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
현대미술에 대해 공부를 하고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내가 제주도에 가서 펭귄을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미디 영화를 보며 왜 교훈과 감동이 없냐고 툴툴대고 어린이 영화를 보며 베드신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해의 대상이 아닌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고 받아들임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믿음의 대상이다. 그런 면에서 미술은 종교와 상당 부분 흡사한 지점들이 있다.
종교와 미술은 본질적으로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가치가 형성이 되고 지탱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큰 차이점들도 존재한다.
종교는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중간층이 비교적 얇고, 선택을 함에 있어서 미술에 비해 훨씬 더 주체적이고 솔직하며 남들의 눈치를 덜 본다. 물론 완전히 그럴 수는 없다. 때로는 두렵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보고 듣고 영향을 받기도 하고 분위기에 휩쓸려가는 부분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생각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형성하고 분위기에 지배당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에 비해서는 그런 부분이 훨씬 더 적다.
미술은 그것을 믿고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과 반대편의 사람들 사이에 중간층이 압도적으로 꽤 두텁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알쏭달쏭 해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과, 이해한 척하면서 가치를 인정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종교는 신자들과 비신자들의 진영이 각각 건재하고 각자의 논리가 탄탄하게 정립되어 있다. 물론 서로 간의 반목이 크고 서로 말이 안 통하고 각각 각자의 테두리 안에서만 통하는 논리이기는 하지만, 양 진영이 서로 비등하게 대립하며 평행선 싸움을 이어나간다. 같은 편끼리 뭉치는 힘은 신자들이 훨씬 강하지만 비신자들 또한 자기 논리에 당당하고 자신감이 충분하다.
하지만 미술은 교주들과 신자들의 파워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 비율은 소수일지라도 자본과 권력을 거의 다 가지고 있다. 비신자들은 그저 믿지 않을 뿐이지 거의 논리가 안 만들어져 있다. 판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으니 그저 숨어서 불평만 할 뿐, 거의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종교와 미술의 이런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나는 계급론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종교에 있어서는 선택을 할 때 계급론은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지식의 많고 적음과 부의 많고 적음에 따른 경향성이 거의 없다. 그런 것들은 선택의 원인이 안 된다. 공부를 아주 많이 하고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들 중에서도, 신의 존재를 믿고 종교를 가지는 사람들이 있고 아닌 사람들도 있다. 배움과 지식의 양이 적은 사람들 중에서도, 이쪽도 있고 저쪽도 있고 마찬가지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렇고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그렇다.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 선택에서 그런 것들은 원인이 되지 못한다. 다른 원인들이 더 크게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술에서는 입장을 선택을 할 때 계급론이 절대적인 비중으로 작동한다. 미술을 향유하고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더 나아가 미술품을 사는 사람들은 99퍼센트 이상이 부자들이다. 그리고 또한 배움과 지식의 양이 많은 사람들이 반대의 사람들보다 대체로 삶 속에서 더 미술과 가까이 있다. 돈과 미술 사이의 관계에서 돈은 충분조건은 안 되더라도 필요조건은 충분히 된다.
다시 말해서, 돈이 많고 지식의 양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가 다 미술을 좋아하고 즐기고 인정을 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미술을 좋아하고 즐기고 미술품을 사기도 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돈과 지식과 정보와 남는 시간의 양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다.
자 그러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미술에 있어서 정말 그것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런 척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이유가 계급론을 대입하면 쉽게 정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