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함은 그렇게 오는 것

2024년 12월 6일

by 양동생

어제, 누나는 아팠다.


그 사실이 내게 남긴 건, 예상보다 작고 조용한 무게였다. 아픔이라는 건 대개 그렇게 온다. 갑자기, 아무런 징조도 없이. 큰 소리도, 드라마틱한 장면도 없다. 그냥 한순간, 아무렇지 않은 표정 뒤에 스며든다.


그런데도 어제의 동기 1주년 모임에서 누나는 모든 사람에게 2만 원짜리 커피 쿠폰을 선물했다. 말 그대로 모두에게. 그리 특별한 자리도 아니었고, 누나의 몸 상태가 완전히 돌아온 것도 당연히 아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잠시 멈칫했다. 이렇게 따뜻하고 상냥할 수 있구나—그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사람은 아플 때 보통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내 안의 고통에 갇히는 것은, 말 그대로 생존 본능 같은 것이다.


그런데 누나는 그 고통의 문을 스스로 열었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는데, 그저 조용히, 아무 일 없는 듯이 커피 쿠폰을 건넸다.


“그동안 수고했어. 후배 멋져”


그 말 한마디에 너무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누나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필요한 만큼만, 딱 그 정도의 말만 하는 사람. 특별히 드러내지 않고, 늘 차분한 톤으로 말을 마친다.


그래서일까. 그 작은 선물이 가진 온기는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아팠던 사람이 건네는 따뜻함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거창한 위로나 과장된 친절이 아니라, 정말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배려.


생각해 보면, 아픔은 사람을 조금씩 다듬는다. 어딘가를 날카롭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어떤 부분은 이상할 만큼 부드럽게 깎인다.


누나는 아픔을 겪었고, 그렇게 커피 쿠폰을 건넸다. 그건 단순히 “수고했어”라는 말을 넘어서, 자신이 가진 작은 온기를 나누는 행위였다.


그 상냥함은 단순히 친절한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아팠기 때문에,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문득 하루키의 소설에서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


삶은 늘 예기치 않은 순간에 작은 균열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우리는 가끔 이상하리만치 따뜻한 것들과 마주친다.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종이 한 장, 혹은 그냥 조용히 건네는 커피 쿠폰 하나.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온기가 담겨 있다.


어제 모임이 끝난 뒤,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픈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견뎌야 한다. 하지만 진짜 이상한 건, 그런 사람들 중 일부는 그 고통을 지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따뜻함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이다.


누나는 오늘 그렇게 했다. 커피 쿠폰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그 상냥함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제스처도, 무거운 감정도 없다. 그냥 그렇게—가벼운 손짓으로 건네는 것이다. 오래된 LP의 작은 잡음처럼, 거기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는 오늘 그걸 보면서 조금 멈췄다.


이런 사람이 있구나.


아팠던 사람이 주는 상냥함은 가볍지 않다. 그것은 고통의 끝에서 비로소 만들어지는, 어쩌면 가장 깊은 인간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누나는 그런 상냥함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았다. 그게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걸, 아마 본인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걸 오래 기억할 것 같다.

keyword
이전 29화좋아하는 사람이 아플 때, 덕질러가 할 수 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