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으므로

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노란상자

만일 오늘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라면 무엇을 할까.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캠핑 의자를 둔다. 계절을 불문하고 손에는 책 한 권, 무릎 위에는 노트북이면 충분하다. 어젯밤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위해 신중하게 고른 책은 박솔뫼 소설집 <우리의 사람들>이었다. 노트북은 습관처럼 가방에 넣었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같은 물건들이다.


삼각형으로 접힌 책장을 펼쳐가며 익숙한 문장을 낮은 소리로 읽는다. “먼 시간을 이해하지만 이곳에 지금에 없는 사람들이 왜인지 관대한 웃음으로 다시 먼 시간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것만 그려졌다.” 혼자가 되는 순간에도 내가 좋아해 왔던 것들은 여전할까. 하늘과 맞닿은, 너울거리지 않는 수평선을 바라다본다. 사라질 순간이 곧 찾아오리라는 예감은 잠시 잊은 채 바람이 불거나 바닷물이 해변 깊숙이 들어오면 숨을 고를 테다. 다만 즐겁다.


책을 바닥에 내려두고 노트북을 연다. 읽었던 문장들은 같은 의미를 품되 나를 입은 문장으로 치환된다. 내 안 어딘가에 숨어 있던 나도 몰랐던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방식은 더 이상 내가 없는 세상에도 의미 있는가. 나 여기 있었어.


물의 공기를 마시며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내 모습에 흠뻑 빠진다. 모래사장에 노란 수선화 한 송이가 천천히 꽃을 피운다. 환상이라도 후회는 없다.


이십 대 후반이었다. 혼자 지내던 이모의 장례를 우리 형제들이 치렀다. 그후 일주일쯤 지났을까. 나는 꿈을 꾸었다. 오로지 강의실 형광등 불빛만이 빛났고 밖은 캄캄했다. 학생들은 책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나는 열어둔 창밖을 바라보았다. 문득 하얀 눈발이 날렸다. 아니, 그건 착각이었다. 여름이었으니까. 서양식 검은 드레스에 베일 모자를 쓴 여자들이 줄지어 골목을 미끄러져 갔다. 평복차림에 무표정한 사람들의 팔을 잡고 스르륵. 길바닥에 무빙워크라도 깔린 듯했다. 베일 모자를 쓴 한 사람의 눈과 영문을 몰라 하는 내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놀라 잠에서 깼다. 혹시 그들 사이에 이모가 있었을까. 그때 이모 나이가 지금 내 나이와 비슷했다.


그 당시 나는 술이 한잔 들어가면 ‘돈을 벌어서 시골에 학교를 지을래’라고 술주정을 했다. 밤늦은 시각까지 아이들 자습 감독을 할 때면 고요함 속에서 강의실이 한적한 시골 학교 교실로 바뀌는 상상을 했다. 교실 가운데에 놓인 난로 위에서 주전자 물이 끓고 있었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 주둥이에서는 연신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교육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내가 꿈꾸던 낭만이었다. 마음에 담아둔 가장 이상적인 내 모습. 그때는 그랬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 틈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게 신이 나서 학원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 가르치는 게 너무 좋아, 라고 떠들어 댔다. 그렇게 시작된 일은 공간과 형식을 달리하며 이어져 왔다.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너무 좋아하는 일은 따로 있다.


꼭 원한 건 아니었지만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알게 된 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 어느 날 나와 대화를 나누던 절친은 나보고 자의식 과잉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맞지, 맞아. 근데 말이야. 나는 내일 지구가 폭발한다면 바닷가에서 조용히 책을 읽겠어. 눈에 들어온 풍경을 글로 옮기거나. 친구는 물었다. 진심이야?

글쎄. 그냥 내 인생에서 낭만이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교실에서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바닷가가 되었네. 그날 이후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을 던진다. 진심이야?


오늘의 답이 영원하리라 믿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이 좋다. 몰입의 즐거움을 알아버려서 글을 읽고 쓰는 일에 빠져든다.


한때 나는 살아오며 끊임없이 실패해 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무엇에 실패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주춤거리던 시간들은 결국 나를 글을 쓰게 만들었다. 지금의 내가 가장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과거의 실패담이든, 앞으로 올 성공담이든, 그것들을 현재의 이야기로 적어 간다. 막연하고 막막했던 순간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세상과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확인한다.


글을 쓰는 일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기대어 살아온 내가 제때 하지 못한 말과 망설이다 건네지 못했던 마음을 뒤늦게 불러내는 일이다. 마침내 내가 바라보는 곳에 사랑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그러므로 나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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