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통하지 않는다
세상에 ‘진심’만큼 통하지 않는 것은 없다. ‘진심’이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말은 당위적인 바람 내지는 매우 순진한 생각이거나, 그렇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전략적으로 진중하고 진정성 있는 척하는 제스처에 불과하다. 아니면 DJ가 작가가 써 준 대로 그냥 대본을 읽는 경우이다.
가장 쉽게 와닿는 예로 이성에게 고백하는 순간을 떠올리면 된다. 통하는 것은 진심이 아니라 매력이다. 나중에는 매력이 진심으로 번역되겠지만 상대의 마음을 빼앗는 것은 진심이 아니다. 당신에게 매력이 없는 사람이 진심을 담아서 고백한다면 당신은 받아줄 수가 있겠는가? 그것만큼 부담스러운 것이 또 없을 것이다.
취업 원서를 쓰는데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진심을 담아서 작성한다고 해도 그것이 통하는가? 진지충이라는 부담을 줘서 오히려 역작용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진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회사에 이익을 가져올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
진심보다 우선순위는 분명 다른 무엇들이며, 그것들이 먼저 선취되고 난 후라야 진심도 먹히는 것이다. 그리고 받아들임의 명분은 상대의 진심이 된다.
진심이 중요한 게 아니다
여하튼 작품의 진심과 그 작가가 솔직히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 작품의 매력과 사람들이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고, 작가는 진심이 아니어도 진정성을 다해 진심을 연기하면 된다.
진심이 아니어도 통하는 경우는 많고 진심이어도 통하지 않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저 작품의 실체는 진실일까 거짓일까를 궁금해하고 고민하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무의미해짐을 깨닫게 된다. 실체적 진실이 어느 쪽이든지 간에 (작가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든지 거짓말을 하는 것이든지 간에), 모두가 믿고 수긍할 만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지 간에 표면적 현상인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전지적 시점에서 작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전지적 시점이 아닐 테니 작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가 없다. 반대로 작가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증명할 완벽한 방법이 없기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사람들은 ‘진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믿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와도 같아진다.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