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과 인정의 기준 찾기
예전에 한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였다.
투자를 막 유치한 직후였고 사무실 분위기는 고조되어 있었다.
기사도 나왔고 업계 커뮤니티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소위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겉으로 보면 분명 성장처럼 보였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조직 내부에서 다른 대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매출 구조는 여전히 불안했고 신규고객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고
현금 흐름에 대한 논의는 점점 무거워졌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정말 성장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걸까.
그때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인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온다.
그리고 생각보다 쉽게 얻어질 때도 있다.
투자 유치 소식은 조직을 흥분시킨다.
기사 한 줄은 팀의 사기를 끌어올린다.
대표도 안도한다.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정은 외부의 기준이다.
성장은 내부의 기준이다.
투자를 받았다고 해서 수익 구조가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사에 실렸다고 해서 고객의 충성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외부의 기준이 의사결정을 이끌기 시작하면
조직은 조금씩 방향을 잃는다.
이 사업이 단단해지고 있는가를 묻기보다
이 사업이 매력적으로 보이는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직의 체질을 바꾼다.
이미지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체력은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그 조직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었다.
이미지가 먼저 커지면 조직은 속도를 내려고 한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내부의 균열은 보이지 않게 덮인다.
하지만 체력이 없는 상태에서의 확장은
조금만 흔들려도 무너진다.
그래서 지금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면
항상 이 질문을 먼저 꺼낸다.
이 선택은 우리의 내실을 두껍게 만드는가
아니면 우리의 외형을 크게 만드는가.
지금 우리가 기뻐하는 숫자는 지속 가능한 지표인가
아니면 보여주기 좋은 지표인가.
스타트업에서 보낸 시간은
나에게 한 가지 기준을 남겼다.
성장은 조용하다.
인정은 시끄럽다.
박수는 빨리 온다.
내실은 늦게 쌓인다.
지금 우리는 박수를 받고 싶은가
아니면 오래가고 싶은가.
이 질문에 솔직해질 수 있을 때
조직의 방향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때부터
성장은
인정과 상관없이 쌓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