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문제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다.
원인과 결과는 사후에야 추론할 수 있으며, 따라서 명호가한 정답이 없다.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여러 요소의 상호작용 후에야 해결책이나 해답이 나오므로 예측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팀의 성과 문제 해결은 복잡한 문제 유형이다. 그 원인 중 일부는 식별하기 쉬울 수 있지만, 다른 원인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직감의 힘, 로라 후앙>
어떤 글을 쓰고 잠들까하다가,
책상 위에 가장 먼저 눈에 보인 <직감의 힘> 의 77페이지에 적힌 내용을 옮겨적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연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연히, 오늘 동료에게 불교의 연기라는 개념을 들었는 데 책 내용의 인과와 더불어 생각해볼만 하군요.
불교의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는 세상의 모든 존재와 현상이 고정불변한 실체 없이 상호의존적인 관계(인연) 속에서 발생하고 소멸한다는 근본 교리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는 공식처럼 상호관계성과 고(苦)의 원인을 밝히는 핵심 원리입니다.
일을 하며, 대부분의 것은 인과로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와 미래의 시차가 있듯, 그 원인과 결과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외로 오늘의 문장처럼, 명확히 이 결과는 특정 원인들로 설명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정확히는 우리가 아는 원인이 이 문제가 발생한 모든 요인들을 설명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황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요인이 더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것이 99%를 설명할 수 있는 원인이 있고, 모르는 1%의 원인이 있더라도, 그 1%가 상황을 만든 변수임을 틀림없기 때문에, 1%가 없이는 이 결과가 여전히 같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인연도 그렇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왜, 멀어졌고, 왜 헤어졌는 지를 설명하기엔 수 많은 인과가 존재합니다. 알 수 있는 인과와 여전히 모르는 인과가 존재하죠.
그래서 불교의 연기는 이런 생각을 보완해주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조건이 존재하고, 또한 그 조건이 계속 변하므로 고정된 나(결과)는 존재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인연생기(因緣生起): 직접적인 원인(인, 因)과 간접적인 조건(연, 緣)이 화합하여 결과(과, 果)가 일어납니다.
무상(無常)과 무아(無我): 조건에 따라 계속 변하므로(무상), 고정된 '나'는 없다(무아)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종종 이렇게,
우연히 흘러들은 한 마디가 기억에 남고,
그 이야기를 다른 상황에서 또 다른 조건으로 만날 때면,
세상(신? 혹은 하늘? 그 무언가)가 알려주는 힌트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힘든 시간을 지날때면,
그 시간을 함께 보내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고,
누군가 던진 한마디가 이렇게 하루를 버텨내는 힌트가 되기도 하고요.
세상의 신호를 읽는 기분이랄까요?
오히려, 억지로 더 기울이고 싶은 상황에서 만든 확증편향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오늘도 그 신호로 잘 버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