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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나씨 Feb 18. 2022

주말 늦잠을 즐기지 못하는 너에게

자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너에게

이 한 줄이 대체 뭐라고.

제목만 적었는데 벌써 울컹해온다.

역시 시작하길 잘한 것 같다.

왜 지금까지 보듬어주지 못했냐며

이제서야 알아준거냐며 감격해 마지않는 너에게

첫번째 편지를 남긴다.





나는 네가 평일 내내 주말을 기다리며 산다는 것을 잘 알고있다.


너는 욕심이 많은 사람.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사람.


너를 위한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가구와 물건의 동선까지 계산해가며

시간낭비를 최소화 하려는 사람.

요리를 하면서 남는 시간 틈틈이

작은 설거지를 해치우는 것을 즐기고

밥을 먹을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항상 무언가를 해야하는 사람.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남는 시간에 대해

평일에는 그다지 보람차게 보내지 못한다고

항상 안타까워 하는 사람.

그래서 주말에는 꼭 할 것이라며

주말만 기다리는 사람.


너에게 있어 '보람차게 시간을 보내는 것'의 의미는

너를 위한 빨래를 하는 것도,

집안을 치우는 것도 아닌,

온전히 너의 의무를 벗겨낸 너만의 시간.

혹은 평범한 평일에는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해내는 시간.



평일에 아무리 칼퇴근을 한다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지가 않아.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란,

퇴근해서 샤워하고.

밥을 먹고. 치우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과 같은 집안일을 할테고.

그러다 보면 9시.

이후에는 멍하게 TV를 보거나

조금 부지런한 사람은 가벼운 운동을 하고

그러다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하다가

11~12시쯤 잠이 들겠지.


하지만 너는 그게 싫잖아.

의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잖아.

그래서 무언가를 평일에도 꼭 하고 싶으니까.

의미있는 것들을 찾아봤지만 몸은 안 따라왔지?

하지만 그래도...

그날의 지친 너를 위해

무언가 보상을 주고 싶은 마음에

혹은 하루종일 괴롭혔던 현실을 망각하기 위해

나 자신을 잃어버릴수 있는 정도로

강력하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왔지.

그렇게 그나마 찾은건 핸드폰 게임들.

수십년에 걸쳐 얻어낸 내 징글징글한 습관.


하지만 얼마전에 그랬잖아.

분명 게임을 하고 있는데

머릿속으로는 일 생각을 하더라?

그날 힘들었던 일을 되새김질 하고 있더라.

누군가 뱉었던 악독한 대사들이

머리속에서 반복재생 되고 있더라.

이제 약발이 떨어진거지.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체할만한 무언가가 없음을 알고는 더 절망하더라.

그래서 나도 너무 속상했었어.

아직도 그러고 있으니 더 속상해.



그런 너는 주말에는

의미 있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상상해.


여행도 갈 수 있을 것 같고

집앞 강변 산책도 가능할것 같고

글도 쓸 수 있을 것 같고

그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고

맛있는 요리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안마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는 것

평일에는 좀 처럼 들어갈 일이 없는 작은방에 들어가보는 것

옛날 일기를 보며 추억에 젖어보는 것

장식장을 예쁘게 꾸미는 것

빨래 그리고 행주를 삶아보는 것

청소기로 슥 미는거 말고 물걸레질을 해보는 것

피부과에서 각종 관리를 받아보는 것

트리트먼트를 바르고 10분정도 앉아있어 보는 것

잊고살고 있던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는 것

여유롭게 요거트에 꿀을 뿌려 천천히 음미하는 것

묵혀두어 어디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와플기계와

몇달 전에 사놓고 뜯지도 않은 와플믹스를 써보는 것....


모두 다 있을거라고 상상해.

아니 이런 상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의미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평일 내내 상상해보곤 해.


하지만 웃긴게 뭔지 알아?

네 주말 희망목록에는 언제나

'늦잠을 자는 '이 없어.

그나마 붙잡고 있는,

평일에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위안을 위해

기꺼이 늦은 새벽을 반납하면서도.

내일이 오는 것이 싫다고 자는 시간을 미루면서도.

일이 아무리 늦게 끝나도

너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주장하며

바로 침대에 눕긴 하지만 눈은 감지 않으면서도.



알면서 왜 묻냐고?

그래.

잘 알지.

일단 일어나고 나중에 졸리면 자면되지. 하는 마음.

주말인데 알람까지 맞추고 자더라?

자는 시간 아깝다고.


오늘 아침에 생각이 나더라고.


혹시 화장실 때문에 깨는 것은 아닐까?


나의 규칙적인 배변습관 덕분에

몸이 반응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말이야.

혹시 안 깨면 계속 잘 수 있지 않을까?

"해가 중천에 떴는데 왜 안 일어나?!"

나.. 이 멘트 들어본지 수십년이 지난것 같아.

대학생 이후로 들은 기억이 없네.


나 사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시작하게 되었어.

너무 말해주고 싶었어.

아주 대단한 법칙을 발견해 낸 것처럼

너무 신났어!

나 평소때는 잘 쓰지도 않는 노트를 꺼내서 메모도 했다.



자.. 이제부터 잘 들어봐.

금요일에는 과식하지말고,

특히 네가 가장 좋아하는 그거 있잖아.

그거 줄여야돼.

물.

위약금이 발생하게 될 것을 잘 알면서도

설치하고 말았던 정수기는 좀 잊기로 해.


아참 그리고 자기전에 미리 커텐도 쳐두고.

욕실에서 옆집 소음들릴수도 있으니 문도 꼭 닫고.


나는 있잖아..

그래서 네가 좀 한번 쯤은

엄한데 욕심부리지 말고 잤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주말에 하고자 했던 그것들

어차피 다 한번에 못 하잖아.

이번주는 좀 양보하면 어떨까?


너 지금 너무 지쳐보여.

일단 좀 내일은 늦잠을 좀 자보는게 어떨까?




잊지마.

금욜밤 10시 이후 취식 금지.

커텐 치기.

알람 끄기.

욕실 문 닫기.


그리고

혹시 깨도 다시 자기.



잠의 신의 축복이

그대에게 충분히 깃들기를..

시간을 더 갖고자하는

지옥에서 벗어나

건승하십시오.

두손모아 기원합니다.




2022.2.18

OSNA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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