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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고치는 달팽이 Apr 01. 2023

나의 첫 심리 상담

내가 다음 상담 예약을 한 이유


 2018년 4월,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이었다.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쯤 걸리는 심리상담센터에 도착했다. 이 상담센터에는 임상심리전문가와 상담심리전문가가 있었고 나는 상담심리전문가에게 예약을 한 상태였다. 그전에 알아본 바로는 임상심리전문가가 병을 검사하는 데 더 전문인 것 같아서 임상심리사에게 상담을 받아야 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카운터에 직원이 두 명이나 있고, 바로 옆에 손님들이 있으니까 긴장돼서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찍 도착해서 상담을 기다리는데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위가 쥐어짜듯이 아팠다. 상담을 하기 싫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예약한 시간에서 5분이 지나도 날 부르지 않아 카운터 직원분께 내가 11시 예약이 아니냐 물었더니 '앞사람이 늦어서 20분 늦을 것 같다'라며 죄송하다고 했다.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에 열이 받았지만 그냥 알았다고 했다. 내 완벽주의 때문에 괜히 화가 나는 건지, 화가 날만한 합당한 상황인데 사회불안장애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첫 상담은 그렇게 뒤숭숭하고 좋지 않은 기분으로 시작했다. 20분 뒤 상담 선생님이 밖으로 나오셔서 편하게 웃으시면서 나를 맞이하셨다. 선생님을 따라 상담실로 가니 긴 소파와 커다란 쿠션 몇 개가 보였다. 그 앞에는 메모지와 휴지가 올려져 있는 낮은 탁자가 있고 맞은편에 선생님이 앉으실 소파가 있었다. 방에서는 잔잔한 향초 냄새가 났다.


 우리가 자리에 앉은 후 선생님은 시간을 확인하고 기록지에 날짜를 적으셨다. 첫날이라 안전과 비밀 유지에 대한 서약을 했던 것 같다. 그 뒤 선생님은 상담을 왜 왔는지 물어봤고, 나는 더듬더듬 말을 시작했다. 미리 말하려고 생각했던 건 기억도 안 났지만 어느 순간 술술 말하고 있었다.


 어릴 때, 온 시댁 식구들과 5~10분 거리에 살던 엄마가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던 것. 딸이라 차별받은 걸 나와 남동생을 차별하면서 똑같이 반복하던 것. 차마 선생님 앞에서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정서적 학대. 그걸 알면서도 나에게만 참으라고 했던 아빠. 그때 느꼈던 배신감. 정상적인 가정이라고 보이고 싶어서 그럴 거라는 추측과 증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신기하게도 내가 얘기해보려 했던 것들을 어느 정도는 말하긴 했더라.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말할 때는 눈물이 났다. 상담을 여러 번 해서 이제는 내 얘기를 해도 눈물이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번에도 상처를 받을까 봐 미리 마음 열지 않을 준비를 하고 잔뜩 가시를 세우고 경계했는데 그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그동안 아무도 내게 하지 않았던 말을 했다. '아빠,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다.'라고. 나조차도 그 당시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내가? 나는 그냥 나를 이해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또, '어떻게 버텼어요? 힘들었을 텐데. (버티는) 그것도 힘인데.'라고 하셨다.


 첫 상담일 뿐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상담이랑 다르다는 걸. 공감받고 지지받는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내가 생각해 보지 못 한 관점을 제시하셔서 놀라웠다. 고등학생 때 얘기를 했는데, 나는 대안학교를 간 상태였고 부모님이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로 입시 준비를 하는 것에 저항을 심하게 느꼈었다. 내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고개를 숙이는 게 비겁하다고 느꼈지만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부모님과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안 그래도 갈등이 심각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내가 같은 가치로 싸운 거라고 말씀하셨다. 공부를 안 하는 것 즉, 억압과 지시에 반하는 것도 자유를 추구한 것이고 부모님이랑 싸우지 않는 것도 안정 속에서 자유를 누리기 위함이었다고. '불안 vs 반항'이 돼서 계속 괴로웠던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둘 중의 하나만 있으면 남들에게 맞춰주거나 반항하거나 해서 더 편했을 것이라고. 나는 이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핵심을 잘 잡아내신다고 느꼈고 상담이 재밌게 느껴졌다.


 그 외에도 내 얘기를 들으며 나에겐 자유, 따뜻, 안정, 재미라는 가치가 중요한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그런 단어들을 자주 쓰는 것도 몰랐을뿐더러, 그런 가치는 누구에게나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서 그 말이 신기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상담의 목표를 말하면서 첫 상담은 끝이 났다. 그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내 마음속 깊이 남아서 힘들 때 자주 생각하곤 했다.


 "달팽씨는 지금까지 화살이 막 날아오니까 방패를 크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 같아요."


 우리의 목표는 방패로 화살을 막는 게 아니에요. 방패를 내려놓고 내 갈 길을 가는 거예요. 화살은 엄마, 아빠가 바뀌지 않는 한 계속 날아올 거예요. 방패가 커져도 구멍은 남아있을 거예요. 부모, 환경이 어떻게 되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길을 가요.


 나 역시 주변이 어떻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기에 선생님이 내가 바라는 걸 너무 정확히 말해주셔서 놀랐다. 들어가기 전의 불안이나 불만은 온데간데없이 이번 상담은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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