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엘젬: 절대 겪고싶지 않은 검투사 삶의 현장

20190909 엘젬 원형경기장 + 비구경

by 오스나씨

어젯밤에 정말 미친듯이 비가 왔던 관계로 오늘 일정이 좀 걱정이 되었었는데 다행히 비는 그친것 같다. 어젯밤에는 천둥치고 번개치고 호텔문 밖은 빗물로 넘쳐났었다. 그 결과 어제 까르푸에서 공수한 오렌지 주스 가지러 주방으로 건너갈때 이대로 나가면 신발이 쫄딱 젖어버릴 것 같아서 그냥 맨발로 나갔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던 듯. 날은 갰지만 아직도 바닥에는 물기가 흥건하다.


아침, 옥상에서 바라본 수스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침밥이 아닌 아침빵을 먹은 후 채비를 한다. 크로스백에 최소한의 짐들을 우겨넣고 돈이 얼마나 있는지 체크하고 여행의 필수품인 선글라스는 꼭꼭 챙긴다. 이제 얼굴과 거의 밀착되어 하나가 된 느낌.




엘젬에 가기 위해서는 어제와 같이 루아지터미널에 가야 한다. 한번 택시 맛을 보니 이제 걷는 것은 조금 귀찮아졌다. 오늘도 택시는 운좋게 손쉽게 잡혔다. 가격도 거의 비슷한 1디나르 정도. 그렇게 무사히 루아지터미널 도착.


헌데 오늘은 루아지터미널의 풍경이 어제와는 조금 다르다. 엄청나게 긴 줄이 늘어져있다. 그냥 주변 아재들에게 도움을 구했어도 되는데 길게 늘어진 줄을 보니 일단 후딱 줄부터 서는 것이 좋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 쪽으로 다가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티켓부스는 방향별 2군데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오스나씨. 결론적으로 튀니스행 티켓부스에 30분도 넘게 서 있었다는 슬픈 이야기. 서있는 도중 뭔가 쌔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왠지 또 삽질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엄습해왔다. 용기를 내어 뒤에있던 청년들에게 물었더니 역시나 이 줄이 아니란다. 아 뭐 그럴줄 알아서 물어본거야. 너무 그렇게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지 마십시오ㅠㅠ 올바른 티켓창구, 튀니스행 부스와 카이로완행 부스 사이에 있는 엘젬행 부스로 가서 바로 티켓을 산다. 이후로는 이제는 익숙한 프로세스에 몸을 맡긴다. 아재들에게 이끌려 엘젬행 루아지로 이동한다. 그리고 가장 최적의 자리를 탐색하여 결정한 후 앉는다.


수스-엘젬 5.6디나르. 오늘 내자리는 주인장 뒷자리



오늘도 루아지는 씐나게 달립니다.


어딘가에서 보았던 것처럼, 엘젬 부근은 로마시대때 올리브 무역(조공)이 성행했었던 지역이었던 만큼 가는 길에 올리브 농장이 참 많다. 그런 길을 선택해서 그러한건지 알 수는 없지만 카이로완 가는길에 비해 엘젬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깔끔했다. 참고로 어제도 물론 올리브 나무들을 보긴 봤다. 헌데 주변환경이 그닥 청결하지 못했던지라 저기서 자라서 맺히는 올리브의 상태가 의문스러워서. 저것이 시장에 풀린다면 나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뻘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었지.




엘젬의 루아지터미널이 어디인지는 지도에 찍어오지 않아서 확실히 몰랐지만, 어차피 내리면 원형경기장이 육안으로 쉽게 보일것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1시간여를 달려서 도착.


https://goo.gl/maps/k8o4nWDdQ5Z7jaD58


헌데 이무슨 조화인지ㅋㅋ 내가 타고온 루아지로 사람들이 개떼같이 몰려든다. 전부다 수스 가는 사람들인 듯. 이 차를 놓치면 다음차를 기다려야 한다라는 집념으로 달려왔던 것 같다. 분명히 몰려든 사람에 비해 루아지의 좌석수는 현저히 적었다. 인파를 헤치고 루아지를 벗어난다. 나중에 이쪽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테니 혹시 몰라 현재 위치를 구글에 표시하고는 터미널을 벗어난다.



어제 엘젬역시 폭우를 맞아서인지 아직도 거리에는 물기가 좀 남아있다. 루아지 터미널은 나오니 역시나 찾아왔던 대로 저 멀리 골목 너머너머에 원형경기장이 보인다. 지도를 보면서 걷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충분히 도보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리. 골목 여러개를 통과하여 원형경기장쪽으로 향한다.


https://goo.gl/maps/gZ4pa3ZUSvcFLs9u8

전경. 사실 좀 나중에 찍은 것. 하늘이 흐릿.



입구를 찾지못해 한번 삽질하고 티켓팅하고 무사히 입장.



햇살이 굉장히 뜨겁다. 양지에 서 있으려니 핸드폰 화면도 안 보일정도로 빛이 강하다. 도착하자마자 이어폰을 끼고 인증샷겸 딸기에게 페이스톡을 걸어준다. 나 이런곳에 왔노라고. 그렇게 잠시 구경시켜준다.


입장하고 바로 직진하면 보이는 경기장


그리고 관람석으로 기어올라가봅니다.


로마의 흔적이 여실히 나타나는 이 엘젬 원형경기장은 우선 글래디에이터의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어제 봤던 카이로우안 그레이트 모스크를 보수할때 이 곳의 석재를 가져다가 쓰기도 했으며, 후에 반란군 제압하겠다고 대포를 몇대 쏘는 통에 일부 부서져버려서 원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는 원형이 아닌 원형경기장. 영화속에서는 뭔가 CG처리를 했던 것이었겠지.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글래디에이터 촬영지를 두 군데나 오게된다. 2017년도의 모로코의 아이트벤하두에 이어.


그리고 북아프리카에 있는 원형경기장들 중 가장 큰, 당시의 엘젬 인구보다도 많은 이가 수용가능했다는 35,000명 규모이다. 로마 원형경기장들 중 No.3 이었고, 현존하는 것 중에서는 No.2가 개박살나는통에 엘젬이 No.2이다. 물론 이를 짓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겠지. 그리고 그와 더불어 로마와 떨어진, 심지어 지중해를 사이에 둔 이 튀니지에까지 위용을 떨쳤던 로마의 강건함에 다시한번 감탄을 지어주고. 사실 여길 지은 사람은 로마 아프리카 총독이었던 고르디아누스이고 당시 황제였던 막시미누스에 반항하여 반란도 일으켜보지만 결국 실패하고 여기서 자살했다나 뭐라나. 여튼 그는 이걸 지으면서 천년만년 그의 세력들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겠지. 하지만 그의 반란이 실패로 끝났음은 물론 로마의 찬란한 역사도 막을 내리게 되었으니. 이후 이 경기장은 전쟁을 위한 요새, 아랍인 침공당시에는 주민들의 피난처로도 쓰였다는 거.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주민들을 위한 곡물창고 등으로 쓰이기도 했다니 죽쒀서 개줬..아..아닙니다. 어쨌든 이를 지은 사람들은 인근지역주민 혹은 노예들이었을 터이니. 원주인이 활용하게 되었다는 데에서 의의를 찾는걸로. 우야된동 많이 파괴되기는 하였으나 튀니지의 경제력 등등을 고려하여 추측하건데 딱히 전문적인 복원이 이루어졌을리는 만무하니, 2019년의 내가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그저 겉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이렇게 층과층을 몸소 걸어누비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정말이지 엄청 튼튼하게 지었다는 것은 간과할수 없는 팩트임.




경기장은 일단 나와서 건물을 둘러보자. 우선 노예들 그리고 맹수들이 들어가있었을 지하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표지판 그리고 계단



들어가보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입출구는 한 곳은 아닌것 같긴한데, 여튼 내가 들어갔던 곳은 들어가자마자 넘나 캄캄해서ㅋㅋㅋ어디가 어딘지 약 몇 초간 주변을 두리번 거려야만 했었지.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과거의 그들이 걸었어야만 했던 길.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특유의 퀘퀘한 냄새는 당시에는 더 심했겠지. 싯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을 죄인들과 노예와 검투사들이 모여있었을 것이고 맹수들도 함께 지냈어야만 했었을 지하. 비라도 올라치면 배수는 제대로 되었을리 만무. 곰팡이와 벌레 그 꿉꿉함.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언제금 닥칠지도 모르는 그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곱게 죽는 것도 아니고 몇 만명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맹수에 물어뜯길수도 있는 죽음이라니. 그리고 10대때부터 여기 갇혀서 검투사로 길러지는 아이들은 대체 무슨 죄인지. 아 정말 이런거 보면 서양사람들이 동양사람들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했던 것은 분명하다. 물론 다수의 폭군이 있긴 했지만 대놓고 이딴 짓 까지는 안했지 않나... 하.. 정말.. 이런 것이 구경거리라고 오락이라고 나참..





곳곳에 이런 구멍도 있다. 왼쪽이 지하에서 내려다본 구멍, 오른쪽이 지상에서 내려다본 구멍이다.


이 구멍은 통풍 혹은 배수를 위한 구멍이었으리라 사료됨. 상당히 여러군데에 뚫려있다. 조명을 부착하기 딱 좋은 구조라 현재는 조명도 여기저기 붙어있다. 여튼 저 구멍으로 관중들의 환호성과 맹수의 울음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더 생생히 전해졌겠지. 경기중에 무언가가..하 상상하기도 싫은 그것이... 저 구멍을 막기도 했었겠지. 피가 떨어졌을수...도... 하... 그때마다 아래에서 바라보던 그 느낌은... 으.. 개인적으로 정말이지... 모든 삶들 중에서 제일 살고 싶지 않은 삶이다.


사실 안내판들이 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저 잘 모르는 본인은 어딘가에서 줏어온 정보만 가지고 추측만 할뿐. 지하에 관람이 가능한 구역은 정사각형이 아닌 그냥 복도 형태이다. 양 옆으로 과거에는 기독교신자들을 가두어두었던 감옥, 검투사방, 맹수방 등등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냥 딱 보면 어디가 어딘지 구별이 안된다. 그냥 추측만 할 뿐이다.


오가는 무개념 인간들로 인해 내부에 쓰레기가 많이 쌓여서인지 청년 두명이 신나게 먼지를 만들며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엄한 곳으로 가려던 오스나씨를 붙잡아세워 그 쪽으로는 가는 것이 아니라며 길 안내를 해주기도 했다. 분명 갔음이 분명한데 기억은 잘 안나는 로마의 콜로세움은 지하구역을 그냥 위에서 볼 수만 있게 되어있는데 여긴 직접 이렇게 들어와볼수 있어서 땡잡았으니 잘 봐두자.




복도 양 옆으로 방, 위는 현재는 남아있지 않은 첨단시설의 흔적


철제로 된 천장이 있다. 해가 들어오는 곳은 아까 처음 들어섰던 곳에 비해 많이 밝다. 경기장 위에서 보면 아래 사진과 같은 모양이다. 원래는 지하를 볼 수 있게 뚫린 공간인데 공연-_-을 위해 이렇게 안전장치를 해 놓은 것임.



생각해보니 이 철제 천장이 덕분에 아까 지하 초입의 캄캄함을 만들었나보다. 결국 과거의 어두움과 조금이나마 유사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준 셈.




우울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최근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보니 이런 엄한 생각도 해본다. 요새야 어디 도로가 나고 지하철역이 나고 좋은 학군이 형성되고 대형 쇼핑몰이 들어오고 이런 호재에 사람들이 움직이지만 이 당시에는 이 경기장도 한 몫하지 않았으려나?


(아래 대화는 읽지않아도 좋습니다. 뻘소리입니다.)


A: "너 들었어? 엘젬에 대형경기장이 들어온대."

B: "헐ㅋㅋㅋ 대박ㅋㅋㅋㅋ"

A: "응 쨩이야. 아프리카에서 제일 크대. 볼거리도 풍부할거야."

B: "시공은 누가 한대? 황제가 직접하나? 공공이야?"

A: "노노. 민영. 총독 고르디아누스! 올리브 팔아서 돈들 좀 벌었는지 거기 귀족들도 돈 댄대."

B: "호오. 그 정도면 중간에 중단될 일은 없겠네."

A: "응ㅋㅋ 그래서 나는 이미 이사갈 집 하나 봐뒀어. 조만간 계약서 쓰려고."

B: "나도 괜찮은 곳 있나 보러가야겠다!! 내일 당장!!"

A: "모자이크 장식에 신경좀 쓴 집은 벌써 프리미엄이 엄청 붙었대.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올라."

B: "헐 그 동네 빈집 줍줍했다고 들은거 얼마안된것 같은데. 대박."

A: "경세권 죽이지! 경기장도 카르타고꺼보다 비교도 안되게 크니까 분명 인근에서도 구경하러 엄청나게들 몰려올거야. 장사도 잘 되겠지. 이왕이면 경기장 부근 초경세권으로 꼭 알아봐."

B: "그래도 뭐 카르타고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겠지?"

A: "솔까 거긴 생활환경이 별로잖아. 돈만 비싸게 부르고. 거품이야. 엘젬신도시가 최고지."

B: "그래도 여전히 카르타고가 이 부근에서는 대장이잖아. 난 비싸서 들어갈 엄두도 못나는걸."

A: "에이 카르타고가 로마랑 가까워서 괜히 비싼거지. 실거주하기에는 엘젬이 훨 나아."

B: "그래. 내일 가봐야겠다. 좋은 정보 감사!"




이제 위로 기어 올라가자. 3층까지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다. 부셔진 부분에는 당근 못 가고, 입구 쪽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는 구역만 돌아다닐 수 있다. 나는 어째서 그런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3만명이 입장하고 퇴장하는데 수십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과학적인 설계라고 하던데. 그냥 평범해보입니다만... 왜 그런거지? 누가 좀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네.


계단 은근 가파름. 그래도 오를만함.



뭔가 멋지지만 옛날에는 더 멋졌으리라..


뭐 예상했겠지만 과거에는 벽에는 대리석 혹은 채색이 된 대리석, 바닥은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파르테논도 그렇고 이집트의 다른 신전들도 그렇고 지금 보고 있는 이런 모습들은 이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긴 하지만 과거의 그들이 보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는 것.


혹자는 그런 아름다움과 현재를 비교하며, 그리고 그 훼손의 정도에 심히 안타까워합니다만 오스나씨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주변에 하도 얘기해서 지겨울것 같기도 한데. 훼손 역시 역사의 흔적이라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뭔가 손을 대는 순간 예뻐질지는 몰라도 역사적인 가치는 현저히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오스나씨.


이 글을 보는 그대들에게 죄송스러운 것은 건축에 대해서는 중고딩시절 주입식 교육을 통해 머리에 우겨넣은 덕분에 그저 머릿속에 이오니아식 도리아식 배흘림기둥 등등의 단어들만 둥둥 떠다니는 터라 설명을 못 드리겠습니다. 그냥 사진 구경하는 데에 의의를 둡시다. 혹시 알아? 나중에 책이라도 내게되면 그때는 공부좀 하고나서 뭐라도 적을 수 있게 될지? 지금은.. 밀린거 쓰기도 바빠서 일단 패스.


창문사이 하늘이 예뻐




계속 풍경구경 하시져




이제 끝까지 기어올라왔나봉가



하일라이트샷


경기장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뭔가 공연이 있을 모양인지 혹은 공연이 끝나고 치우지 않은 것인지 무대장치가 아직 남아있어서 관람을 방해하고 있다. 실제 로마시대때 저기서 공연을 했다는 것이 아님. 다른 사람들 사진에는 없던데 힁힁 미워미워. 정면에 보이는 것이 관람석이지만 뭐 보시다시피 저 쪽만 남아있는 상태이고. 벽도 날라간 상태. 그 사이로 보이는 엘젬시티. 그리고 내 폰카로는 잘 표현이 되지 않았는데, 저 경기장은 정원이 아닌 타원형이다. 그리고 씁쓸하지만 경기장이 원형인 것은 구석으로 몰려서 검투사가 일찍 사망하면 경기가 재미없으므로 도망-_-이 용이하도록 원형으로 지었다고. 허허 거참.


관중석과 설치된 무대사이에는 작은 철제로 된 정사각형이 있는데 맹수들을 경기장 위로 올리는 엘리베이터(?) 움직이는 마루(?)와 같은 특이한 구조물이 있던 공간이다. 관람객들의 서프라이즈를 위해서. 실제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러셀크로우 막시무스가 호랑이랑 싸울 때 호랑이도 이 구멍에서 튀어나오도록 깨알같이 잘 표현했다. (기회가 되면 영화도 캡쳐해 올려보겠으나.. 모로코 다녀오면서 보고나서 영화는 이미 지워버렸던터라.. 진짜 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




이제 슬슬 밖으로 나가자. 이전에 조사하기로는 엘젬에는 박물관도 하나가 있다고 했다. 지도를 뒤적거리니 왠지 여기인가보다 싶어 걷는다. 근데 길치모드가 발동한다. 하.. 어디지? 원형경기장 근처인데 시계방향으로 돌아야하나 반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하나. 아.. 저 건물이 박물관일 거야.. 저 건물이 박물관일거야.. 하면서 계속 걷는데 막상 가보니 아닌.. 그런 막막한 상황. 아 짜증. 배도 고픈데. 일단 저기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가서 뭐라도 좀 먹고 가자.


근데 또 같은 실수를 한다. 이디야 가서 김치찌개 달라고 하는 상황을 또 벌이고 있는 오스나씨. 여기 까페란말이다-_- 마실 것 밖에 없다. 뭐 먹을꺼 없냐고 하니까 웨이터 아이가 손가락으로 레스토랑 꽁시랑 꽁시랑 하면서 저 멀리를 가리킨다. 응응. 앉았는데 가버리기는 그렇고.. 그냥 이거만 먹고 가자.


원형경기장에 건배1


최대한 츠언처어어언히 오렌지 주스를 흡입하고 일어섰다. 저 오토바이는 좀 치우고 싶었지만 나름 근처 식탁들 중 원형경기장이 가장 잘 보이는 명당이었다. 내 뒤로는 다른 카페들과 마찬가지로 꽤 많은 튀니지 백수청년들이 적어도 5테이블은 넘게 자리를 잡고 하염없이 수다중이다.




길치 오스나씨는 결국 박물관을 찾지 못하고 원형경기장을 한바퀴 돌았다. 갑자기 기운이 빠지네. 그러던 차에 만만한 식당이 보이길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인장 아저씨가 놀라며 쳐다본다. 몇 명이냐고. 한명 온니원이라고 하니까 "뭐라고오?!?!? 한명?!?!?" 이라면서 뭔가 상당히 오바스러운 실망을 표현하신다.


뭘 시켜야하나 하던차에 주인장이 추천하는 대로(아마도 제일 비싼것을 부른것 같지만) 먹기로 했다. 사실 골라주니 행복했다. 양고기 정식을 먹게 된다. 양고기는 어차피 내가 엄청 좋아하는 거야. 며칠간 밥같지도 않은 것을 먹었는데 드디어 배를 좀 채우겠군. 사실 안 먹어도 되는데 거의 반강매로 레모네이드도 같이 주문했...다..가 아니고 주문당했다. 신선한 레모네이드!!하는데 싫다고 말하기엔 뭔가 무서운 기분마저 들었다. 눼눼 먹을게요. 그것도 주세요.



튀니지식 샐러드? 양념? 소스?

우선 애피타이저격인 샐러드를 가지고 오는 주인장. 그냥 먹어도 되고 나중에 양고기가 나오면 발라 먹으라고 설명을 해주신다. 그리고 쫑알쫑알쫑알 수다를 시도하신다. 나 니가 혼자 들어와서 개놀랐어! 사람 엄청 많이 데리고 오는 줄 알았는데 혼자일 줄이야! 하면서 친근하게 구신다. 글구보니 이 아저씨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은데.




그리고 이젠 고기굽기 시작


다시 봐도 위치가 참 좋다. 원형경기장 바로앞. 아저씨도 참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굽는 동안 참 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하시더라. 지역 주민인 듯한 사람은 물론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호객행위도 틈틈이 진행하심. 내가 참 특이한 케이스였던게지. 영업하지 않아도 이렇게 훅 들어올줄은 몰랐겠지. 우야된동 그렇게 아저씨는 내 양고기를 구우면서 결국 프랑스인 부부를 낚는데 성공을 하게 되는데...




원형경기장에 건배2


와 진짜 맛있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을테지만... 하.. 고기는 언제나 옳잖아. 감자도 너무 맛있었고 신선한 채소는 진짜 얼마만에 먹는 것인지! 양이 꽤 많았지만 남김없이 다 먹고도 남지. 자리도 정말 너무 훌륭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던지 말던지. 흥흥 양고기 먹는거 보니 개부럽지? 안 나눠줄거임!!


프랑스인 부부가 갑자기 "안녕하세요!!"를 한다. 깜짝놀라서 쳐다보니 한국에 몇 번이나 왔었다고 한다. 서울이 어쩌고 부산이 저쩌고 얘기를 하는데 댄따 신기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이 항상 하는 똑같은 레파토리. 여기 언제왔어? 어디어디 갔어? 언제 한국갈거야? 여기좋아? 이런류의 대화를 좀 나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식사가 나왔기에 우리는 서로의 식사에 집중하기로 한다.


헌데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아.. 저 주인장. 그래. 블로그에서 봤다. 무슨 부부의 해외여행이었던 것 같은데. 블로그 주인은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잘 잡아서 이야기하시는데 빵빵터졌다고 했던 기억. 실제 아까 나에게도 그런 농담을 했다. 일본인은 입이 짧고 중국인은 못생기고 어쩌고 저쩌고. 빵빵터지긴 개뿔. 나는 기분이 그닥 좋지 않았음. 이 주인장 분명 내가 아닌 다른나라 사람들에게는 한국인에 대해 어떤식으로든 웃음거리로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인위적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는 것이 예측되었기때문.


우야된동 신기한 경험은 맞는 것 같아서, 그리고 본인의 사진이 한국의 블로거를 통해 소개되어 올라갔다는 사실은 분명 모르고 있을 것 같아서 검색해서 찾아서 보여줬더니 이번에는 주인장이 빵터졌다. 너무 신기한지 레스토랑 안 쪽에서 있던 본인의 동생, 그리고 식사중이었던 아까 낚은 프랑스인 부부에게도 보여주고 난리가 났다. 사실 본인도 이 레스토랑을 떠나기 전 사진을 찍긴 했으나 올리려다가...방금 지웠다... 그냥 참기로 한다. 다른게 아니고 내가 너무 못나와서. 목에 왠 주름이...OTL...


그렇게 즐거운 식사시간을 마무리 할때 즈음 비가 쏟아지네. 내 식탁 위에는 파라솔이 있어서 비를 다소 맞긴 했지만 그래도 피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괜찮았지만 프랑스 부부는 안 쪽으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그냥 지나가는 비는 확실히 맞아 보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꽤 많이 길게 왔다. 어차피 나는 우산도 없으니.. 그런다고 살 것은 더더욱 아니었던 지라 그렇게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뭐 카페에 있는 실직청년들은 100원짜리 커피놓고 몇시간 넘게 붙어있는데 나도 뭐 이정도는 상관없겠지.


후두두두두둑


후두두두두두둑



와 정말이지 비 구경하는건 정말 최고. 게다가 배경이 튀니지 그것도 희소성이 충분히 있는 엘젬의 원형경기장 앞이라니!! 그나저나 저 그릴 비 쫄딱맞아서 오늘 장사 망했네. 흠.. 해뜨면 바로 마르려나? 생각해보니 조금만 늦게 왔어도 양고기는 텄겠고나!!! 타이밍 굿입니다. 오스나님 오늘 오전일정은 10점 만점에 9.999점 드리겠어요. 그나저나 아까 검투사가 어쩌고 우울했던 것은 어디로 간건지?


비는 30분여는 넘게.. 그것도 이슬비가 아닌 소나기의 형태로 세차게 내렸다. 여기 사막 맞지? 이렇게 비 와도 되는건지 그것이 알고싶다.



그럼 다음 코스로 출발해봅시다. 다시 박물관 찾아 삼만리를 시작할 차례. 에라이 못 찾으면 포기하고 그냥 집에가면 되는거임. 밥도 먹었고 하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시도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