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 사람들이 미술을 좋아하는 척하는 이유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아비투스(habitus)' 개념을 주창했다. 나는 거기서 (어떤) 사람들은 (억지로) 미술을 좋아하고 이해하는 척하는 이유를 읽어낼 수가 있었다.
‘아비투스’는 인간이 사회로부터 체득한 특징의 총체를 말한다. 즉 귀속 집단에 의해 형성된 성향, 사고, 인지, 판단 등의 행동체계를 의미한다. 부르디외는 사회적 조건과 배경이 한 인간의 의식과 실천을 결정한다고 분석했다. 마르크스주의, 유물론과도 통하는 말이다. 인간의 정신이 사회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물질(하부구조, 속해있는 사회)이 관념(상부구조, 정신)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신분에 따라 취향이 결정되고, 부자들은 눈에 보이는 경제자본(물질) 뿐만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사회자본(인맥), 상징자본(명성), ‘문화자본(취미)’까지 대물림한다. 상류층의 사람들은 ‘아비투스’를 자식에게 전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집단 내에 존재하는 동일한 아비투스는 연대와 동질감을 형성하고, 서로 다른 집단의 아비투스는 상호 간의 혐오를 만들어낸다.
“취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모든 것, 즉 인간과 사물 그리고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의 기준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분하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분된다. 취향은 피할 수 없는 계층 간 차이의 실제적인 확증이다.”
-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 짓기』
미술이라는 ‘아비투스’를 통해 상류층은 물질적 잉여와 정신적 잉여를 과시하고 그것은 결국 계급 간의 구별 짓기 결과를 만들어낸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생각을 하고 작업을 하지는 않는다. 작품을 향유하는 감상자나 컬렉터 입장에서도 꼭 그런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된다.
미술이라는 ‘아비투스’를 제대로 소비(감상을 넘어 소유하는 단계)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안으로 들어가길 원하고 동경한다. 이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작품을 이해하는 척하고 억지로 좋아하는 척하는 이유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이, 돈이 많거나 지식의 양이 많은 사람들은 진짜로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척한다는 말이 아니다. 미술품을 사는 사람들이 대체로 부자들인 것이 맞는데, 나는 어떤 프레임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은 고급 취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가장 고급 취미는 미술이라는 프레임. 그것은 팩트와 프레임의 사이에 걸쳐져 있다.
돈이 많고 지식의 양이 많은 사람들 역시 실제로는 미술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보통의 사람들과 같은 비율로) 본다.
사실 다 알지만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고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학문적 근거를 빌려와서 좀 더 아는 척을 하며 상기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