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했다.
'정해진 길을, 남들이 원하는 길을 찾아왔는데, 만족스럽지가 않아'하는 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대충 꿀 빨면서 잘 살 줄 알았으니까.
난 평생에 꿈이란 게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대체로 없었고, 먹고 싶은 것도 대체로 없었다. 시키는 건 뭐든 했고, 같이 먹는 건 뭐든 잘 먹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따라가면 되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 결과는 '평범한 행복'정도였을까.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누렸다.
특출 난 재능도 없는데 1인분 할 수 있는 곳을 찾은 게 얼마나 다행이고 즐거운 일인가. 하루를 보람 있게 보내고 퇴근해서 누리는 휴식도 좋았다.
하지만 어느샌가, 마음속 깊은 곳에 딴생각이 비집고 나와 나에게 말을 붙였다.
[삶의 의미를 못 느끼겠어.]
"뭘 어쩌고 싶은 건데?"
[그건 모르겠어.]
"네가 하고 싶은 건 뭐야?"
[모르겠어... 근데 적어도... 지금 이런 삶은 아냐.]
'모르겠다'라는 말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하고 싶은 게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아니. '적당한 조건의 하고 싶은 것'이 없을 뿐이었다.
실은, 음악을 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머릿속에 음계가 굴러다니는 그런 재능이 없는걸? 그래 포기.
실은, 작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책도 제대로 읽지 않는걸? 그래 포기.
실은,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 하지만 이 나이로? 그래 포기.
아니 아니 실은, 철학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니 전공 학점을 생각해 봐. 응 그래! 포기!
그런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다 시작도 하기 전에 뇌내에서 포기해 버린 것뿐이다.
사람들의 '꿈'이라는 건, '재능'이라는 건, 다 타고나는 거라는 환상에 사로잡혀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꿈을 좇는 사람들은 타고난 듯한 열정의 불꽃이 보였으니까.
음악을 하겠다던 친구도, 작가가 되고 싶었던 친구도, 경기를 치르는 운동선수들도, 철학을 깊이 사랑하던 교수님도 모두 늘- 꿈 앞에서 뜨거워 보였으니까. 나도 그런 꿈이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뜨거운 사람이 아니었다.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정도로 좋아하진 않으니까.' 저렇게 타오르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꿈을 가져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재능도 없고 그다지 열정도 없으니까... 물론 맞는 말이지만, 전제가 틀렸다. 내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열정이 있는지 없는지를 제대로 확인해 본 적이 없었던 거다. 정주영 회장의 말마따나... '자네... 해봤어?'
온갖 변명을 앞세우며 삶이 의미 없다고 한탄하는 못난 모습을 버리기로 했다. 나를 막아설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내 삶을 처음부터 다시 스케치해도 된다. 그런 생각이 들자 눈이 반짝 뜨이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주 어린아이가 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마치 데카르트라도 된 것처럼 마음속에 있는 모든 변명들과 조건들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그리고 물었다. 내가 만약 10살이라면, 내가 만약 5살이라면, 아니, 다시 태어났다면, 뭘 하고 싶으냐고. 그걸 지금, 바로 하자고. 거기서부터 의미를 찾아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