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는 절대 못놓지
행주산성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카페는 차로를 달리다가 좌측 사잇길로 들어가 울퉁불퉁 올라가서 우회전한 뒤 아슬아슬 내려와 만나는, 숲속 에 안겨 있다.
가는 동안 좁은 갈림길이 여럿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나처럼 목적지를 옆에 두고 번번이 지나치는 사람이라면 아는 길도 지도 앱을 켜고 출발하는 게 좋다.
나는 운전을 잘하고 싶다.
운전을 잘하려면 기술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문해력이 필수다.
기술이야 시간이 지나면 숙달된다 해도 문해력이라는 건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니 참 난처하다.
여러분도 동의하리라 믿는다.
지도 앱에서 나오는 음성, ‘잠시 후’의 난감함에 대해서.
얼마 전 카페에서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그날따라 앱은 다른 길로 안내했다.
알 수 없는 오르막길로 가다가 막다른 길에서 되돌아 나왔다.
앱은 경로를 다시 탐색했다.
“잠시 후 우회전입니다.”
화면에 방향 지시 화살표와 정확한 숫자가 뜨고 음성이 나왔다.
골목이 나와 곧장 우회전했다.
벽돌 주택들이 등진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앱은 30미터도 10미터도 ‘잠시’라고 했다.
나는 모두 다 ‘안내음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나오는 길’로 해석했다.
해석은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었다.
그날은 제대로 틀렸다.
하루에 두 번이나 다른 길로 이어지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갈 확률이 얼마나 될까.
다행히 골목 끝에서 텃밭이 딸린 집을 만났다.
텃밭과 집 사이에 마당이 있었다.
성근 나무 울타리가 마당과 도로를 구분해 주었다.
허리에도 차지 않는 울타리 덕에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울타리 가운데에 빗장이 걸린 문이 있었다.
문만 열면 마당으로 들어가 차를 돌릴 수 있을 듯했다.
창문을 내려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두리번거렸다.
문을 두드려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음에도 망설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집안에서 한 할아버지가 손에 담배를 쥐고 나왔다.
이마에 깊이 팬 주름 때문인지 화가 나 보였다.
나는 입을 떼지 못하고 간절하게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빗장을 풀고 문을 양쪽으로 활짝 열어 주었다.
나를 보며 한 손으로 마당을 향해 크게 원을 그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마당으로 들어가 차를 돌린 후 질문했다.
“큰길로 나가려면 어떻게 가나요?”
할아버지는 손가락으로 내가 들어 온 길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는 담배를 태우며 시선을 돌렸다. 못 본 척.
앱을 끄고 일단 대로로 향했다.
오던 방향으로 돌아가 앱을 켤 계획이었다.
모르는 곳에서 길 찾기를 포기하고 내려가려는 찰나, 왼편에 낯익은 비탈길이 보였다.
바로 좌회전했다.
아슬아슬 내려가니 아늑한 숲이 나왔다.
길이 어떻게 이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빠른 걸음으로 2층으로 향했다.
두리번 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흔드는 친구가 보였다.
나는 친구에게 다가가면서 벌써 입을 열었다.
"있지, 있잖아."
친구가 환히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를 보면서 오는 거야. 내가 이렇게 손흔드는 것도 못보고."
약속시간에는 조금 늦었지만 친구에게 해 줄 이야기가 아주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