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되면 오매불망 기다린다는 휴가. 그 기다림 속에는 설렘과 희망이 가득 담겨있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합법적'으로 회사를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으로 휴가일만 기다린다. 올해 나의 여름휴가 계획은 크게 정해진 게 없다. 너무 덥기도 하고 성수기에 굳이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없달까. 이제는 어마어마한 물가와 엄청난 인파들을 뚫고 돌아다닐 만큼의 체력이 사라진 것 같다.
8년 차 직장인으로서 지난여름휴가를 돌아본다. 일본(오사카, 후쿠오카, 교토, 도쿄, 대마도) 홍콩(마카오), 대만(타이베이, 가오슝). 대부분 해외였다. 그리고 거의 맛집 위주로 먹는 여행을 다녔다. 쉽게 갈 수 없는 해외인 만큼 그때는 최대한 다양하게 먹어보고 가야 한다는 마음이 컸고, 한입이라도 더 욱여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푹푹 찌는 더위에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2017.07.21 - 대만 진과스, 지우펀
지난여름휴가를 되돌아보면 내겐 '쉼'이 없는 ‘쉼’에 더 가까웠다. 직장인에게 휴가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걸 떠올리면 피곤해도 '핫플레이스'는 한 곳이라도 더 가야 했고, 유행하는 맛집은 한 시간을 웨이팅 하곤 했다. 사실 내가 원해서라기 보단 같이 간 상대방에게 대부분 맞추다 보니 무리한 것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이러한 휴가가 쉼과 재충전의 시간이 될 수 있으나 그 반대의 성향을 가진 내게는 쉼과의 거리가 멀다.
작년 봄, 나는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하고 깨달았다. 휴식을 할 때는 온전히 쉬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는 그 시간이야 말로 내게 필요했던 쉼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휴가를 가게 된다면 세련된 도시보다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휴양지 위주로 다녀보고 싶다. 빡빡한 일정이 아닌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일정으로 휴식을 취해보고 싶다.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펴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다멍을 때리는 상상을 하면 벌써 힐링된다. 고요한 바다에 덩그러니 놓인 내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지난 우여곡절의 시간들을 잘 버텨내고 난 또 이 평온함을 만끽하는구나'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그려진달까. 그렇게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다가 눈에 띄는 곳이 없다면 치킨에 맥주 한 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나에겐 진짜 '휴식'이다.
등산 후 바다를 바라보며 노릇하게 익은 삼겹살과 함께 얼음잔에 가득 채워진 시원~한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는 것, 침대에 누워 바다 위로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가지는 것, 같은 장소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나와 어떤 인연이길래 여기에 있을까?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휴가지에서 할 수 있는 익사이팅한 체험을 하며 경험치를 쌓는 것, 처음 보는 사람과 서로 속얘기를 주고받으며 좋은 추억을 남기는 것이야 말로 내가 원하는 휴가이다.
올여름은 휴가를 가지 않는 대신 가을에 제주도에서 조금 늦은 휴가를 보내려고 한다. 사실 가을에 가려면 지금 비행기표와 숙소를 다 예약해둬야 하지만 최근 급 지출이 많아지게 되어 망설이고 있는 상태. 그래도 제주도를 간다면 꼭 혼자 가고 싶고 나만을 위한 자유로운 진짜 ‘쉼’을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