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3. 희망찬 앞날이나 행운을 비유 적으로 이르는 말
작년 연말 둘째 오빠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한 해가 일주일 남았고 오빠가 두 번째 정년퇴직을 한 날이었다.
오빠는 2년 전에 대전으로 터전을 옮겼다.
회사가 양주에 있어서 일주일에 이삼일은 일산에 있는 우리 집에서 출퇴근했다.
오빠가 집으로 퇴근할 때면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장을 봤다.
그날은 퇴직 파티 겸 송년회를 할 양으로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특별한 음식을 포장해 오라고 주문했다.
오빠는 고기? 회? 물었다.
당연히 회지.
알았어, 고기도 사 갈게.
오빠는 다 계획이 있었다.
자기 집에서 레드 와인을 챙겨 온 걸 보면 소고기를 구울 셈이었다.
오빠는 못내 아쉬워하며 회를 먹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화이트 와인을 가져오는 건데.
나는 상관없었다.
맛있기만 했다.
쫄깃한 생선 살에 점을 찍듯이 고추냉이를 조금 올려서 먹었다.
너 참 희한하게 먹는다.
오빠 말에 의하면 정석은 간장을 찍어 먹는 거란다.
알았어.
넌 핫도그에 케첩도 안 뿌려 먹지?
뭐래.
케첩은 국룰이지.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핫도그 집이 어딘지 알아?
명랑? 청춘?
아니지.
신림11동 오르막길 초입에 있는 핫도그 집이야.
그 핫도그를 먹었던 시간은 내가 치매에 걸려도 기억할 시간이야.
말해 줄까?
오빠는 갑자기 아련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거기 생각도 하기 싫어.
일부러 안 갔어.
그 동네가 싫어서.
오빠가 변명하듯 말해서 나는 위로하듯 말했다.
근데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
거기서 마음이 편했어.
엄마도 그랬어.
일을 하면 또박또박 돈이 생겨 걱정이 없었다고.
문득 오빠가 선풍기를 들고 방에 들어서던 장면이 떠올랐다.
놓을 자리를 찾아 헤매던 눈길도.
1981년 봄 영원히 녹지 않을 듯해 보이던 수돗가의 얼음 둔덕이 흘러내렸다.
이삿짐을 실은 용달차는 먼저 떠났고 나와 엄마는 버스를 타고 새집으로 출발했다.
다음 날이 중학교 입학식이었다.
두 달 동안 앓았던 눈병은 나았으나 운동화가 북어 대가리 같았다.
엄마가 부뚜막에 올려놓고 말리는 바람에 찰고무가 휘었고 솥뚜껑 날개에 닿게 내버려둔 부분이 탔다.
한쪽 운동화 등에 벌어진 아가미 같은 무늬가 생겼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찍은 사진 속 나는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하고 깨끗한 운동화를 신었다.
아슬아슬하게 중학교 입학 준비를 마쳤다.
엄마 친구 딸이 쓰던 감색 책가방.
아주머니가 가방에 넣어준 캠퍼스 노트 10권과 검빨파 모나미 볼펜 세 자루.
교복은 구하기가 힘들어서 티브이를 팔아 새 교복을 샀다.
코트는 겨울에 장만하기로 했다.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는 엄마도 청소일을 시작했으므로 중학생이 된 나도 꽃샘추위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식구는 둘째 오빠가 입주 가정교사를 해서 번 돈으로 간신히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도망쳤어.
우리는 엄마보고 자기밖에 모른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아버지가 훨씬 이기적이야.
어쨌든 엄마는 우리를 지켰잖아.
평소에 늘 아버지 편을 들던 오빠가 웬일로 엄마 편을 들었다.
셋째 오빠가 짐을 부리는 동안 엄마와 나는 버스에서 내려 허름한 가게들이 늘어선 비탈진 길을 올라갔다.
길이 끝나 갈 무렵 샛길로 들어섰다.
좁은 계단이 이어지다가 오른쪽에 집이 있었다.
아귀가 맞지 않는 나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셋째 오빠는 벌써 짐을 다 정리하고 마당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한가운데에 펌프가 있는 마당.
사촌 오빠의 자취방에서 지내기로 한 오빠는 자신의 짐도 정리해야 했기에 서둘러 출발했다.
오빠가 나를 향해 뭔가 말해서 대답 대신 강인한 눈빛을 보냈다.
반닫이를 두고 엄마와 내가 나란히 누우면 꽉 찼던 좁은 방이었다.
비스듬한 천장은 내가 점프하면 닿을 만큼 낮았다.
엄마는 새벽 네 시에 일을 나가 오후 네 시에 퇴근했다.
나는 학교에 갔다 오면 할 일이 없어 공부를 취미 삼아 하다가 다섯 시 반이 되면 엄마를 마중하러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엄마가 버스에서 내리면 나는 달려가 엄마 팔짱을 꼈다.
엄마는 비탈길을 오르기 전에 핫도그를 사 주었다.
아주머니가 케첩을 너무 많이 치려고 하면 나는 손으로 막는 시늉을 했다.
아, 그만. 튀김 맛이 안 나요.
한 손은 엄마 팔에 걸고 한 손은 핫도그를 들고 걸었다.
분홍빛 새끼손가락만 한 소시지가 나올 즈음이면 샛길이 나왔다.
소시지를 씹으며 계단을 오르고 집 앞에 오면 대문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막대기를 버렸다.
이듬해 봄 그 집을 떠날 때까지 엄마가 일을 나가는 날이면 핫도그를 먹었다.
신림11동에는 비탈길, 비탈길에는 핫도그.
핫도그 먹느라 비탈길 오르며 힘든 줄 몰랐다.
전에 엄마는 팔짱을 끼면 불편하다며 매몰차게 내 팔을 빼곤 했다.
다시, 신림11동에는 비탈길, 비탈길에서는 엄마와 팔짱 끼기.
아마도 그곳에서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을 처음 적었던 듯하다.
여름이 왔고 옷도 마음도 헐렁해졌다.
엄마가 주인집 냉장고에 토마토를 넣어 둘 만큼 편해졌다.
공장에 다니던 그 집 언니는 남자 친구의 스쿠터에 가끔 나를 태워 주기도 했다.
옆방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애한테 화투 치는 법을 배웠다.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졌다.
어느 날 밤 자다가 눈을 떴다.
방문에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옆에 누워있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도 같이 깬 듯했다.
한 손에 칼을 쥔 그림자는 바로 문을 열지 않았다.
밖의 그림자가 망설이는 기색이 느껴졌다.
엄마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옆으로 확 밀어 열었다.
누구얏.
난생처음 듣는 엄마의 기합 소리.
검은 그림자가 후다닥 부엌문을 젖히고 튀어 나갔다.
엄마가 일어나 앉은 나를 껴안았다.
나는 소리를 참으며 울었다.
엄마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날 새벽에 엄마는 일을 나가지 않았다.
아침에 주인집 할머니가 부엌칼이 없어졌다면서 방방이 묻고 다녔다.
누가 남의 부엌에서 칼을 훔쳐 간다고.
엄마는 할머니 얼굴을 쳐다보며 얌전한 당신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이 새끼가 술만 처먹으면.
할머니는 이가 빠져 오므라진 입으로 아들을 욕하며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오빠가 일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돌아왔다.
오빠와 나는 잠시 각자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두었다.
엄마 방에서 흥겨운 트로트 리듬이 낮게 흘러나왔다.
오빠와 나는 마주 보고 피식 웃었다.
마치 농담이라도 주고받은 것처럼.
둘째 오빠는 내 핫도그 이야기를 듣고 다음에 야채튀김을 해주겠다고 했다.
오빠는 고구마 두 개, 당근 하나, 깻잎 몇 장, 양파 하나를 손질해 보냉가방에 담아 올 것이다.
전화를 걸어 튀김가루가 집에 있는지 묻겠지.
있는데 왜?
없으면 전에 쓰고 남은 거 가져가려고.
새것 있으니까 갖고 오지 마.
알았어, 갖고 갈게.
그리고…….
아마도 훗날 우리는 야채튀김 이야기를 나누겠지.
봄: 3. 희망찬 앞날이나 행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