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찜함의 근원을 항상 찾고 있는 너에게

'왜?'냐고 묻지 마세요.

by 오스나씨

너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무언가 찜찜함이 느껴질때마다 근원을 찾는다. 사실 명분은 확실하다. 근원을 알아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 어쨌든 찜찜함은 부정적인 감정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단 그것이 뭔지를 명확하게 파악을 해야 긍정적인 감정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 이게 어설프게 상담 공부를 했기에 발생하는 부작용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기분이 안 좋아질때면 항상 "왜?"를 생각한다. 어제도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계속 그러더라. 대체 네가 왜 그러는지 늘 그렇듯 그 이유를 구했다. 찜찜함을 조금이라도 빨리 떨치고 싶기 때문이었겠지? 그 생각의 흐름은 어제 오늘 내내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회사에 뭔가 걸리는 일이 있던가? 그 문서 대체 부사장님은 결재를 왜 안해주시는 거지? 어제 있었던 워크숍에서 면박을 당한 것 때문인가? 당장 토요일에 출발하는 세부 여행 계획을 짜지 않아서? 지난주에 널어둔 빨래가 그대로 놓여있을 정도로 게으르게 굴어서 오는 너 자신에 대한 책망?


그래, 이렇게 그 근원을 알았다고 치자. 어떻게 풀건데? 이유를 알았으니 하나하나 해결해 보겠다고? 그래 빨리 풀어버리고 산뜻한 마음으로 네 생활에 임하는 거야! 1분 1초가 급해. 이런 감정따위 가지고 있어봤자 도움이 안 되거든! 그래 움직여봐! 부사장님한테 귀찮음을 깨고 부사장님실까지 찾아가 문서를 결재해달라고 부탁을 드려. 어제 면박을 줬던 그 선배에게 당장 왜 그랬냐고 한마디 해. 여행계획이 급하니까 오늘 일이고 뭐고 일단 그것부터 해. 오늘 휴가 내고 빨래도 걷고 집안일을 좀 해. 이러면 다 해결이 되서 찜찜한 감정은 모두 사라져버리겠다. 그치? R u happy?


아니 근데, 그렇게 해서도 그 감정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그러면 너는 혼란을 겪겠지? 이게 아니었어. 다른 근원이 있었어. 대체 그게 뭐지? 너를 감싸고 있는 이 부정적인 오로라가 대체 어디서 뿜어져 나온 것인지 다시 찾고 있겠지. 아니 근데, 그 사이에 또 다른 이벤트들이 생겨서 네가 생각한 경우의 수들이 오염되어 버렸다면? 혹은 그 사이에 범접할 수 없는 더 끔찍한 일이 생겨버렸다면? 다시 처음부터? 아니 그러다가 또 다른 일들이 생겨서 다시 또 처음부터 돌아가야 한다면? 그리고 최악은 네가 뭔가 해결하려고 움직였던 것들로 인해 또 다른 찜찜한 일이 생겨버린다면? 그렇게 그렇게 계속 된다면? 평생 고민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은거냐?




후.. 그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근원을 찾아서 해결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야. 좀 세게 말하면, '작작'하라는 거야. 이렇게 이래라 저래라 공식처럼 얘기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 말해볼게.


일단 좀 나눠봐. 이 찜찜함의 정도가 네가 버텨낼 수 있는 것인지, 혹은 아닌 지. 지금 네가 하는 것을 보면 1%의 찜찜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것 처럼 보여. 아니 근데, 어떻게 그걸 다 해결하면서 살아? 가끔은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되는 것도 있는 것일텐데. 많이 경험했잖아. 감정이 강하게 지배하는 밤의 시간동안 엄청나게 고민했던 것들이 자고 일어나면 그 강도가 많이 약해져 있었던 것. 그런 것들은 굳이 그 근원을 찾아서 '아! 이거 때문에 이랬구나!'라고 진단을 내릴 필요가 있느냐는 거야.


진단이 꼭 좋은 것 만은 아니야. 손가락에 뭔가 통증이 생겼다고 쳐. 이게 뭘까? 하던 시점에는 큰 충격이 없다가 갑자기 종이에 벤 상처를 발견하는 순간 더 아파지지 않았어? 마음의 상처를 진단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봐. 아무렇지 않은 것인 줄 알았는데 확인하고 나서 '나는 원래 이런사람인가.....' 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은거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굳이 끄집어내지 않아도 될 것까지 온갖 것들을 다 꺼내놓는 바람에 부정적인 감정은 점점 더 불어나지 않았어?


모든 진단을 하지 말라는 거냐고? 넌 애가 왜 그렇게 극단적이냐? 경중을 갈라보라고 했잖아. 심한 정도의 것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그렇게 심한 정도의 찜찜함은 굳이 진단을 하지 않아도 그냥 알지 않아? 대체 왜 이렇게 힘든걸까? 하면서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거라고. 그리고 그때는 상담센터를 찾아가든 주변인에게 도움을 구하든 그건 무조건 해야되는 거고! 근데 지금 너는 별 것도 아닌데 지금 굳이 이런 프로세스를 타려고 하는 거잖아. 이것 자체가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어? 그리고 '이유없는 우울감'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것도 인정 못할껄? 자꾸 뭔가를 찾으려고 들어. 이래서 그런건가? 저래서 그런건가? 결국 답이 없으면 호르몬까지 끌어다가 쓰면서 결론을 내려고 애쓰는 것 같아. 아니 근데 그렇게 진단하고 나서는 어땠어? 그냥 핑계로 쓰지 않았어? 내가 찜찜한 것은 ㅇㅇ때문이다, ㅁㅁ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우울해도 괜찮다).... 라고. 네가 끌어낸 근원들은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야. 납득을 할 수 있었다고? 아니 그렇게 납득을 해서 뭐가 어떻게 되었는데? 해결...? 정말 되었다고 자신해? 그 납득을 위한 확인 사살을 하는 바람에 네 안의 찜찜함은 이제 더 강해져버렸다고.



결론적으로 나는 찜찜함을 해결하려고 애쓰기 보다 일단 견딜 수 있는 것은 감내하는 능력을 길러내기 바란다고 말하고 싶어. 그 의미 없는 프로세스를 탈 시간에 글이라도 한 글자 더 쓰고 진짜 도움되는 생각을 더 하는 것이 훨씬 너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이야. 쳐낼 수 있는 것은 바로바로 쳐내. 물론 생각의 흐름을 네가 100% 조종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뭔가 깨닫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참으로 다행이다. 그래, 이런 생산적인 생각을 하란 말야. 찜찜함을 너에게 준 그 근원들을 생각하며 너의 찜찜함을 곱씹는 것보다 이게 훨씬 낫지않아? 동의하면 그렇게 하는거야. 화이팅!




2025. 9. 30

OSNA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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