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는 감상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주입되고 암기하는 것이다
피카소 예찬론자들의 반론으로는 니가 무식해서 그렇다고,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고 공부를 하고 알고 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일부는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술사와 피카소의 앞뒤 문맥을 잘 모른다는 약점 때문에 자신감이 없고 위축이 돼 있다. 공부를 하면 그가 왜 그렇게 위대하고 유명한 작가인지 알게 되고 암기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다 그렇게 피카소의 발 앞에 납작 엎드려서 그를 미술의 신을 모시는 것 마냥 추앙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피카소에 대해서 공부를 할 만큼 했고, 그에 대해서 알아야 되는 만큼은 안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피카소가 천재성이 있고 미술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선을 그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미술의 신으로 여겨지는 지금의 위상은, 인간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무지함을 들키기 싫은 두려움, 대세에서 소외되는 것에 대한 공포, 우아하고 차별적인 취미의 소비를 통해 더 높은 신분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 압도적 권위에 설득되고 굴복하는 인간들의 특성들을 제물 삼아 백배 천배 더 부풀려진 것이다.
인간은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척하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결국은 거대한 힘 앞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모든 예술가는 어느 정도의 선에 달하면 점점 더 위상이 부풀려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마치 돈이 돈을 벌고 시스템에 의해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지는 것처럼. 그중에 단연코 일등은 ‘피카소’이다. 피카소 스스로도 이 정도로 자신이 압도적 넘버원이 될 것이라고 예상을 했을까?
피카소가 그림을 잘 그렸다면 오늘날의 피카소는 없다
피카소가 마음만 먹었다면 기술적으로는 벨라스케스보다도 더 뛰어나게 그릴 수 있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 _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그랬다면 그는 오늘날의 위치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시절에도 고전 화풍을 유지하며 인간인지 카메라인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는 작품을 남긴 화가들은 많다.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1825-1905) _ 님프와 사티로스
피카소가 그랬다면 그들과 함께 그저 그런 화가로 남았을 것이며 오늘날 피카소의 자리는 다른 예술가가 차지했을 것이다. 시대가 원하는 것을 간파하고 적중시켰다는 점에서 그의 선견지명과 과감하고 명석한 선택을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다.
또한 그가 아니라고 해서 그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누군가는 무조건 그 자리에 앉았을 테니까 운도 따랐음 또한 맞다.
피카소가 위대한 작가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대단히 감동적이어서 대단한 것이 아니고 그의 시대를 읽는 통찰력과 세상을 주무르는 솜씨가 대단한 것이다. 막 그린 작품을 가지고 넘버원 대가의 자리에 등극한 그 재주가 감탄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작품은 막 그린 것인가 대단한 것인가? 막 그린 것이지만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감동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란 이야기다. 피카소의 이름값과 스토리의 감동을 작품에 대입하는 것이다.
그렇게 피카소의 작품은 다른 기준과 감상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그런데 피카소가 굉장히 위대한 것은 알겠는데 자꾸만 기존의 기준과 감상법으로 작품을 대하려니 문제가 생긴다. 그 다른 기준과 감상법이라면 오랜 시간 두고 보고 또 보고 할 필요는 없다. 그냥 확인 정도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시대와 기준은 바뀌었는데 우리는 본능적으로 예술작품을 기존의 기준과 감상법으로 대하려는 경향이 있다. 거기서 생기는 간극의 문제가 항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