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경영 MBA 과정에서 수업 중 '양가감정'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스치듯 지나가는 내용 중에 하나였는데 내 가슴속에 콕 박혀서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양가감정(Ambivalence)은 어떤 대상에게 서로 대립되는 두 감정이 동시에 혼재되는 정신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어떤 대상에 대해서 동시에 상충되어 일어나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떠오르는 것이다. _위키백과
하루를 살아가고 한 달을 살아가며 일 년이 지나갈 때 나에게 늘 존재하고 있는 정신 상태이다. 이 정신 상태가 가끔 나를 힘들게 하지만 이로 인해 지금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양가감정이 들 때마다 내 감정을 들여다보기 위해 글을 쓴다. 모든 일에 의사결정이 빠르고, 고민을 하는 것 같지만 중요한 결정에는 빠르게 선택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나조차도 나란 사람에 대해 착각하고 있던 부분이 있다.
이런 나의 성향도 수도 없이 많은 상황에서 양가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양가감정은 좋다 나쁘다의 기준을 정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다. 그냥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들의 두 감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들이다. 그 감정들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한 달에 한 번, 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한 주간이 온다.
생리기간(period of menstruation)
내가 체력 관리를 잘하고 있더라도 컨트롤 할 수 없는 기간이고, 이때가 되면 감정적으로 동요가 되어 '이번엔 얼마나 아플까?' '언제쯤 나는 아프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안 아프면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고, 아프면 '또 시작이군' 이라는 생각을 하며 고통을 견뎌야 하는 기간이 된다.
이 시기에 나는 양가감정이 심하게 치솟는 기간이 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호르몬 변화이지 않을까.
기간이 다가오기 전부터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내가 앞으로 계속할 수 있는 일이 맞는 걸까?'
'지금처럼 사는 게 맞는 걸까? 원하는 삶이 맞나?'
'남편이 말한 것처럼 더 늦기 전에 살고 싶은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그럼....떠날까?'
평소라면 바빠서 생각하지도 못할 일들인데, 이 주간이 되면 끝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꼬꼬무처럼 끝없는 생각이 펼쳐진다.
그러다가 두 명의 내가 충돌한다. 이것이 양가감정이다.
한 명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고, 일에 대한 목표도 이루었잖아. 이제 그만 남편과 살아보고 싶은 삶을 살아.
남편이 원하는 삶을 들여다보고 그 삶에 너도 함께 해볼래? 더 늦기 전에 살아보고 싶은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떠날래?"
또 한 명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지. 그 삶에 대한 결과물에 아직 만족하지 않았잖아? 조금 더 노력해야지. 일에 대한 너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남길 수 있어야 하지 않아? 그래야 '업계의 전설'이 될 수 있지. 네가 원하는 사명을 아직 다하지 못했잖아. 시간이 더 필요해."
그렇게 앞 다투어 둘이 대화를 하다가 결론이 내려진다.
"조금 더 큰 꿈을 가지는 게 좋겠어!" 지난 목표를 다 이루고 난 후 그다음 목표가 세워지지 않아서 혼돈하는 것뿐이야.
'의료미용업계의 전설' 로 기억되고 싶어 하면서 쉽지만은 않은 그 여정이 두렵기도 해서 그 감정들이 나를 흔드는 거야. 흔들리지 마!
20대의 나, 30대의 나.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기록하지 않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떠올랐다. 매 순간 누구도 나에게 조언을 해주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 혼자회의, 혼자 대화를 통해 내가 해야 하는 것들, 하고자 하는 것들을 생각하고 정리해 가며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스스로 비전을 만들고 목표를 세우며 하나하나 이뤄나가야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업계에 22년이라는 경력을 등에이고 지고 살아가고 있다.
사실 다음 목표의 대주제를 정하기도 했다.
<환갑 세미나> 내가 원하는 나의 미래의 목표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면 되는데, 왜 양가감정들이 나를 자꾸 방해하고 막아서는지 모르겠다. 힘든 순간, 체력이 안 되는 순간, 사람들로 인해 힘든 순간들마다 내 앞을 가로막는다.
그럴 때마다 다시 세운 이 목표를 떠올리며 남은 시간 동안 차곡차곡 내 인생에 스케치를 하고 색을 칠하고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만끽하며 환갑이 되어서도 살아 숨 쉬는 존재감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럼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대범한 꿈을 가지거나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정한 테두리 안에서 그것들을 가치 있게 지켜나가며 이루는 사람.
그리고 그런 나의 진정성을 알아보고 함께 하고자 하는 인연들을 만나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내가 가진 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그것들이 하나 되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신념이 스며들어 하나의 시스템과 문화가 될 수 있도록!
그게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성이고, 미래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기에 양가감정이 드는 많은 순간들에도 다시 부정적인 생각들을 내려놓고, 긍정의 힘을 끓어올려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물론 지금 이 일을 내려놓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 남편이 원하는 '자유로운 삶'을 함께 사는 게 부정적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에서 제 몫을 다 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불편감이 드는 것뿐이다. 언젠가 내가 불편한 감정이 들지 않는 순간이 올 거라고 믿는다.
그 믿음은 나에게서부터 나올 것이고, 내가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성실하게 꿋꿋이 업계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