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툴리, 내 산후우울증 악화의 주범

by 봄봄


산후 3-4개월 즈음...아기 낳고 너무 못자고 못먹고 하루종일 강도높은 가사노동에 시달리다보니 어디라도 기댈데를 찾고 싶고, 지나가다 보이는 정신과 Praxis를 보니 저기라도 가서 하소연을 하고싶어 들어갈까 싶다가 지금 내 이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독일어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걸 생각하니 벌써 아득해져 관뒀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산후우울증이 이런건가 싶었다.


오늘이 너무 고되고, 내일 또 이 똑같은걸 반복할 생각에 밤에 잠들기가 무섭고, 언제 이 힘든게 끝나나, 창 밖에 보이는 저 지나가는 일상을 누리는 사람들처럼 난 언제쯤 자유롭게 웃으며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을까, 이제는 저 세상으로 다시는 못돌아갈거야 등 그냥 한없이 침잠하는 생각만 가득하던 그때.


맘에 여유가 없으니 그 4개월 넘는 기간에 음악한번을 들은 기억이 없다. 드라마 한편도 본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내 하루는 육아 그 자체였고, 머릿속 공간조차 다른데 자리를 내어주지 못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영화, 툴리의 예고편을 보고, 나와 너무 비슷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래, 애키우는게 나만 힘든건 아냐, 다른 엄마들도 다 그럴거야, 하고 동병상련을 느끼며 조금 힘을 내보자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출산 후 첫 영상개시용으로 선택했고, 그건 크나큰 실수였다.


나의 산후우울증은 이후 더 심해져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을 정도니까.


(이후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관람하실 분은 참고부탁드립니다.)




희망을 잃었다


이 영화를 본 후 나의 심경에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이것이었다. 희망을 잃었다는 것.

사람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으면 다 잃는거라던가.


이 영화 초반부엔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려낸 결혼, 임신, 육아에 '와 어떻게 이렇게 사실적으로 표현했지.샤를리즈 테론 진짜 생활연기다.'하면서 빠져들었다.


한밤중 좀비같은 몰골로 졸음을 참아가며 겨우 유축한 모유가 쏟아졌을때의 상실감 장면은 최고였다.

이건 목놓아 울 정도의 슬픔을 동반한다는 걸 나는 알았기에.

수유상식 및 출산전 공부 부족으로 출산 직후의 초기 모유수유 골든타임을 놓친 후, 혼합수유를 하며 인생에 다시없는 미친듯한 노력을 해 완전 모유수유에 성공하고, 그나마도 젖양이 적어 매번 아기가 배고픈게 아닌지 전전긍긍하며 크게 울기라도 하면 젖양부족으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나로서는, 이 장면에서 울 수 밖에 없었다.



출산 이후 아기를 만난 기쁨도 잠시, 수유, 아기의 울음, 수유, 아기의 울음이 반복되는 하루 표현과 점점 지쳐가는 엄마의 모습이 나와 오버랩되며 이 영화를 본 내 선택이 잘했다고 여겨졌다.


그런 생각뒤에는, 이렇게나 불편할 정도로 사실적인 임신, 출산, 육아의 표현뒤에, 즉 영화의 말미에 반드시 내가 참고할 만한 해법이나 '결국은 다 잘될것이다'라는 해피엔딩 메세지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예측 혹은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나이트 내니 툴리가 등장하여 밤마다 마법을 부리고, 아이들이 먹을 머핀을 구워주고 하면서는, 나도 나이트 내니를 고용해야하나?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여유있고 자연스럽게 아기를 볼 수 있지? 하면서 엔딩에 대한 기대감과 이 육아에 기가막힌 도우미와 해결책이 있을거란 기대는 점점 고조되었다. 정신없이 빠져들어 영화를 봤고, 디테일한 표현에도 집중하고 감탄했다.

임신 중 달달구리를 훑다가 결국 디카페인 커피 하나를 주문하는 카메라 워크나, 옆에서 그 말을 듣고 디카페인 커피에도 카페인 있다고 훈수 두는 동네할머니 같은 것도 질릴 것 같은 모성신화의 에피소드로서 너무 좋았다. 컷 하나하나 버릴게 없었고 시니리오 작가는 반드시 출산경험이 있는 엄마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신나게 영화를 보던 나는,

툴리가 어느날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주인공 샤를리즈 테론이 충격받아 나를 어떻게 버릴 수 있냐고 하자, 툴리가 애를 밤에 혼자 놔두고 시내로 놀러나가자고, 하룻밤정도의 자유는 엄마에게 허락될거라고 하는 장면에서부터 알 수없는 불안감과 함께 '뭐지..? 좀 이상한데...?'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정말 애를 혼자 두고 집을 떠나 시내로 차를 몬다. 그리고 차를 가져간 걸 잊었는지 바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그러다 젖이 불어서 화장실에서 손으로 유축을 하고 점점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결국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나고, 병원에서 눈을 뜬 샤를리즈 테론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남편.


그리고 간호사가 남편을 따로 불러 말한다. 아내에게 요즘 이상한점을 못느꼈냐고. 지금 엄청난 과로에 시달리고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라고.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병원서류를 작성하는 남편에게 간호사가 묻는다. 아내의 처녀시절 사용하던 이름이 뭐냐고.


툴리-

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난 소리를 질렀다.




이후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속에서 툴리가 된 샤를리즈 테론이 밤마다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머핀을 만들고...하는 장면이 나오고,

퇴원한 그녀를 위해 이제는 조금 정신차린 남편이 육아를 돕는 장면이 나온다.


마지막 장면이 남편과 주인공이 같이 부엌에서 일하는 모습인데, 여전히 사건 전과 똑같이 피곤하고 멍한 모습으로 사건 전처럼 육아와 가사를 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잡으며 영화는 끝.


난 정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이거...뭐지?

이게 끝이야?

이렇게 저 여자는 다시 지옥같은 생활을 다시 이어가는거야?


영화를 보고나서 난 너무나 우울하고 더 큰 스트레스에 사로잡혔다. 저렇게 정신분열증까지 와서 아픈 엄마가 치료도 받을 여유도 없이 계속 똑같이 그 육아노동을 감내해야하고, 이제는 전보다 더 멍해진것 같은 눈동자를 보니 정말 할말을 잃었달까...

내가 정신분열증까지 온건 아니지만 이만치 육아가 힘든데 해결책은 없고 그저 감내하는 것만이 내가 고를수 있는 선택지라는 생각에 이 영화관람 이후 난 더 예민해지고 더 많이 울었다.


그래서 산후우울증 오신 분들은 이영화를 권하지 않는다.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는 명품이었지만, 내 인생 역대급 고난 속 한줄기 희망처럼 본 영화가 절망만을 안겨주었기에 트레일러만 보고 영화를 선택한 내 과오를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아기를 바랬고 원해서 한 임신이지만, 한편 정말 무식해서 용감했다고 밖엔 할 수 없는 육아이기도 하다. 아이가 힘들어도 너무 예쁜 지금, 이제 우리가 아닌 나만 있던 인생으로 돌아가는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아이지만,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매일의 전쟁이 버거운것도 사실이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 키워낸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고 엄청나게 고생스럽다는걸 주변의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고 나 역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미혼여성일 때 보는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적어도 자신에게 무슨일이 벌어질지는 알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서.


아이는 엄청난 인생의 기쁨인 동시에 엄청난 고생이다. 미디어나 주변에선 항상 기쁨만을 보여줬기에, 예상치못한 고생에 맞닥뜨렸을때 더 견디기가 힘든 것 같다. 양면을 다 알고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하고, 좀더 준비된 엄마로 아기를 맞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그래도 경험하지 않고는 절대 모를 세계이긴 하지만, 풍월로라도 어떻다는 걸 예측하는 것과 무방비로 해일을 맞는 건 다르니까.



보고나서 후폭풍이 어마어마했던 영화라, 꼭 한편 리뷰를 남기고 싶었다. 다른 분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을지 모르겠다.

나중에 아기엄마들끼리 한바탕 얘기 나눌 기회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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