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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나씨 Aug 30. 2024

회사에서도 여전히 언니병에 걸려있는 너에게

일은 일이야.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그동안 어쩌고 하는 얘기는 하지 않을게. 네가 미처 끝내지 못한 편지들을 흘낏 훔쳐보니 근황을 설명하더니 그냥 끝나버리더라. 또 그런 실수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리고 이번에는 이 주제에만큼만 집중해서 이야기해보기로 해. 밀리는 것들 때문에 찜찜해하고 뭐 또 이런 테마로 인해 지금 네 마음이 힘들다는 것은 아는데, 그건 다른 편지에서 얘기하기로 하고.


그래. 너는 지금 너무 두려워 하고 있어. 사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 두렵다는 것을. 후배와 업무분장 및 전반적인 생활태도와 관련된 아주 긴 대화를 해야 할 것 같기에. 부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그 누군가에게 지금까지는 반년이 넘도록 그대로 두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어. 어떻게든 이야기를 하고 설득을 해서 조직의 일원으로써 제대로 써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데? 이대로 계속 피할거야? 아니아니 그게 아냐.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것. 그래. 그거. 또 K장녀스러운 그런 생각. 제발 접어둬. 네가 해결해야 한다는 헛생각. 네가 데려온 사람이니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네가 어.른.이.니.까.어.른.스.럽.게.행동해야 한다고. 아 정말, 그런 생각따위 제발 하지 말란말이다. 이런 생각때문에 네가 지금 움직이려 한다면 그냥 그대로 있어라. 제발 그러지 말고 지금 네가 움직여야 하는 다른 이유를 찾아. 네가 이해하고 품고 가겠다는 그 거지같은 생각은 이제 제발 하지 말란말이다. 다시 주제와 조금 벗어나긴 하지만 유사한 맥락이니 잠깐 언급하고 넘어갈게. 너 후배들에게 한 소리하고 집에가서는 계속 속상하고 찜찜한 기분에 젖어 한 소리 들은 후배들보다 더 고통스러워 하는 거 있잖아? 그것도 마찬가지야. '네가 언니니까, 내가 누나니까 참고 품고 갔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기저에 깔려있어.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너는 할 말을 한거라고. 회사라고 여긴! 돈을 주면서 일을 시키는 곳이라고! 다친 영혼을 치료시켜서 내보내는 그런 복지집단이 아니라고! 그래 알고 있어. 너도 이런 부분이 속상하다고 표현하잖아. 하지만 수십년간 당해온 가스라이팅 덕분에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네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그래서 더더욱 힘든. 전형적인 인지부조화 상황.  '차라리 그냥 내가 하고 말지' 이런 류의 생각들 있잖아. 언제까지 그렇게 피해만 보면서 살건데? 그리고 나서 네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면서. 한켠에서는 억울함을 느끼고 있으면서!


아호 속터져 그냥 나 혼자 하고 말지!


과거 하극상을 부렸던 그 인간에 대한 기억도 잠시 떠올려봐. 그래. 너는 그때 그에게 잘해주고 싶었어. 겉돌고 있는 그가 안타까워서 어떻게든 사람들 속으로 끌고 들어오기 위해 나름 노력을 했지. 모두가 등돌린리고 있었던 그 상황에서 실제로 효과도 조금은 있었다고도 생각하고. 하지만 그는 그런 너를 이용했어. 함정을 파놓고 너를 기다렸지. 일부러 교묘하게 빡침 포인트를 벅벅 긁으며 화를 내게 해서 소리를 치게 만들었어. 여기서 느꼈던 그 배신감. 직장괴롭힘 신고까지 갈 뻔했던 끔찍했던 사건. 불과 1년전이야. 넌 그때 실패했다고 느꼈어. 그를 정상인의 범주로 돌려놓고 싶었지만, 그래서 최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선배답게 행동하고 포용해줬지만 완전 망해버렸어. 네가 그때 많이 힘들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다시 얘기할게. 그 어줍잖은 책임감, 언니병, 누나병 이런 것때문에 네가 책임지고 이 상황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제발 버려. 지금 너의 불편한 마음? 그것도 전부 이런 너의 인식때문에 발현된 것이라고 생각해. 위의 하극상 후배가 했던 행동들도 마찬가지야. 네가 누나답게 굴지 않아서, 좀 이해하고 더 보듬지 못해서 그가 그렇게 행동한 것이 절대 아니라고. 애초에 그들은 그런 누나다움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었어. 네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다 그들을 끌어안고 갈 수 있다는 헛된 망상을 버려.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사람들이 초등학생들이 그저 반장이라고 무조건 기대고 믿고 따르는 것 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면 그것까지는 아니어도 언니 혹은 누나의 카리스마를 휘두르며 모두에게 존경받기를 원하니? 정신차려!! 여긴 회사라고! 그래. 뭐 그런 존경이 있으면 뭐 나쁠 것이야 없지.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진심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그 존경조차도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얘기하겠지.


'어? 의외인데? 나는 별로 뭐 딱히 것도 없는데.' 


다시 말해 존경받는 사람들은 존경받기 위해서 억지로 억지로 본인의 신념이나 습관을 바꿔가면서까지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말이야. 지금 네가 하려고 하는 것처럼 한껏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애써 사람들을 품어가며 맘에 없는 행동을 하면서 노력하지는 않았다는 말이야. 실제 그렇지 않아? 얼핏 알지도 못하는 후배들이 너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을 했다는 얘기들을 전해들었을 때 네가 보였던 반응 말이야. '난 아이에게 그렇게 기억이 없는데?' 이런 류의 생각을 하지 않았어?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봐. 솔직히 마음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구. 우리 회사에서 원하는, 진정으로 존경받는 선배의 모습을 말야. 일단 첫번째 조건은 절대 화를 내서는 안되는거라고ㅋㅋ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모든 것을 포용하며 감내하는, 화가나는 일이 있어도 속으로 삭히고 절대 기분이 부정적인 감정은 나타내지 않는 포커페이스가 가능한 사람. 너는 이게 가능해? 화가나면 바로 티가 나는 사람이? 성질을 안 부리면 다행일 정도로 감정 컨트롤이 안되는 사람이지 않아? 사실 존경받는 선배의 조건에는 업무를 잘하고 스마트하고 이런 부분도 있긴 하겠지만 우리회사에서는 이 첫번째 조건이 절대적이라고! 다시 한번 물을게. 가능해? 아니잖아. 바로 답이 나오는 질문이잖아. 네가 그렇게는 절대 안 되니까 그런류의 사람이 무섭다고 한 적도 있지않아? 그러면서 무슨 네가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거야? 존경받는 선배? 그게 되기 위해 그렇게까지 되지도 않는 걸 힘들게 노력해야해? 그러면 편해? 좋아?


그래 내가 가르쳐줄게 나만 잘 따라오렴~ 존경스러운 선배가 되어줄게


그러니 포기해. 좋은 선배가 억지로 되기 위해 애쓰는 것 말야. 어릴적 되고 싶었던 '착한아이가 되어서 어른들에게 칭찬받기.'에 대한 연장선상이 아닐까? 실제 착한아이에 대한 고민은 수년간 해왔고, 그것이 네 정신건강에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는 이미 판단이 끝났잖아. 극복하려고 애써왔고. 같은 이유야. '존경받는 선배'도 마찬가지야. 억지로 남들 시선때문에, 남들 평가때문에 마음에 없는 행동들을 의무감에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순수하게 접근하라는 거야. 언니나 누나역할을 하기 위해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지는 말라는 거야. 실제 그런 마음때문에 너는 부담을 느끼고 겁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 과정에서 또 부딪칠지 모르는 동생들과의 갈등. 그들에게 존경받아야 한다는, 아니 존경까지는 바라지도 않지, 그저 윗사람으로서의 존중을 바라지만, 그것이 되지 않았을때 느껴지는 상실감 혹은 너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두려운 거야. 그것이 두려워서 조금이나마 타격을 적게 받기 위해 성질을 죽여서 달래가며 관대한 언니나 누나인 척 연기를 하고 있을 네가 짠하다. 그러니 결론을 내려줄게. 네가 요새 다짐한 그대로. 일은 일이야. 모든 감정을 빼고 이성적으로 봐. 사람들과의 관계와 관련된, 특히 좋은 언니, 좋은 누나, 좋은 선배와 같은 평가와 관련된 그런 요소는 다 걷어내보라고. 지금 너에게 닥친 그것. 너의 의무. 팀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 그것만 생각하는건 어때? 넌 지금 그런 위치의 직급이잖아.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려고도 하지마. 이런 성격의 사람이라 '이렇게 생각하겠구나' 하면서 이해할만한 껀덕지를 찾아서 대입하는 것도 그만하라고. 그런식의 배려는 너에게 이제 불필요한 일이야. 자연스러운 이해도 아니잖아. 그저 조금이라도 덜 다치게 하기위해 억지로 억지로 하는, '착한척'을 위한 이해일 뿐이잖아. 그런것 보다는 일단 네가 최우선으로 삼아야할 목표, '일이 되게 하는 것'에 집중해. 그들이 해야하는 의무에 대해 생각해. 차라리 이해가 되지 않는데도 이해가 된다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차라리 괜찮을지도 몰라. 굳이 네가 모든 이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득도의 경지에 이르도록 끼워 맞추는 것보다는 백번 천번 낫다고! 어쨌든 이건 '일이 되게 하는 방법'일 수도 있으니까.



그래 일단 뭐 일은 해야하니까 모여보시죠



물론 어떠한 업무를 배정해야할 때 그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맞아. 하지만 그 상황에서 상대방이 너보다 동생이라는 이유로, 후배라는 이유로 일정부분은 언니인 네가, 선배인 네가 책임져야겠다고 과한 포용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만하란 말이다.

일단 한번 해보자. 상대방이 마음을 다쳐도 그건 어쩔 수 없어. 그리고 그건 그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감내해야 하는 일이야. 다시 말하지만, 네가 아까 했던 말 있잖아. 여긴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곳이라고. 케어해 주는 곳이 절대 아니라고 했잖아. 본질을 바라보자. 그래. 여긴 회사다. 너의 위치는 부하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보듬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일단 일이 돌아갈 수 있도록 컨트롤 하는 사람이다.




자 그럼, 잘 적용해봐. 믿고 있을게.

나는 정말이지 항상 네 마음이 어떤 상황에서건 최소한으로만 다쳤으면 좋겠어.

남을 배려한답시고 너를 다치게 하지는 말아.

그 배려는 정말 너를 배려해주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게 넣어두길. 



2024. 8. 30. 

오스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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