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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l 14. 2021

내향인의 시선이 내면을 향하는 것은

어쩌면 상대를 제대로 보고 있지 않은 겁니다.

내향인들은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나'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불행한지를 잘 안다. 잘 모르더라도 생각은 많이 한다. 이는 일상적인 판단을 내릴 때나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큰 도움이 된다. 무엇이 '나'에게 좋은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만 있지는 않다. 내향인이라는 말 뜻 자체가 '안을 향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무엇이 안을 향하느냐. 바로 시선이다. 시선이 항상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자의식 과잉이 되기 쉽다. 인간관계에서의 내향성이 과해지면 남들에게 비추어질 자신의 모습만을 신경 쓰게 된다. 이런 모습은 소심하기보다는 차라리 이기적이다. 나와 소통하고 있는 상대를 무시하고 오로지 내 모습만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사람의 시선이 무서웠던 때가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모두가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만 같았다. 지나치게 주위 시선을 의식한다고 생각했다. 왜 자기 줏대대로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 시선에 흔들리는지가 항상 고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섬뜩한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의식하던 것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시선이었다. 사실 다른 사람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세상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지나치게 나 자신에게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이 무섭게 느껴지는 거였다. 눈앞의 상대를 제대로 보고 있지 않은 거였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들은 나와 소통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 역시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파악하고자 했으면 됐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 자신이 너무너무 중요하다 보니, 내가 완벽한 사람이어야 해서, 타인이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망상에 갇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무서울 수 있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예를 들어 애인이나 가족이라면 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진지하게 신경 쓰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 인생에서 그러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스쳐 지나가는 타인일 뿐이다. 그리고 당신이 무수한 타인에게 그러하듯이 대부분의 타인은 당신에게 별 관심이 없다. 당신을 평가하고 매도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사실 이들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


그럼 여전히 상대의 시선이 무서울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냥 그 사람을 궁금해하면 된다. 뼛속까지 자기 자신만 바라봐온 내향인이라면 쉽지 않겠지만 당신 앞에 앉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한 번 시도해보라. 상대는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타인과 이야기하는 게 무서운 사람이라면 혹시 너무 자기 자신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 의식이 향하는 방향이 '오직' 내면뿐이어서는 곤란하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내면과 그 바깥의 세상을 둘 다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 방향성에 약간의 치우침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완전히 한쪽에 매몰되어버리면 균형을 잃게 된다.


성숙한 삶은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 밖의 세상과 건전한 관계를 맺을 줄 아는 것이다. 내향인은 스스로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바탕을 갖고 있으니 밖을 조금만 더 신경 써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명심하자. 세상은 당신을 배척하려고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당신을 바라보듯 당신 역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걸 깨닫고 자유로워졌다. 내가 무서워했던 '시선'은 사실 나의 것이었다. 얼마든지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볼 것인지 아니면 타인을 마주하고 살필 것인지는 당신이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상대도 그럴 자유가 있음을 인정하면 된다. 그러면 자유로워질 것이다. 당신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시선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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