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감상법 총정리
피카소의 작품은 인식과 인정의 대상이지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피카소가 위대한 이유도 알겠고 왜 그를 미술사의 넘버원으로 치는지도 이해했다. 긴 시간 궁금해했고 충분히 공부했다. 그는 혁명적 예술가였던 것이다.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그의 작품은 “이게 바로 대단한 그 작품이로군. 미적 감흥이나 감동 같은 것은 없지만(그런 걸 기대하는 사람은 한식집에서 짬뽕을 시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라고!), 그것을 바라는 미술에 대한 나의 욕망은 편견과 좁은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 아름다워야 한다는 미술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표현방식의 고정관념을 박살 냈다는 거지?… 하여튼 대단한 역할을 한 것은 맞네. 그런데 이 그림을 계속해서 오래 두고 보고 싶지는 않아. 엄청난 가격인 것은 분명하니 아주 귀중하게 보관해야 하는 것은 확실해.” 정도의 소감이면 충분하게 감상한 것이고 피카소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다. “오 마이 갓!”, “맙소사!”, “우…와!” 이런 감탄사가 나오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뭔가 장난치는 것 같아도 그 안에 무슨 심오한 의미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작품으로서는 그냥 그게 다인 거다. 그 안에 숨겨진 의미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피카소의 전시에는 항상 사람들이 넘치고 그 안에서 숨겨진 무언가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 그렇게 무도회장인 줄 잘못 알고 예배당에 와서 헤매는 사람들까지 그 모든 현상이 장사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대가의 작품들은 거절불가의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주입되고 강요된다. 미술사가 이렇게 모시지 않았다면, 권위로 뒤덮여 있는 작가가 아니라면, 피카소의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있을까? 결국 우리는 피카소의 이름값과 권위에 엎드리는 것이다. 미술이란 그런 것이다.
피카소 실물 감상의 의미
피카소의 작품 실물 감상은 실제를 직접 보았다는 안도감과 확인 그리고 해외여행 사진처럼 내가 실제로 봤음을 증명하는 인증 외에는 따로 실물 감상의 필수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크니 실제적 크기에 의해 조금 놀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충분히 상상 가능한 부분이고 큰 작품은 피카소 작품 말고도 많다. 나는 인터넷 감상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유명한 작품 실물을 남들은 다 보러 가는데 나만 못 보면 소외감도 좀 느껴지고 서운할 것 같다. 그것이 미술의 신비감과 권위의 본질인데, 굳이 그런 힘에 반항할 이유도 없고 시간 되면 가서 봐도 된다. 우리는 미술관에 가서 피카소의 이름값을 감상하는 것이다.
피카소가 위대한 이유는 오늘날에 와서는 잘 정리되어 있다. 그 수많은 이유들과 예술을 지배하듯이 마구 싸지르며 윤전기 돌리듯이 뿜어낸 엄청난 양의 작품들이 증거이다. 빈정거리는 것이 아니다. 예술이 꼭 모든 노력을 갈아 넣어야 하는 대상도 아니고, 예술을 꼭 신성한 방법으로 모시듯이 진지하게 해야 할 필요와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고, 첫 모범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는 넘치는 보상과 충분한 인정을 받고 있다.
긴 시간이 지났는데 얼토당토않은 작품 내부의 심오한 의미와 깊은 예술성, 이런 것들이 먹힐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다. 충분히 먹힌다!) 피카소는 죽고 나서 유명해진 불우한 고흐와는 달리, 살아생전 당대에 모든 명예와 부를 다 누린 작가이다. 그런데 그가 바로 유명했을 그때에 사람들이 지금처럼 잘 정리되고 부정하기 힘든 이유를 가지고 그를 위대하다고 생각했었을까? 아마 그때는 99% 이상이 두려움과 허영심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90% 이상은 된다고 보고, 앞으로도 꾸준히 80% 이상은 될 것이다.
파울 클레나 윌렘 드 쿠닝 등도 비슷한 감상법으로 접근하면 된다.
파울 클레 (1879-1940)
윌렘 드 쿠닝 (1904-1997)
“이런 장난꾸러기 같으니라고!” 하고 피식 웃고 넘기면 된다. 거기서 무슨 심오한 의미를 찾는 것이 코미디가 되는 것인데, 유명세와 엄청난 작품값으로 인해 그런 촌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힘을 가진 쪽으로 무게 추는 기운다
‘작품성’이라는 것은 일률적으로 규정되고 정확하게 측정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높은 작품성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도 있지만 허상일 수도 있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현대미술에서 더욱 작가에서 요구되는 것은 작품성이 아니다. 게임의 승자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능력들이다. 그것들에 운이 더해지면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위대한 작가가 되고 나면 더욱 위대해지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작품성은 자동으로 부여가 된다.
진실 여부와는 큰 상관없이 강하게 끈질기게 주장하는 쪽 내지는 사회적으로 힘을 가진 쪽으로 무게 추는 기울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힘의 균형과 기울어짐의 분위기를 본다. 그리고 나머지 할 일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일이다. 그 배에 올라타야 가장 외롭지 않고 안전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보호본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통념이 되어 마치 진실인 양 무게를 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