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댄스 동아리가 인기였던 나의 대학 신입생 시절. 우리 학교 연극동아리는 학생들이 썩 선호하는 곳은 아니었다.
극예술연구회라는 무겁고 고루한 이름
낡은 포스터의 습습한 냄새로 도배된 동아리방
심지어 신입회원 유치에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
그것은 불행히도 몹시 내 취향이었다.
딱히 신청하는 사람도 없는데 오디션을 봐야 한다고 했다. 자판기가 돈을 먹어 화가 난 상황을 마임으로 표현해보라기에 무대 가벽을 발로 뻥 차 버렸고 한 번 더 차 버리기 전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칵테일 소주가 인기인 시절에 우린 막걸리통에 술을 받으러 다녔다. 아직도 왜인지 모르겠는데 10년 만에 복학했다는 아저씨에게 데모에 쓰는 화염병 만드는 법도 배웠다. 이 동아리가 10년 이상 퇴보한 대학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지나치게 많이 얻어먹어서 양심상 발을 빼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배우로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발성, 호흡 등의 훈련들을 빡세게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현실은 인원이 부족해 초짜인 내가 무대에 서야 겨우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나의 첫 대사 "얘 밀드레드 번갯불에 놀랐구나 폭풍우는 무섭단다"
당시 내 연기력은 번갯불보다 놀랍고 폭풍우보다 무서웠다. 게다가 무대에만 서면 긴장해서 자꾸 엄지발가락'만' 발딱 발딱 섰다. 그것을 보고 당시 라이벌이던 (우리 동아리만 경쟁하는) 연극영화과에서는 엄지발가락 연기를 의도한 것인지 연출에게 진지하게 묻기까지 했다.
이후로 나는 무대 위 배우가 아닌 무대 뒤 기획으로 활약했다. 학교 주변 가게들을 돌며 스폰비를 받아 한 학기 살림을 꾸리는 일에 집중했다.
그 사이 대학 내 연극동아리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졌고, 우리는 무대를 대신해 빈 강의실을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공연조차 올리지 못하게 된 학기에는 우리끼리 동방에 모여 불이 난 상황을 연기하기도 했다.
사실상 무대 위보다 무대 아래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다 표출했고 , 우는 것보다 울리는 일이 더 많아질 때쯤 학교를 졸업했다.
신방과였던 내게 방송작가라는 새로운 타이틀과 함께 퇴근 시간을 알 수 없는 전쟁 같은 날들이 반복됐고, 가벽으로 세워서 발로 차 버리고 싶은 인간들을 만나거나 내 연기력보다 무섭고 놀라운 사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난 동아리 사람들에게 돌아가 치유를 받았다.
영원할 것 같던 동아리를 향한 나의 뜨거운 사랑은 혼란했던 작가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면서 조금씩 식어갔다. 그렇다. 난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가 더 중요한 사람이 되버렸다.
얼마 전, 갑작스럽게 동아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더 이상 연극을 하려는 신입회원이 없어 우리 동아리가 학교에서 제명됐다는 것이다. 졸업생 모임에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한다.
사실 때 되면 보내주는 공연 팜플렛 마지막 장에 기수별 이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보며 예상을 못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아예 사라지는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제 학교에 가도 동아리방은 없다. 공연을 알리는 얼굴 모를 까마득한 신입생 후배와 어색하게 통화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동아리에 마음을 주지 못한 동안에도 이 사태만은 막으려고 꾸준히 노력해온 선후배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추억에 젖으며 아쉬워하는 것조차 너무나 미안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기록하지 않으면 그냥 흘러가는 아무 날이 될 것 같아 염치없지만 그 찌질하고 붕신같았던 극예술연구회 벽 26기 오정으로 돌아가 몇 자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