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해석은 진정 감상자들의 몫인가?
흔히들 미술의 감상에 있어서, 특히나 현대미술은 감상의 정도나 정답이 없으며 어떻게 해석하고 느끼든지 자유이며 작품을 보는 감상자들의 몫이라고 한다.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이라는 표현을 통해, 작품이 완성되고 전시되는 순간 작품은 작가를 떠나 감상자에 의해서 자유롭게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진짜 그럴까? 당위성 면에서는 그것이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작품에 매겨진 가격과 각 작가들의 세속적인 위상이 이미 감상자들의 해석과 판단의 몫을 거의 다 뺏어가고 만다. 아직까지 네임 밸류를 획득하지 못한 작가들의 작품은 비교적 자유롭게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계급장이 나온 작가들의 작품들은 대개 권위를 갖고 강요하고 주입하기 마련이다.
진정한 주체적 예술 감상은 가능한가?
각양각색의 수많은 예술 결과물들이 제시되고 사람들의 반응 역시 제각각이다. 제각각 취향과 기준들이 다른데 역시나 목소리 크고 영향력 있어서 자신의 입맛을 남들에게도 전염시키거나 강요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눈치 보며 자신의 입맛이 대중의 입맛 또는 미술권력의 입맛과 다를까 봐 불안해하고 설득당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남들이야 어떻든 자기 입맛대로 가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중에는 대세를 따라가는 사람이 가장 많다.
‘포모 증후군’(Fear Of Missing Out: 대세에서 소외되는 것에 대한 공포)의 사회학적 용어로도 설명되고 ‘밴드웨건 효과'(영문도 모르고 사람들이 몰리니까 더욱 몰리는 현상)도 비슷한 이야기이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일들은 흔하게 관찰할 수 있다. 유행하는 스타일에 내 취향을 맞추는 경우는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유행’의 본질이다. 미술 시장에서도 이런 일은 항상 발생하고, 모든 시장에서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좋아해서 유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유행상품이 먼저 정해지고 나면 사람들이 따라가는 것이다.
여하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자존심 상하는 본성을 갖고 있고 그런 특성에 지배당하며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고 인정할지라도, 모두가 다 그렇게 체념한 채로 좀비처럼 휩쓸려가며 살 필요와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끄러울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숨길 것도 아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 아닌가? 남이 주인인 삶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인 삶을 살아도 된다. 그것이 바로 ‘실존’이다.
내 눈에 좋아 보이지 않는데 남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공감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말은 쉽게 했지만 현실에서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라고 하지만, 압도적 분위기라는 것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웬만한 용기를 가지지 않고서는 솔직한 자기 의견을 피력하기가 어려운 것이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삶의 현실이다.
가장 단적인 예로 피카소의 작품이 그렇지 않은가? 피카소라는 이름의 무게가, 그의 유명세가, 천문학적인 그의 작품 가격이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는 압도적 분위기를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