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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Mar 18. 2024

어느 주말, 택시 운전사 이야기

먼 미래 마주할 60대를 위해

졸업한 대학원 석사과정에 관심 있는 친구가 있어, 

박사과정 친구를 소개해 주고자 오랜만에 학교를 방문했다.

앞 일정이 애매해 택시를 탔는 데, 택시를 시작한 지 이제 막 두 달된 기사님이었다.


막히는 시간 대,

왜 인지 자연스럽게 달리는 차 안에서 대화가 시작됐다.


어휴, 30년 동안 직장생활 고군분투하다가 
택시 시작한 지 두달되었는 데 이 업계에서 적응하려고 쓴맛을 느끼는 중입니다!


건축설계를 30년 이상 하시다가 정년 퇴임 후 택시를 시작한 분이었다.

한 회사의 창립 멤버로 근무를 시작했다가 정년 퇴임 후 계약직으로 1년 더 근무하던 중 그만두셨다고 한다. 계약직으로 출근하니, 일을 안 줘서 주식 보는 것이 하루 시작이 되자 답답해도 견딜 수 없으셨다고. 바로 시골에 내려가서 살까 했지만... 지금은 택시 운전을 해보고 있다고 하신다.


나이가 33살인 데, 회사 생활은 행복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이야기했다.


"행복한 것을 하세요. 일은 당연히 힘든 순간은 있어요.
그런데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한 순간은 있어야 해요."

사실, 여기까지는 조금 뻔한 이야기라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20대에 일을 시작하고, 나는 내가 30대에도 내 마음이 20대 같았고,
30대에도 20대 같았고, 50대에도 30대 밖에 안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60이 넘어서 거울을 보니까 그땐 정말 60살이 넘은 내가 있더라고요.
시간이 정말 빨라요. 행복한 것을 찾아서 하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아요.

사실 난, 내가 여전히 (생각이) 20대 같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운전사 분이 말을 이었다.


건축설계만 30년을 했어요. 이마트, 수원 월드컵 경기장 지붕, 고려대 화정체육관 이거 다 내가 설계한 거예요. 힘든 게 없었겠어요?
근데 난 이 일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할 수 있었어요. 

행복한 것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신입직원이 들어오고 3개월이 지나면 꼭 물어봤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행복하냐고.
아닌 것 같으면 지금 다른 일이라도 꼭 찾아야 한다고.

 30년 동안 즐겁게 하던 일을 뒤로했으니, 그때가 그립진 않을지 궁금했다.


아무리 재밌는 드라마도 20부작 넘어가면 지루해요. 
일 하는 동안에 나중에 이직할 때나 필요하지 않을까,
모아둔 문서들 미련 없이 다 지웠어요.

근데, 뭐.. 행복하자고 가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공부할 때 재밌었어요? 그럼 해요.
돈 물론 중요하죠. 그런데요.

만약,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면
3년 뒤에 지금처럼 그게 하고 싶을까요?
그건 지금이니까 하고 싶은 것이에요.

인생 선배로서 지나고 보니 해줄 수 있는 말은
행복한 것,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신 차리면 거울 앞에 60대가 서있을 거라니까요?


왜 하필 택시를 선택했냐고 한 질문에 자영업은 

돈은 까먹지만 택시는 차는 어차피 탈거고, 면허는 나중에 팔아도 되니 

돈은 최소한 안 까먹을 것 같아서 하셨다고 한다.


동종업계가 '껴들기' 안 해줄 때 섭섭하지만

나름 고군분투하며 배우고 있다며 기사님의 웃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제2의 인생을 즐겁게 보내는 기사님에게 존경심과 부러움이 있었다.

최선을 다한 30년이 있었기에, 후회 없이 두 번째 직장을 시작하셨겠지.




무색의 시대다.

'무엇이 되고 싶다' 던가,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던가 하는 개인의 욕망은 사라진 지 오래다.

회사에서 난 스스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경쟁도 감정도 상처만 남았다.

뭐, 사실 남은 선택지가 포기 말고 다른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내가 좋은 PM인 지는 잘 모르겠다.

나아가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지도 질문을 던지게 한다.


35살 이전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려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며

다시 내 것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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