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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Nov 05. 2020

[D-44] 2019년, 12월의 마지막 밤의 다짐.

신장 이식 환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 그 시작

마지막 출근과 퇴근이 이어졌다.

올해 5월, 지난 5년의 경력을 바탕으로 내가 가진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보겠다며 입사한 지 7개월이 지난 지금.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이른 퇴근을 시작했다.



지난 9월쯤이었던 가,

매번 정기적으로 외래 진료를 받던 주치의 선생님께서 자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제 아무래도 이식과 투석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병원은 이식 수술이 최소 6개월은 걸리니, 빠르게 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그리로 옮겨도 좋습니다."


내가 이식 수술이라니?

물론, 신장 질환은 어렸을 때부터 앓아왔기에, 언젠가 수술을 하리라고는 늘 생각했었다.

그 언젠가가 40,50세의 어느 날 일거라고 생각했었던 것이 문제였지만...


혹시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병원을 옮겨 한 번 더 진료를 받아 보기로 했다.

서울대 병원 진료 예약을 마치고, 모든 검진을 마치고 만난 외래의 시간을 겪었다.


"이식 수술을 준비하시니, 이를 위한 검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식 수술까지 이몸으론 버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투석을 임시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나는 오른쪽 쇄골밑에 카테터를 박고 투석을 시작했다.


회사로 돌아가 이 상황을 전했고, 수술과 수술 후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렸다.

그리고 퇴사를 말씀드렸다.


그렇게 오늘 마지막 퇴근 길을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병과 싸우러 나가는 출정식을 걷는 기분이었다.

다시 내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몇 번이고 이 생각을 되내이었다.


신장 질병을 앓는 사람들을 의외로 다양하다.

태어나자 마자 아픈 아기들도 있고, 나와 같은 2030 건강해 보이는 젊은 사람들부터 나이드신 어르신 분들까지 전 세대에 걸쳐 해당 심심치않게 발생한다. 병을 앓으며 관련 커뮤니티를 찾게 되었는 데, 정말 다양한 사연의 환자 분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병과 싸우기 위한 방법은 그렇게 대단치가 않다. 우선 병이 발견되면 대부분의 환자는 이미 신장이 일정부분 이상 망가진 상태로 발견한다. 이 신장은 어느 정도 망가지지 않는 한 몸에 이상신호를 보내지 않기 때문에 몸에 이상이 느껴져 병원에 갔을 때에는 이미 병이 많이 진척된 상태가 된다. 


또한, 신장이란 곳은 망가짐을 되돌이킬 수 없기에 자연스럽게 환자들은 이 병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속도전을 하게된다. 그리고 더 이상 늦추기 힘들 때, 방법은 2가지 뿐이다. 투석과 이식.


무엇하나 녹록치 않다.

평생 주 3일 4시간씩 누워 투석을 받거나

뇌사자 신청을 하고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이식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하거나

부모, 형제, 친인척에게 신장을 공여받거나 하는 방법뿐이다.


어떤 방법이던, 사람의 멘탈을 부셔놓기에는 충분하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진다. 당연한 수순인 것 같다. 


평생을 투석받으며 쓰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며 바뀌는 내 일상

10년이 넘게 대기할지도 모르는 이식 순서

내가 아닌 가족과 아픔을 공유하며 이식받는 신장이식


생각을 하면 할수록 빠지는 건 자기비하, 좌절밖에 없다.


나도 그랬다.

공여를 해주시는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면서도 나로인해 큰 고통을 겪어야한다니

또한 평생을 신장 한개로 살아가셔야 한다는 데 어떻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 가

나이드신 아버지께 신장을 받는 아들의 마음도 참 쉽지가 않다.


이때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환우 커뮤니티가 큰 도움이 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와 응원, 투병 생활을 이겨내는 모습에서 힘을 얻었다.

내 마음을 털어놓자, 깊이 공감한다며 힘내는 모습을 보고 본인도 힘을 얻는다고 하는 분도 보았다.


그렇게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며 조금씩 마음가짐을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불행 속에서도 긍정을 찾고 살아간다.

나의 살아감이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고 응원이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기쁨일 것 같다.


그래서 이럴게 글을 쓰고자 다짐했다.


내 건강, 삶이 어떤 방향으로 돌아가게 될 지 알 수는 없지만.

스스로는 다시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 모습을 글로 공유하고자 한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아픔을 겪고 있는 환우분들에게

약간의 응원과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보통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 희망을 갖고 이 병을 이겨내 보겠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길 바라며


2019년의 마지막 날 밤

2020년을 넘어가며 글을 씀.


올해의 마지막 날 밤엔

보통의 일상을 마치고 행복한 마음으로 글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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