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은 정신체였다.
반투명한 그들의 신체는 아파트만큼 거대했다. 인류는 외계인을 눈으로 볼 순 있었지만, 만질 순 없었다.
하지만 외계인은 달랐다. 그들은 인류에게 물리력을 행사할수 있었다.
“끼야아악!”
“끄아아악! 놔! 놔!”
“엄마아!”
외계인의 반투명한 거대한 손이 바닥을 쓸며 사람들을 한 움큼 움켜잡았다.
그 손. 여섯 개의 손가락은 관절이 족히 스무 개는 되어 보였고, 말린 오징어의 다리처럼 비효율적으로 길었다.
그 손은 마치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 한 뭉치를 잡아 빼어 쥐듯, 사람 한 뭉치를 세워 들었다. 손아귀 위로 늘어선 사람들의 머리는 꼭 콩나물 대가리들 같았다.
스무 명은 됨직한 사람들은 뼈마디가 으스러질 정도의 압력으로 서로를 향해 눌려 있어, 도저히 빠져나올 틈이 없었다.
횡액을 피한 지상의 사람들은 공포감과 안도감, 그리고 애도의 마음으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그들은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무엇도 외계인을 막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비명과 절규가 크게 메아리쳤다. 그러나, 그 모든 소음을 씹어 먹는 외계인의 음성이 곧 울려 퍼질 것이었다.
외계인의 심판이 시작된 것이다.
외계인은 다른 손의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20여 명의 사람 중 한 명의 머리를 꼬옥 집었다. 그러고는 위로 들어 올렸다.
[푸르스마.]
뿌직!
장엄한 외계인의 음성이 울려 퍼지며, 콩나물 대가리 뽑히듯 사람의 머리가 뽑혀 나갔다. 주변으로 흩뿌려진 피 분수에 손아귀 속 사람들의 비명은 더욱 거세어졌지만, 외계인의 손가락은 아랑곳없이 다음 머리를 선택했다.
[푸르스마나스.]
뿌직!
지상의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반투명한 외계인의 신체를 통과하여 떨어지는 피의 비를 피해 달렸다.
손아귀 속 모든 머리가 분리될 때까지 외계인의 심판은 계속되었다.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
곧 외계인의 손아귀에서 아무런 소리도 울리지 않게 되었다.
떨어지는 핏물은 비를 넘어, 쥐어짜진 레몬즙처럼 뚝뚝 떨어져 바닥을 붉게 페인트칠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콩나물과 달랐다. 외계인은 사람들을 콩나물처럼 잘 다듬어놓고, 기껏 다듬어놓은 손아귀의 신체들을 미련 없이 바닥으로 털어버렸다.
그리고 외계인은 나타날 때와 똑같이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외계인은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등장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의 벌어진 입이 채 다물어지기도 전에 그곳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외계인의 등장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인류는 저항했다. 하지만 외계인에게 저항할 방법은 없었다. 그들은 정신체였던 것이다. 불공평하게도 인류는 그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총칼도 통하지 않았고, 열 공격, 음파 공격, 심지어 퇴마와 주술과 같은 초자연적 공격마저 시도해봤지만, 어떤 성과도 볼 수 없었다.
끝내 사람들은 외계인을 하나의 자연재해로 받아들였다.
외계인은 불규칙적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나타날 때도 있었고, 하루에 10여 곳에서 동시에 등장할 때도 있었다.
지하도 안전하지 않았고, 하늘 위 비행기도 안전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그들은 공기 중으로 갑자기 나타났으며 심판을 끝내면 나타날 때처럼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인류는 그들의 규칙을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가장 중요한 그들의 습성을 파악했다. 그들은 항상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등장했다. 대형 마트, 콘서트장, 스포츠 경기장, 영화관, 시위 현장, 학교 등등…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류의 생활은 재편되었다. 모이는 행위를 극도로 피하게 되었다.
스포츠나 콘서트 같은 문화 공연이 사라졌고, 대형 마트나 번화가도 점점 사라졌다. 큰 군대가 사라지고, 큰 전쟁도 사라졌다. 대형 공장과 빌딩형 대기업도 사라졌다. 학교 역시 모두 사라졌으며,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되었던 인구밀도도 전국적으로 고르게 퍼졌다. 인류는 극도로 점조직화되어갔다.
인류 최초로 발전이 멈춘, 어쩌면 역행에 가까운 시대가 도래했다.
흩어진 사람들은 점점 검소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꼭 필요한 것들만 자급자족하였고, 불필요한 낭비는 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로, 인류는 지구를 넓고 고르게 아껴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외계인을 추종하는 종교도 생겼다. 외계인의 행동에 심판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외계인으로 인해, 지구를 좀먹던 인간들이 자연 친화적으로 변하여 지구와 공존하게 되었다는 주장이었다.
사람들이 외계인에게 가장 궁금해했던 질문에 대해, 그들 종교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분들의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는 죄의 무게를 뜻합니다. 저희 종교는 그분들께 심판받은 사람들을 연구했습니다. ‘푸르스마’에 죽은 사람들이 ‘푸르스마나스’에 죽은 사람들보다 범죄자가 더 많았습니다.‘푸르스마’로 죽은 사람들은 지옥에, ‘푸르스마나스’로 죽은 사람들은 천국에 갈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의 주장은 배척됐다. 유가족들부터가 그들을 격하게 증오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궁금하긴 했다.
도대체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는 무슨 뜻일까?
오직 그것만이 외계인이 인류에게 전하는 유일한 메시지였다.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에 대해 수많은 추측과 억측, 연구와 논문이 쏟아졌다.
어떤 과학자는, 외계인은 정신체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면서 정신을 먹는데, 그것이 정신을 씹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철학자들도 많은 생각을 했다.
‘삶이란’, ‘무엇이냐’.
‘깨달은 존재’, ‘깨닫지 못한 존재’.
‘존재의 가치’, ‘존재의 무가치’.
종교인들도 많은 해석을 내놓았다.
‘인류가 지은 죄를’, ‘사하노라’.
‘벌레로 다시 태어나거라’,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거라’.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주장을 내세우며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이 가진 호기심의 힘은 강력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고…
철학자, 종교인, 과학자가 힘을 합쳐 드디어 소리를 번역하는 기계를 발명했다.
소리가 담은 본질, 목적, 파동 자체를 번역하는 기계였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의 소리는 물론, 동물의 소리도 완벽하게 번역해냈다.
다만, 그 기계는 녹음된 소리로는 작동되지 않았고, 실제 현장의 음성만을 번역할 수 있었다.
곧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순교자를 자원했다. 30년간 품어온 인류 최고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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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운동장 중앙에 순교자를 자원한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지난 30년간 인류가 품어온 궁금증을 해소할 그날이 온 것이다.
운동장 외곽을 둘러싼 8대의 카메라가 중앙을 비추고 있었고, 그곳에서 찍은 영상이 전세계로 생중계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가운데, 드디어 외계인이 공기 중에서 나타났다.
순교자들은 눈을 질끈 감았고, 곧 외계인이 손을 크게 휘둘러 순교자들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어쩔 수 없는 비명과 절규가 쏟아졌지만, 눈을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 현장의 사람들, 안방에서 TV를 보는 사람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상황을 직시했다.
그리고 외계인의 손가락이 첫 번째 순교자의 머리를 집었다.
[푸르스마.]
뿌직!
순교자의 머리가 뽑혀 나가고, 카메라는 번역 기계 앞에 선 과학자를 비췄다.
두 번째 순교자의 머리가 뽑혀 나갔다.
[푸르스마나스.]
뿌직!
기계를 들여다보는 과학자의 몸이 점점 굳어갔다. 그러는 와중에, 외계인의 심판은 계속되었다.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 푸르스마…푸르스마나스…]
번역을 해줘야 할 과학자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인류의 궁금증은 폭발했다. 도대체 왜? 무엇이길래?
결국, 한 명의 순교자가 달려와 과학자를 잡아 흔들었다.
“이봐! 도대체 뭐야! 저들의 메시지가 뭐냐고?”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
한 명 한 명 순교자들의 피가 흩뿌려지고, 지상에 남은 순교자들이 모두 과학자에게 달려들었다.
“빨리 번역하라고! 뭐냐고!”
그러자 곧 과학자는, 일생일대의 멍한 얼굴로,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전 인류에게, 외계인의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를 번역해주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
인류는 침묵했다. 꺾여버린 줄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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