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좋아, 오늘 점심은 된장찌개다.
책을 들여다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메뉴를 궁리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옮겨간 걸 보니, 때가 된 모양이다.
남이 해준 음식을 먹느라 뒤늦게 발견한 재능을 발휘할 시간.
주방으로 가 슬슬 솜씨를 부려야 한다.
엄마는 식사 시간을 못 박았다.
아침과 저녁에는 우유에 시리얼, 혹은 과일이나 빵 등을 엄마가 정한 시간에 알아서 챙긴다.
점심은 얼추 1시 30분을 약간 넘긴 시각에 맞춰 낸다.
시간이 이르면 잠시 멈추고, 늦을 듯하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서두른다.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일도 아닌데, 내가 너무 따지나 싶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된 데는 사정이 있다.
엄마는 내년이면 구순이다.
그런데도 젊었을 때처럼 여전히 강박이 있다.
흔히 나이를 먹으면 유해지고 이해심이 깊어진다는데 엄마는 그런 편이 아니다(나도 엄마를 닮은 편이다).
엄마는 뭐든 제때 딱딱 지켜야 안심한다.
엄마가 편안해야 나도 마음이 놓인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고 내가 효녀는 아니다.
다만 배고픔을 느껴본 적이 없다던 말라깽이 엄마가 요즘은 “때가 되면 밥 생각이 난다,”고 했다.
역시 남이 해주는 밥이 정답인 모양이다.
뒤늦게 식욕이 돋기 시작했는데, 소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이가 된 엄마가 안쓰럽다.
엄마와 합가한 지 일 년이 되어 간다.
엄마와 나는 살가운 모녀 사이가 아니어서 여전히 서로 맞춰가는 중이다.
엄마는 불만이 생기면, “내가 살날이 얼마나 남았겠니? 좀 잘해라,” 라고 화살을 쏜다.
“사람 일 모르는 거야,”라고 나도 맞받아친다.
못된 말본새에 엄마가 방문을 닫아 버린 적은 셀 수 없다.
그렇더라도 엄마의 점심 한 끼만큼은 잘 챙기고 싶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가 만든 이 음식이 엄마의 하루를 더 이어지게 하소서.’
따뜻하게 말하는 재주는 없어도 마음만은 방금 끓인 찌개만큼 뜨끈하다.
엄마는 아마 모를 것이다.
당신이 눈을 감고 밥을 꼭꼭 씹을 때 내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어쩌면 나 어릴 적 당신도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을까.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을 보는 눈빛을 담아.
점심 메뉴를 궁리하다가 호박이 떠올랐다.
냉장고에는 두부와 양파도 있다.
무엇보다 차돌박이 된장찌개 소스를 사둔 게 있다.
이 정도면 완벽하다.
소스를 푼 뚝배기에 손질한 재료를 다 넣고 끓였다.
보글보글. 짭조름한 냄새.
기포가 터지며 국물이 튀어 오른다.
괜히 뿌듯하다.
요즘 나는 하루 중에서 이 시간이 제일 좋다.
음식이 완성되어 격렬하게 입맛을 자극하는 시간.
엄마가 밥 먹는 시간에 조금 앞서야 하는 시간.
곧 찾아올 포만을 기대한다.
소란스럽게 식탁을 차리는 데, 엄마는 밥에 관심도 없다는 듯 조용하다.
정말 정 없다, 정 없어.
불쑥 이런 생각이 올라올 때가 많다. 하지만 사실 그건 내 오해다.
최근 들어 엄마는 귀가 많이 어두워졌다.
얼굴을 마주보지 않으면 말을 잘못 알아듣고, 티브이 볼륨도 몇 단계 높아졌다.
그럼에도 보청기의 ‘보’ 자만 꺼내도 성을 낸다.
내가 돈을 쓸까 봐 입을 막는 것 같아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아직 덜 불편한 게지!”
웬일로 방에서 임영웅 노래도 들리지 않는다.
‘꽃과 소녀’ 그림책에 색을 입히느라 무아지경인가 보다.
오늘따라 햇살이 좋아서 미세한 색 차이도 잘 보일 듯하다.
내가 엄마와 지내며 요리 솜씨가 느는 만큼, 엄마는 혼색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내 덕에 도 닦는 마음으로 색칠을 많이 해서 그런가 싶다.
식사 준비가 끝났다.
국물이 팔팔 끓는 뚝배기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배에 힘을 주고 엄마를 불렀다.
“엄마,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