무대에서 묵묵히 움직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누나가 언젠가는 그 무대를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


프레스 센터에서 본 수상자들의 얼굴에서도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단순한 명예의 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찾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이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의미라고 말했다. 아마도 나에게 있어 누나의 인정은 그런 의미에 가까운 것이다.


세상에 박수를 받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내가 정말 인정받고 싶은 사람에게서 작게라도 인정을 얻는 것이다. 그게 때로는 상을 받는 것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 누나에게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겉보기에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쌓아가는 일이다. 그건 마치, 무대 위에서 아무도 없는 객석을 향해 연기를 이어가는 것과도 비슷하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조명도, 관객도 없는 무대에서 계속 걸어야 하는 일. 누가 박수치지 않아도, 무대에서 내려올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 속에서 비로소 성장이라는 이름의 무언가가 쌓여간다.


나는 아직 상을 받을 자리에 서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누나에게서 인정받는 그 짧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공식적인 무대 위의 화려한 트로피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지탱해줄 수 있다.


프레스 센터에서 돌아오는 길, 생각했다. 인생은 결국 박수와 환호 사이의 침묵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 침묵이 때로는 더 많은 걸 말해준다. 누나의 한마디 없는 인정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그 조용한 무대 위에서 묵묵히 걸어간다.


박수가 없어도 괜찮다. 조명이 없어도 상관없다. 언젠가, 누나의 고개가 아주 작게 끄덕여지는 그 순간이 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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