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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고치는 달팽이 Mar 15. 2023

19년간 불안장애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부터

 나는 불안장애와 우울장애를 가지고 있다. 불안장애에는 범불안장애부터 고소공포증 같은 것들까지 포함되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사회공포증, 강박장애,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다.

사회공포증: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거나 바보스러워 보일 것 같은 사회 불안을 경험한 후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정신과적 질환


 사회공포증이 나타난 건 12살 때 따돌림을 겪으면서부터인 것 같다. ‘같다’라고 하는 이유는 그때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해서 진단받은 게 없기 때문이다. 그때즈음부터 사람과 대화하는 걸 무서워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병적으로 두려워했기 때문에 추측할 뿐이다. 사실 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무서워해 혼자 다녔지만 그게 그냥 기질적으로 불안이 많아서 그런 건지 사회공포증이었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다른 질병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도 유전적 영향이 큰데, TCI 검사* 결과 나는 기질적으로 불안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다. 엄마와 외할머니 역시 굉장히 타인을 의식하고 불안 성향이 높은 걸 봐서는 나 역시 어릴 때부터 그런 성향을 보였을 것이다.


 부비동염(축농증) 때문에 맨날 콧물을 흘리고 다녀서 초2 때부터 더럽다고 따돌림을 당했는데, 그 여파가 나중에 터진 것일 수도 있긴 하다. 여하튼 부비동염은 중1 때까지 나를 괴롭혔고, 좀 괜찮아진 이후에는 벌써 사회공포증이 심해진 상태여서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 결국 중학생 때까지는 이상한 애로 손가락질받거나 면전에서 무시받으면서 끔찍한 학창생활을 보냈다.


강박장애: 강박장애는 강박 및 관련 장애의 하나로서, 강박적 사고 및 강박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질환이다.


 강박장애는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불안 때문에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과 완벽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병이라고 인식한 적이 없었다. 내가 강박장애를 심각하게 여기고 병원을 찾은 것은 2019년부터이다.


 2018년 말부터 내가 원치 않는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이미지들이 생각을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 생각을 막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떠올랐고, 누군가를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급기야는 밖으로 나가는 것도 tv를 보는 것도 두려워질 정도였다. 끔찍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나 자신 때문에 죄책감이 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중에 쓰겠지만 도저히 나 자신을 좋게 보려야 볼 수가 없는 상황에서 상담을 받아도 암울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약을 몇 년간 꾸준히 먹어 꽤 호전된 상태지만 방심하면 나타난다. 그리고 일할 때 강박적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증상은 강박장애의 일종인지, 또 나타날 것인지 취직을 하고 다뤄봐야 할 것 같다.


공황장애: 공황장애는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 즉 공황발작이 주요한 특징인 질환이다.


 내가 공황증상이 있다는 건 정신과에서 대기하면서 알게 되었다. 정신과는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이 많다. 그리고 대기시간이 길다. 심하면 두 시간씩 기다리기도 한다. 어느 날 한 시간 넘게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숨을 들이켜려고 해도 숨이 쉬어지지 않아 당황스럽고 공포스러웠다. 처음에는 다른 병인가 했는데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니 공황증상이라고 하셨다.


 처음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이제 하다 하다 공황장애까지 오다니 하고 낙심했지만, 약이 차도를 보이면서 그런 증상은 사라졌다. 하지만 정신질환들은 서로 엮여있기 때문에 불안이 심해지면 다시 올라올 수도 있다.


우울장애: 의욕 저하와 우울감을 주요 증상으로 하여 다양한 인지 및 정신 신체적 증상을 일으켜 일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질환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은 우울장애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음.) 나는 불안에 대해서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대학 입학하고 나서 심리검사를 한 후에야 우울 수치가 높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울 증상이 너무 오래돼서 그냥 내 성격이 부정적인 탓이려니 하고 넘겨왔던 것이다.


 학교생활, 사회생활을 할 때 우울보다는 불안 때문에 지장을 겪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상담에서 처음에 호소한 것도 불안에 대한 것이지만, 나중에는 우울감이 심해져 함께 다루게 되었다. 항우울제는 정신과에 처음 갔을 때부터 계속 먹고 있다.




 모든 병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신질환은 그 증상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받지 못하고 개인 탓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나만 해도 주위 어른들에게 네가 나약해서 그런 거라는 말을, 선배들에게는 성격을 고치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누구보다 나를 고치고 싶은 건 나였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발표 2달 전부터 발표 생각만 하면 숨이 막혀서 제일 괴롭고 피해를 보는 건 나였으니까.


 굳은 마음을 먹고 한 패밀리 레스토랑 알바를 2주째 되는 날 못 하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메뉴를 소개해야 한다는 게 무서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매니저님의 실망이라는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주말 빵집 알바를 할 때는 알바 생각에 주중 내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친구를 만났는데도 도저히 얘기에 집중할 수 없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공황 증상이었나 싶기도 하다. 결국 그 알바도 3달 만에 그만뒀다. 나는 분명 아무 직업도 가지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아사할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상담, 정신과, 심리학, 뇌과학 분야의 책, 팟캐스트, 유튜브를 뒤졌다. 처음에는 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치료법을 보거나 나아졌다는 사람을 봐도 희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난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면? 나는 결함이 있는 존재라면?'이라는 공포감이 들었다. 절대 낫지 않을 거라는 절망이 시시때때로 나를 덮쳐왔다.


 누군가는 나에게 네가 절박하지 않아서 일을 못 한다고 하는 거라고 했다. 그 말에도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더 절박하려면 뭐 어떡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으니까. 불안장애는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수치로 보여줄 수도 없고 나 스스로도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그런 병이었다.


1. TCI 검사: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기질'과 후천적으로 발달되는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자기보고식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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